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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2136

‘내복과 담요’, 학교의 겨울나기 추운 학교, 내복과 담요로 겨울나기 드디어 ‘내복’을 입다 어제 수능 감독을 하면서 올해 처음으로 ‘내복’을 입었다. 감독은 피하고 싶었지만 3학년 담임 빼고 수험생 학부모 빼고 하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행히 원한 대로 복도감독에 선정되었다. 2개 층에 세 명의 교사가 배치되어 각 고사장에 연락하거나 결시생을 파악하는 등의 업무를 맡는 자리다. 난방이 되는 고사장에 직접 들어가는 감독관이면 굳이 방한을 준비할 일은 없다. 그러나 내가 근무할 장소는 정작 볕이 나는 바깥보다 더 추운 복도다. 지난해에 편하다고 복도감독을 했다가 추위에 당한 동료 하나는 아예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짧으면 80분, 길면 126분 동안이나 꼼짝없이 수험생들을 지켜봐야 하는 감독관보다 못하랴. 나는 아.. 2020. 11. 17.
‘꽃이’· ‘밭이’를 [꼬시]·[바시]로 읽는다? ‘받침의 연음’에 관하여 얼마 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이를 전하는 보도전문 채널의 뉴스를 시청하면서였다. 특별 출연한 정치평론가와 대학교수가 개표 과정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트럼프의 지지세가 강한 조지아주 등 몇 지역을 언급하면서 ‘텃밭’이란 표현을 썼다. [터빠치]와 [터빠시] ‘텃밭’이란 물론 “집의 울타리 안에 있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을 이른다. 트럼프의 정치적 근거지라는 뜻으로 이 낱말을 쓰는데, 두 사람의 발음이 서로 달랐다. 한 사람은 ‘텃밭인데’를 [터빠신데]로 발음했고, 다른 사람은 ‘텃밭이’를 [터빠치]라고 정확하게 썼다. [터빠신데]로 말한 이는 ‘ㅌ’을 ‘ㅅ’으로, [터빠치]로 읽은 사람은 ‘ㅌ’을 ‘ㅊ’으로 발음했다. 이 ‘ㅅ’과 ‘ㅊ’이 뒤에 연음(連音)되어 [-신.. 2020. 11. 16.
교사의 ‘격려’와 ‘질책’ 사이 교사의 ‘격려’와 ‘질책’은 어떻게 학생에게 다가가는가 두어 주일 전에 옛 제자가 안부를 전해 왔다. 인근에 사는 이 군인데 날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제 선배 정 군과 함께 들르겠단다. 정 군은 제자는 아니고, 이 군이 졸업 후 활동했던 지역 풍물 놀이패의 일원이었다. 빗속에 두 친구가 왔다. 나는 이 친구들을 삼겹살을 잘하는 동네 음식점으로 데려갔다. 3년, 혹은 20년 만의 해후 두어 해만인데도 이 군은 꽤 변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꽤 나이 들어 보이는 데다 고개를 숙이는데 정수리가 훤하다. 동행한 정군도 머리숱은 괜찮은데 역시 정수리 쪽이 듬성듬성하다. 마흔넷과 마흔여섯. 그럴 나이지만, 이 사람들이 벌써 머리가 이리 빠져서 어떡하노, 나는 농을 걸었다. “오랜만이야. 잘 왔어. 잘 지냈지?” “선.. 2020. 11. 16.
중증장애인과 함께한 12년, 그 치유와 성장 [서평] 홍은전 지음, 노들의 배움·노들의 투쟁·노들의 일상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칼럼 몇 편을 읽고 지은이가 쓴 책을 주문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글 한 편에 드러난 글쓴이의 생각과 세계관에 대한 뜨거운 공감과 공명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홍은전을 만난 것은 여러 해 전부터 이어져 온 의 칼럼 ‘세상 읽기’를 통해서였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실패한 적 없는 기우제' 이야기 중증장애인에 관한 글을 주로 썼던 노들장애인야학(아래 ‘노들’) 교사 홍은전의 글을 나는 빼먹지 않고 읽었다. 그리고 그가 쓴 글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그게 그의 삶과 실천에 이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의 글에는 삶에 관한 얕지 않은 성찰이 담겨 있었고, 그가 담담히 들려주는 이야기는 읽는 이의 마음.. 2020. 11. 15.
