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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무제, 어떤 ‘증서’ 한 장

by 낮달2018 2020.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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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관련자 증서

 

쑥스럽지만 한 번 더 청승을 떨어야겠다.

 

며칠 전, 택배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위의 봉투와 증서를 받았다. 겉봉을 뜯으니 위의 제법 두꺼운 봉투가 나오고 그 안에 검정 보드로 된 하드 커버 안에 ‘민주화운동 관련자 증서’가 들어 있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그게 여야 공동발의로 만든 우리 시대의 민주화 장정에 대한 ‘타협의 헌사’다. ‘유공자’라는 이름은 그들을 탄압하고 내쫓고 고문하고 감옥에 보냈던 과거 집권 세력에게는 ‘껄끄러운’ 찬사였을 터이니 말이다. 어쨌든 그 증서는 선명한 금색 정부 문장 아래 내 이름을 선명히 박아 놓고 있었다.

 

“귀하는 대한민국의 민주 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켰으므로 <민주화운동 명예 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이 증서를 드립니다.”

 

내게 민주헌정 질서 확립에 이바지한 기억은 없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 회복·신장이라면 콩꼬투리만 한 이바지를 했을 수는 있겠다. 숨 막히는 학교 현장에서 ‘인간’과 ‘사랑’과 ‘공동체’를 이야기한 덕분에 다섯 해 가까이 학교 밖에 밀려나 있었던 시간 말이다. 그러나 그것과 이 하드 커버 증서를 받는 일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동봉한 생활지원금 신청서는 내게 해당하지 않는다. 그건 실제로 힘들게 싸워온 이들에게 돌아가는 게 맞다. 교육부의 관리들 말마따나 스스로 감수한 희생이니 생색을 내고픈 생각은 없다. 다만 바랐던 것은 그 시절의 우리가, 우리의 선택이 정당했다면, 우리의 연륜을 존중해 달라는 것뿐이다. [관련 글 : 노숙(露宿)의 기억]

 

그러나 위의 증서가 아마 이 정부가 베푸는 마지막 회신 같다. 이제 이 정부의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따로 기대하지 않았으니 실망할 일은 별로 없다. 남은 일은 저 증서를 어디다 처박는 일뿐인 듯하다. 아니면 어디 고가의 액자에 넣어 가보로 간직하든지…….

 

 

2007. 11. 1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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