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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드라마와 영화 이야기

우리 아이들이 본 다큐 영화 <우리 학교>

by 낮달2018 2020.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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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조선 초중고급학교 교원, 학생들과 함께한 3년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 학교>는 김명준 감독이 홋카이도 조선 초중고급학교의 교원, 학생들과 함께 3년여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들의 일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해방 후 재일 조선인들에 의해 세워진 조선학교의 역사와 그 현재에 관한 이야기며, 타국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자기 민족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키려는 민족 구성원들의 이야기이다.

 

지난 5월 18일부터 지역의 한 대학 강당에서 DVD로 <우리 학교>가 상영되었다. 이틀 동안 2회 상영된 이 영화를 본 이들은 약 6백여 명, 그중 100여 명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세계 인식의 폭을 넓히는 매우 좋은 기회임을 역설했고 아이들은 이른바 나의 ‘강추’를 받아들였던 듯하다.

 

금요일 밤의 첫 회 상영에 우리 아이들이 다수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마침 그날이 학교체육대회여서 야간자습이 없었던 탓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아이들은 영화에 집중하는 듯했다. 영화가 끝난 뒤, 무언가에 취한 듯 문을 나서는 아이들에게 나는 ‘어지럽지 않으냐’고 물었는데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이후, 나는 아이들의 솔직한 반응을 구해 보았다. 내가 말했던 ‘혼란’이란 영화가 북을 조국이라고 믿는 아이들의 이야기였다는 점, 북으로 여행을 다녀온 아이들이 보인 반응 따위를 염두에 둔 표현이었다. 그러나 뜻밖에 아이들은 그것을 슬기롭게 정리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일상생활을 함께하던 내레이터(감독)가 북으로 떠나는 아이들을 배웅할 수밖에 없는 장면에서 이 고약한 분단 상황이 모든 혼란의 원천이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100자 평’을 받아 보았다. 다음이 이 소녀들의 100자 평이다. 소녀들의 순수만큼이나 아이들의 다정다감은 그윽하다.

 

마지막 글은 ‘1,000자평’쯤이라고 이름을 붙이자. 생각이 많아져서 고민스러웠던 한 학생의 글이다.

 

“조국 땅이 아닌 곳에서 민족성을 지키려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뜨거운 마음이 느껴졌다.”

 

“잊고 있었던 민족에 대한 자각, 조금의 부끄러움과 연민, 무언가에 홀린 듯 OST를 사 버렸다.”

 

“고향에 갈 수 없는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 보기 위한, 그렇지만 모두 이해할 수 없었던 부족한 두 시간, 복잡한 두 시간이었다.”

 

“위험한 환경 속에서 주체성을 잃지 않고 조선인 학교를 운영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느꼈다. 북한과 달리 우리는 재일교포에 대한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부끄럽고 놀라웠다.”

 

“추운 겨울인데도 민족성을 보여주기 위해 치마저고리를 입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우리보다 훨씬 힘든 교육환경 속에서도 서로 도와가며 공부하는 모습에 나 자신을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 학교라는 다른 선택을 했다면 훨씬 더 편하고 안정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도 우리 학교를 아끼고 조선이라는 민족을 사랑하는 학생들의 모습과 그런 학생들을 위해 불침번을 서기도 하는 선생님들이 멋있었고 또 안타까웠다.”

 

“우리가 무관심하게 지켜본 통일이란 일이 과연 우리에게만 이득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비록 다른 나라 영토에 살지만, 조선이란 이름에 자부심을 느끼며 그 누구보다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그들에게 통일은 더욱 큰 의미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통일에 무관심한 우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학교’에 대한 남한의 태도(지원하지 않고 알아서 하라는 식의…….)에 실망했다.”

 

“재일동포들은 일본 우익들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민족의식이 커진다는 이유로 치마저고리를 입고, 졸업해도 학력 인정도 못 받는 조선학교를 다닌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우리 문화를 대수롭잖게 여기니 부끄럽다.”

 

“학생들이 수학여행 돌아오는 길 차창에 ‘우리나라 통일’이라는 걸 쓸 때 가슴이 찡했다. 나로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고, 쉽게 말하고 들어온 ‘조국 통일’이 그 친구들에겐 가슴 깊이 소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에서 통일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우리 학교가) 졸업해도 자격증을 받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각종 학교로 취급된다는 것, 뭐든지 열심히 하는 아이들에게서 감동을 받았고, 우리가 그들을 보살피지 않는 점이 가슴 아팠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조국이지만 이런 조국을 위해 극우세력의 위협도 감수하면서까지 민족 문화를 보존하고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과 의지가 눈시울을 붉혔다. 그들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호의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놀랐고, 자랑스러웠다.”