연악산 수다사(水多寺), ‘은행’ 대신 ‘단풍’ 구경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수다사의 단풍 어제 오후에 수다사(水多寺)를 다녀왔다. 수다사 은행나무를 보러 가겠다고 벼르기만 하다가 뒤늦게 길을 나선 것이다. 농소리 은행나무 구경을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설 때 근처에 사진기를 들고 있던 초로의 사내가 넌지시 한마디를 건네주었다. 사진 찍기로는 수다사가 낫지요……. 옥성면 농소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25호 은행나무를 보러 간 건 꼭 한 주일 전이다. 그러나 450년 수령의 은행나무는 올해도 나를 실망하게 했다. 여러 해 전에 들렀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내가 늦었다. 높이 30m에 이르는 나무 오른쪽 큰 가지의 잎이 죄다 떨어지고 없었다. 지난 10월 말일에는 인동 동락서원(東洛書院)을 찾았었다. 스무 살 남짓할 무렵 삼종숙을 따라 인근 선산에 시제(時祭.. 2020. 11. 15.
성폭력, ‘욕정’을 못 이겨서? 언어에 숨은 ‘남성중심주의’와 뒤틀린 ‘여성관’ 말과 이데올로기- 과부, 혹은 미망인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언어가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을 때가 많다. 기본적으로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그 이전에 세계를 이해, 인식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매체이다. 연속적인 세계를 불연속적인 것으로 끊어서 표현하는 과정에서 언어는 그 운용자의 주관과 이해를 일정하게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 사회의 지배적 이념이나 태도가 시나브로 섞여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유난히 두드러진 ‘근로’와 ‘노동’의 대립은 바로 그런 현상의 좋은 보기다. ‘힘써 부지런히 일하다’라는 의미의 ‘근로’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함,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체력이나 정.. 2020. 11. 15.
‘겨울 공화국’을 다시 읽으며 양성우 시인의 저항시 ‘겨울 공화국’ 뜬금없이 양성우의 시 ‘겨울 공화국’을 떠올린 것은 며칠 전이다. ‘뜬금없이’라고 는 했지만 기실 이게 뜬금없는 일만은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안다. 2015년, 40년 전 유신 독재 시절의 비유 하나가 환기하는 기시감 때문이다. 양성우(1943~ ) 시인이 광주 YMCA에서 열린 구국기도회에 참석하여 이 시를 낭송한 것은 1975년 2월이었다. 그 3년 전에 박정희는 종신 집권을 위해 설계된 절대적 대통령제인 이른바 10월 유신을 단행했다. 비상계엄령 아래 위헌적 절차에 의한 국민투표로 제3공화국 헌법을 폐지하고 유신헌법을 확정 공포한 것은 두 달 후인 12월 27일이었다. 유신체제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선거가 아닌, 관제 기구에 불과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선거로.. 2020. 11. 14.
무제, 어떤 ‘증서’ 한 장 민주화운동 관련자 증서 쑥스럽지만 한 번 더 청승을 떨어야겠다. 며칠 전, 택배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위의 봉투와 증서를 받았다. 겉봉을 뜯으니 위의 제법 두꺼운 봉투가 나오고 그 안에 검정 보드로 된 하드 커버 안에 ‘민주화운동 관련자 증서’가 들어 있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그게 여야 공동발의로 만든 우리 시대의 민주화 장정에 대한 ‘타협의 헌사’다. ‘유공자’라는 이름은 그들을 탄압하고 내쫓고 고문하고 감옥에 보냈던 과거 집권 세력에게는 ‘껄끄러운’ 찬사였을 터이니 말이다. 어쨌든 그 증서는 선명한 금색 정부 문장 아래 내 이름을 선명히 박아 놓고 있었다. “귀하는 대한민국의 민주 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켰으므로 의 규정에 의하.. 2020. 11. 13.
