황석영 장편소설 <심청>
황석영의 소설을 읽는 것은 기쁨이면서 고통이다. 마치 잘 벼루어진 끌이나 대패로 미끈하게 다듬어 놓은 얼개와 짜임을 만나는 것이 기쁨이라면, 그것들이 냉혹할 만큼 사실적으로 저며내는 이 땅의 사람 살이의 모습들은 둔감해진 정수리를 날카롭게 베는 듯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70년대 이후 내내 진보적 문학 진영을 짓눌렀던 화두였던 ‘리얼리즘’을 황석영만큼 건조하게 천착해 온 작가가 또 있을까.
파란과 격동의 20세기 말의 문학적 연대기인 <오래된 정원>을 거쳐 이데올로기의 광기와 그 덫에 걸린 한 시대를 조감한 <손님>을 거쳐 그는 이제 고대사회의 인신공희(人身供犧)라는 제의적 공간과 불교적 환생의 세계에 침잠해 있던 심청을 냉혹한 근대화 시대의 저잣거리로 끌어낸 듯하다.
이 소설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본격화와 서양의 동양 침탈 과정에서 한 여인의 몸에 새겨진 폭력의 역사”(경향신문)라는 평가는 정당하면서도 ‘시정잡배들 삶의 자상한 기록’이라는 작가의 발언 쪽에 나는 조금 더 기울어진다. 그건 아래와 같은 작가의 정서와 다르지 않다.
“나는 <심청>에서 이 같은 흐름을 역사적 맥락으로 짚어가기보다는 한 여자의 몸과 마음이 변전하는 과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는 마치 연꽃 한 송이가 봉오리에서 새벽이슬을 맞고 개화를 시작하고 햇볕과 비바람에 시달리며 지나는 행인을 만나고 보내기도 하며 밤낮을 거쳐 계절을 보내는 과정과도 같이 썼다.
그러므로 아편전쟁이나 태평천국, 또는 인도와 베트남과 동인도회사, 오키나와의 멸망,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민란, 동학과 청일전쟁, 노일전쟁과 조선의 식민지화 등의 과정을 멀리서 스쳐 지나가는 작은 우렛소리처럼 다루었다. 내가 힘을 기울이고 섭렵했던 자료들 거의가 이 시대 백성들의 일상을 다룬 것들이었고, 매춘과 남녀상열지사야말로 시정잡배들 삶의 자상한 기록인 셈이다.”
- 작가의 말
심청은 박제되어 버린 효녀가 아니라, 역사의 격랑 속에서 비로소 자기 삶의 주재자로, 질긴 여성성으로 부활한다. 렌화에서 로터스, 류큐의 시조쿠 부인과 렌카를 거쳐 마침내 고향 황주의 절에서 찾아온 자신의 위패로 돌아온 그녀의 미소는 ‘실컷 울고 난 사람의 웃음’처럼 희미하다.
그러나 파란 많은 그녀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고통과 절망, 슬픔과 분노가 아니라, 그것을 자기 삶으로 껴안는 너그러움과 넉넉함이며, 그것이 그녀를 수동적 희생자에서 능동적 삶의 주체로서 우리 앞에 마주 서게 한다. 소설 속에 노골적으로 묘사되는 사랑의 장면들이 음란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아닌, 상호 동등의 관계로서 이해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심청은 그의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삼포 가는 길>의 백화나, <몰개월의 새>의 미자와는 전혀 다른 여인이지만, 한편으로 같은 여인이다. 여덟 명의 군인 죄수를 뒷바라지한 백화나 낯선 나라의 전쟁터에서 죽어간 애인들을 위해 몸부림치는 미자의 삶은 또 다른 의미에서, 스스로 남자와의 사랑을 선택하고 ‘지옥 같은 나날이었는데도 남풍 집의 작은 방에서 덧문을 열고 내다보던 배의 등불 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는 청의 삶과 동질적이다.
청의 일생은 ‘19세기 동아시아의 벌거벗겨진 역사’로 이해되기도 한다. 작가는 “동아시아의 근대화를 문학적인 장치를 통해 상징화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타의적인 근대화 과정을 겪은 동아시아의 역사는 여성의 몸이 매매되면서 사물화·객체화하는 과정과 겹쳐진다는 것이다.
기억의 습관은 얼마나 무서운가. ‘여성과 폭력의 역사’라는 서평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역사와 그 뒤란에서 유린당한 저주스러운 여인들의 근대사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가는 길은 그것과는 다른 여정이다. 섣불리 상상하지 말고 서점으로 가실 것.
2008. 1. 4. 낮달
**황석영의 소설을 돌이켜 보는 글을 끼적대다가 문득 떠오른 묵은 글이다. 문학동네에서 2003년에 간행했는데, 2007년에 <심청, 연꽃의 길>로 제목을 바꾸어 새로 펴낸 모양이다. 작가의 문학적 역량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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