 

“수학여행 이후 달라진 학생들의 행동에 놀랐고 조선 국적으로 일본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멋졌다.”

 

가벼워진 몸, 그러나 묵직해진 가슴

- 내가 본 ‘우리 학교’

 

                                                                                                                                                                                               박혜린

영화가 끝나고 떠오르는 엔드크레딧 화면을 흐려진 시야를 통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끝나기가 무섭게 밖으로 나갔던 다른 영화와는 확실히 달랐다. 자막이 모두 올라간 뒤에야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가벼워진 몸, 그러나 묵직해진 가슴을 안고, 천천히 발걸음을 밖으로 옮겼다.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을 통해 퍼지는 그 울림은 계속해서 메아리치는 듯했다. 행복한 웃음을 머금은 눈물 고인 눈은, 들어올 때와는 다른 세상을 보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우리나라를 사랑했던가.

통일 전망대에서 바로 눈앞의 휴전선과 북을 보면서, 백범일지를 보면서 느꼈던 알 수 없는 가슴의 울림이 다시금 느껴졌다. 홋카이도 조선학교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통일에 대한 열망이, 민족성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나에게는 있는가. 어떤 것들을 접했을 때만 반짝하고 마는 마음은 아닌가.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그리 자랑스럽지도, 긍지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한국이라는 나의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지도, 그럴 필요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나라를 사랑하는 척,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척 그렇게 ‘척만 하고’ 살았다.

 

그런 나와는 확연히 다른 우리 학교 아이들. 그들의 말과 행동에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자꾸만 내가 떠올라서, 그들의 말이 내 가슴에 하나하나 꽂히는 것만 같아서. 조선인이 조선학교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위협하는 일본 우익 세력들과 일본인들의 매서운 시선 속에서도 꿋꿋하게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나였더라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편하게 일본 학교에나 다니고, 일본인으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나는 무엇에 굶주려 있는가. 모든 것이 주어져 있고, 부족함이 없어서 소중함을 모른다. 아니, 그 존재마저 잊는다. 대한민국, 국민, 애국심, 통일, 민족성. 한 단어 한 단어를 곱씹어 갔다. 이제는 가슴속 깊이 새겨두기 위해. 이것들에 대한 우리 학교 아이들의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도 함께 담아두기 위해.

 

처음에는 조선학교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인공기를 달고, 북한 말투가 더 강하며, 촌스럽게만 보이는 한복 교복. 게다가 국적은 조선이 대다수였다. 수학여행을 북으로 가고, 갔다 와서는 북한의 냄새를 풍겼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야 그들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을 돌보지 않았던 남한에 비해, 북은 오히려 그들을 도왔고 민족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높이 사고 있었다. 만약 남으로 왔더라면 그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나 같은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씁쓸해졌다.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는 새 뿌리박힌 것일까. 남한이 더 우월하다, 북은 사회주의 국가이며 국민들은 김일성에 대한 찬양으로 일관하며…….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 학교 아이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고향으로 느끼는 것은 남이 아닌 북이다. 그것은 우리가 빚어낸 결과이다. 그들을 우리 품에 품지 못했으니까.

 

같은 민족이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자꾸 다른 민족보다 더 멀어진다. 내가 그랬다. 정말 통일을 원하는 줄 알았던, 조선학교 아이들도 품을 줄 알았던, 그렇게 믿었던 내 마음에 진정 사랑이 없었던 것이다.

 

한민족으로서 사랑으로 조선학교 아이들을, 북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도 매가 아닌 사랑인 것을. 조선학교에는 진정 사랑이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 서로를 보듬어줄 줄 알며, 나라를 사랑할 줄 안다. 이런 마음이라면, 대한민국 전체가 모두 이런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면. 무궁화꽃으로 우리 가슴에 한 송이씩 피어서, 삼천리 금수강산 가득 무궁화로 울렁거릴 그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휴전선도, 이념도, 대립도 없이 ‘하나’가 되는 그때가.

 

덧붙임: 축구 경기에 임하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포들에게 감동을 주려는 사명감과 부모, 학교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한다는 말.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싸우려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져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들은 울었고, 나도 함께 울었다. “최선을 다했다. 헛되이 하지 말자. 이 경험 재산으로 하자.” 감독의 말과 땅을 쥐며 우는 그들의 소리는 내 가슴에서 아직도 울리는 듯하다.

 

 

2007. 5.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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