시인의 마을, 생명의 숲을 찾아서 경북 영양 ‘주실마을’ 기행 전날 마신 술이 미처 깨지 않은 주말 아침에 아내를 재촉하여 길을 나선다. 오늘의 여정은 경북 북부의 3대 오지인 이른바 ‘비와이시(BYC, 봉화·영양·청송)’ 가운데 하나인 영양이다. 내 계산은 아주 단순했다. 나는 영양 ‘주실마을’을 들렀다가 그 마을 숲을 만난 뒤 ‘대티골 숲길’을 한 바퀴 돌아보리라고 생각하였다.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注谷里) 주실마을 숲은 지난해에 베풀어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받았다. 올해는 같은 면 용화리의 ‘대티골 숲길’이 어울림 상을 받았으니 영양의 숲은 시방 이태에 걸쳐 ‘아름다운 숲’으로 기려지고 있는 참이다. 그뿐이 아니다. 주실마을이 어디인가.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이 태어난 동네다. 19.. 2020. 11. 12.
사이버 모욕죄, ‘파놉티콘(Panopticon)’을 꿈꾸는가 전문가들, ‘사이버 모욕죄’ 입법 반대, 법안 철회 촉구 사이버 모욕죄, 표현과 민주주의 어제는 이른바 ‘빼빼로데이’였다. 말하자면, 어느 제과업체에서 만든 과자 이름이, 11월 11일이라는 날짜 표기와 겹치면서 무싯날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아이들과 ‘상업적’으로 만난 날이다. 이날, 법학·언론학 등 전문가 229명이 선언을 통해 정부의 ‘사이버 모욕죄’ 입법에 반대하고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고 한다. 말도 많던 그 ‘사이버 모욕죄’다. 한 배우의 자살을 계기로 그 배우의 이름을 붙이다가 유족의 항의를 받았던 그 법이다. 사이버 모욕죄가 ‘표현의 자유ㆍ민주주의 침해’일 뿐 아니라, ‘한국 지성의 말살 기도’라는 주장을 구태여 되뇔 필요는 없을 터이다. ‘OECD 국가들 대부분에서 이미 폐기되었거나 실질.. 2020. 11. 12.
100일 간다는 온돌 ‘아자방’은 [아:짜방]이다 온돌 ‘아자방’의 발음은 [아:짜방] 지난 7일 밤 케이블의 보도전문 채널 뉴스에서 경남 하동 지리산 칠불사에 있다는 ‘아자방(亞字房)’ 관련 뉴스를 시청했다. 기자가 [아자방]이라고 읽어서 나는 무언가 하고 귀를 쫑긋했는데, 화면에 잠깐 비친 그 선방의 편액 ‘亞字房’을 보고서야 그게 [아:짜방]의 오독임을 알았다. 천 년 전, 신라 효공왕 때 지었다는 이 선방은 방안 네 귀퉁이를 높게 만들어 그 모양이 한자 ‘버금 아(亞)’를 닮아 ‘아자방’으로 불린다. 한 번 불을 지피면 온기가 100일이나 이어졌다는 기록이 에 전하는데 최근 발굴·복원 작업으로 그 비결이 밝혀졌다는 기사다. 아자방이 온기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가마 형태의 대형 아궁이에 이중 구들을 사용해 불이 서서히 오래 타도록 하고, 한 번에 .. 2020. 11. 11.
일연의 인각사, 혹은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가을 나들이 ②] 군위 인각사(麟角寺) 아미산 가는 길에 애당초 내 여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인각사에 들른 것은 아쉬움 때문이다. 군위군이 브랜드 슬로건으로 선정할 만큼 일연과 , 그리고 인각사는 지역의 풍부한 문화 콘텐츠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인각사는 한적한 시골, 초라한 전각 몇 채가 쓸쓸하게 서 있던 20여 년 전의 풍경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일연이 를 편찬한 절집이라고 해서 인각사가 규모를 갖춘 사찰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나는 거기서 일연의 시대를 떠올릴 단서라도 하나 찾아보고 싶었다. 아직도 인각사 대신 ‘인각사지’인 까닭 인각사는 고로면 화북리 화산(華山)의 북쪽 기슭 강가 퇴적 지대에 자리 잡은 절이다. 등에 의하면, 인각사 북쪽에 있는 높은 절벽에 전설상의 동물인.. 2020.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