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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에 없는 ‘종합소득세’를 내다

by 낮달2018 2020.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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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의 원고료 수입 때문에, ‘종합소득세’ 자진 신고

▲ 나는 지난  5월에 국세청으로부터 ‘종합소득세’ 납부 안내서를 받았다.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모든 봉급생활자처럼 ‘세금’에 관해선 나는 꿀릴 게 없는 사람이다. 우리들의 소득은 얼음같이 드러나 있는, 이른바 유리 지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월 세금을 공제한 급여를 받고, 연말에는 원천징수한 세액의 과부족을 정산한다. 그러니 우리는 비록 자의는 아니지만, 가장 모범적인 납세자인 셈이다.

 

봉급생활이 20년이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 소득에 매기는 세금의 메커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연말정산 때면 으레 가짜 약값 영수증 따위를 만들어 제출하던 시기에도 나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물론 그건 내가 양심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걸 귀찮고 성가신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행위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서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다.

 

정산 업무가 전산화되면서 예전처럼 가짜 영수증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가장 만만한 일로 여겨졌던 종교단체 기부금 영수증 발행도 마찬가지다. 신문 보도를 보면 일부 종교기관에서 돈을 받고 영수증을 발행하다가 적발되었다는 기사가 심심찮으니 말이다.

▲ 봉급생활자의 지갑은 흔히 ‘유리’로 비유된다.

말도 많았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정착되면서 연말정산 업무도 예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나는 모두 5건의 법정·지정 기부금과 역시 기부금으로 처리되는 반납 성과급과 노동조합비, 아내의 종교단체 기부금 등을 네이스에 등록했는데, 그게 얼마쯤의 세액공제로 이어졌는지는 모르겠다.

 

모두 방금 네이스에 접속해서 얻은 결과다. 거기서 확인한 원천징수 영수증에 따르면 근로소득세와 주민세를 합해 내가 지난해 낸 세금은 450만 원쯤 되는 거로 나와 있다. 눈 밝은 이들은 이 세액으로 거꾸로 내 연 소득을 유추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지식으로 풀면 이상적인 세금은 직접세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에 붙는 소액의 재산세와 주민세를 빼면 이 밖에 내가 내는 세금으로 내가 구매하는 상품에 붙어 있는 간접세가 있다. 휘발윳값이 1900원이 넘을 때, 나는 이건희나 시골의 영세농민과 똑같은 금액으로 기름을 넣었다.

 

조세수입에서 간접세 비중이 직접세 비중보다 높아 조세를 통한 빈부격차 해소 의지가 취약한 국가군으로 분류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그걸 불평하는 것은 언감생심이 되나. 소득에 따라 벌금을 차등 부과하는 핀란드의 사례를 생각하는 것도 오버가 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현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아무도 그걸 문제로 여기지는 않는 듯하다.

 

밥벌이를 시작한 이래 근로소득만으로 살아온 내가 지난 5월에 국세청으로부터 ‘종합소득세’ 납부 안내서를 받은 것은 뉴스라면 뉴스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그 안내서는 금년도 종합소득세 신고·납부 기한을 알리면서 ‘기장한 장부에 따라 성실하게 소득세를 납부’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나는 그걸 받고 의심 없이 이게 착오일 것이라고 믿었다. 직장에서 받는 임금 외에 내게 어떤 소득이 있단 말인가. 얼핏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고 받은 원고료를 떠올렸지만 나는 머리를 저었다. 그건 지급 때마다 세금을 공제하고 내 통장으로 입금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튿날, 지역의 세무서로 전화를 걸었다. 나는 별도의 소득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강조했는데, 담당자는 전산 자료에 내가 <오마이뉴스>와 아무개 <기획>사로부터 소득이 발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오마이뉴스>의 원고료? 나는 세금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받았을 뿐이지 않은가?

 

나는 묵은 기억을 뒤져 작년에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의 기관지 <다함께 더 맑게>에서 청탁한 원고를 썼고 그 원고료를 받은 것을 간신히 기억해 냈다. 나중에 <오마이뉴스>에 전화해 보고 나는 이들 회사에서 원고료 지급 사실을 관할 세무서에 신고한다는 걸 알았다. 글쎄, 경위야 어떻든 내가 받은 고작 10만 원짜리 원고료조차 정부 기관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입맛이 썼다.

▲ 학생 세금 문예작품 공모전 (고등부 금상 미림여자정보과학고1 김아현)

세무서의 담당자는 내가 근로소득뿐 아니라 ‘사업 소득’이 따로 있어 이를 종합하여 다시 소득세를 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가 말한 ‘사업 소득’은 두 군데 회사로부터 받은 원고료 125만 원이다. 나는 여전히 ‘종합소득세’에 대한 감이 별로 잡히지 않았지만, 그가 안내한 대로 식구를 보내 이를 ‘성실하게’ 신고했고, 추후 고지된 종합소득세 8만여 원을 냈다. 이러니 나는 역시 모범 납세자(?)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낸 세금에 큰 이의는 없다. 면세점 이하의 소득으로 힘겹게 사는 사람들의 수를 생각해 보면, 세금을 내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호사일지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는 아니지만, 연말정산을 준비하면서 기부금을 부풀리거나 기부금으로 받을 수 있는 세액공제를 계산해 보는 일 따위엔 신경을 끄고 산다.

 

그러나 최근 시국선언으로 확인되고 있는 이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나는 되짚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낸 세금이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훼손하는 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위해서, ‘택도 없는’ 극우 집단의 보조금 따위로 쓰인다고 생각하면 좀 끔찍하지 않은가 말이다. 원천징수라는 방식 앞에서 마땅한 거부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쟁에 반대하는 납세 거부 운동의 역사가 오랜 미국 이야기는 이 땅에서 너무 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은 그가 1846년 멕시코와의 전쟁에 반대해 매사추세츠주의 인두세 납부를 거부한 죄로 하루 동안 수감생활을 한 뒤 나온 역작이라 했던가.

 

세금과는 다르지만, 조만간 관제방송으로 망가져 가고 있는 KBS의 수신료 거부 운동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난생처음으로 ‘종합소득세’를 납부하고 나는, 이 땅의 공민으로서 조세제도와 개인, 납세자와 정부 정책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종합소득세 자진 납부의 달’ 5월을 좀 씁쓸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2009. 6.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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