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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쑥골통신

오월의 산, 숲은 가멸다

by 낮달2018 2020. 5. 29.

 

 

▲  청미래덩굴 .  경남 의령 지방에서 망개떡이라 하여 팥소가 가득 든 쌀떡을 이 잎에 싸서 먹었다 .

어느덧 오월도 막바지입니다. 오늘은 대구 지방의 온도가 섭씨 35도에 이를 거라니 계절은 좀 이르게 여름으로 치닫는 듯합니다. 서재에서 바라보는 숲은 더 우거졌고 산색도 더 짙어졌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도 얼마간 습기를 머금었습니다.

 

한동안 베란다에 노랗게 쌓이던 송홧가루도 숙지는 듯합니다. 바람을 통해 수정이 이루어지는 이 풍매화(風媒花)는 이제 꽃가루를 날리고 받는 일은 끝낸 것일까요. 수분(受粉)에서 수정에 이르는 6개월 뒤에 비로소 암꽃은 솔방울을 달게 되겠지요. [관련 글:송홧가루와 윤삼월, 그리고 소나무]

 

▲  바람을 통해 수정이 이루어지는 풍매화 ( 風媒花 ) 인 소나무는 한동안 수분을 위해 송홧가루를 날렸다 .

올에 유난히 짙은 향기로 주민들의 발길을 붙들던 아까시나무꽃도 이제 거의 졌습니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요, 아까시나무 꽃잎은 산길 곳곳에 점점이 흩어져 밟히고 있습니다. 싸리꽃도 끝물입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흔히 조팝꽃을 싸리꽃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싸리꽃은 연보랏빛입니다.

 

▲  싸리꽃 .  경상도에선 조팝꽃과 이 꽃을 혼동하기도 한다 .
▲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으아리. 뿌리는 생약으로 쓰인다.

어저께는 산어귀에서 처음으로 으아리꽃을 만났습니다.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이라는 이 꽃의 이름을 나는 인터넷의 고수들에게 물어 알았습니다. 하얗게 정갈한 모양의 꽃잎도 큼직한 이파리도 예사롭지 않은 꽃이었습니다.

 

초봄부터 눈여겨보아 왔던 생강나무는 잎이 무성해졌습니다. 경상도에서 ‘망개’라고 부르는 청미래덩굴도 가지를 뻗으면서 열매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 잎이 넓적해서 경남 의령 지방에서 망개떡이라 하여 팥소가 가득 든 쌀떡을 이 잎에 싸서 먹었다고 하지요. [관련 글: ‘청미래덩굴’과 유년의 기억 하나]

 

▲  경상도에서 ‘망개’라 불리는 청미래덩굴.  열매가 제법 굵어졌다 .
▲ 7월에야 핀다는 쑥부쟁이 한 포기가 철 이르게 산등성이에 서둘러 피었다 .

내려오는 길 산등성이에서는 서둘러 피어난 쑥부쟁이를 만났습니다. 7월에서 10월까지 핀다는 이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 한두 달이나 빠르게 피어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까닭은 무엇인지요.

 

매주 3, 4회씩 산을 오르게 되면서 시나브로 산에 익숙해졌습니다. 그것은 어디쯤 가면 쉼터로 맞춤한 바위가 있다거나 그 바위틈에는 진달래가 핀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뜻이고, 어떤 자리는 지난가을 구절초가 피었던 곳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출퇴근길에 오가던 옛 숲길과 달리 새로 오르게 된 산길은 인적이 드문 편입니다. 사람들은 완만한 반대편 산등성이를 오르내릴 뿐, 물매가 꽤 가파른 이 길로는 잘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호젓한 산길을 편하게 오를 수 있습니다. 짧은 오르막으로 정상에 오르면 내쳐 이어지는 내리막으로 하산하는 길은 더할 수 없이 편안하니까요.

 

산은 몸이 다소간 찌뿌듯하더라도 오르면 역시 잘 왔다고 생각하게 해 줍니다. 거기서 만나는 풀과 꽃, 나무와 숲, 산등성이를 가로지르는 바람, 깊고 오묘한 내음으로 말미암아 산은 늘 넉넉합니다. 그 넉넉함이야말로 산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나누는 선물이지요.

 

▲  산 아래를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 노릇을 하는 바위 .  산 아래는 물론 멀리 금오산 현월봉도 보인다 .

산을 다니면서 생태계에서 ‘유일한 생산자는 식물’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서부터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 이르기까지 명백한 소비자인 동물에 비기면 식물이 하는 일은 ‘생산’입니다.

 

‘유일한 생산자’를 품은 산은 넉넉하다

 

식물은 모든 생물이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물질을 제공합니다. 흔히 ‘광합성’이라고 일컫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물을 햇빛으로 탄수화물로 만들어내고 그 부산물로 산소를 배출하는 식물을 빼고 생태계의 생산자를 이야기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산 아래에 깃들이긴 했지만, 콘크리트더미인 고층 아파트에서 그런 산과 숲을 바라보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축복입니다. 새들의 지저귐에 잠을 깨는 정도는 아니지만, 새벽에 깨어나면 가장 먼저 듣는 게 온갖 새들의 지저귀는 소립니다.

 

그 새소리를 구별할 능력은 아직 없습니다. 산을 오를 때 만나는 새소리 가운데서도 나는 뻐꾸기 소리만 압니다. 나무와 숲을 말하지만 나는 아직 멀었습니다. 저 가면 산과 숲에는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그것이 떡갈·신갈·상수리를, 졸참·굴참·갈참나무를 분간하지 못하는 청맹과니의 산행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2017. 5.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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