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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1 텃밭 농사 ①] 다시 또 텃밭 농사를 시작하다

by 낮달2018 2021.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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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퇴비 뿌리기(3월 16일)

▲ 3월 16일, 농협에서 퇴비 4포대를 사서 양쪽 밭에다 뿌렸다. 

해마다 농사를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의논이 엇갈린다. 아내는 아내대로 왕복 1시간 이상이 걸리는 텃밭 탓을 하면서, ‘기름값 타령’을 하곤 했다. “사 먹는 게 낫지, 기름값도 안 나오는 농사” 운운하는 이 레퍼토리는 전통과 역사도 깊다. 그러나 이 푸념은 반만 진실이다. 아내가 그걸 이유로 농사를 접겠다고 결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손바닥만 한 텃밭에 불과하지만, 농사가 주는 기쁨만큼 가끔은 억지로 시간을 내어 텃밭을 돌보아야 하는 부담도 있긴 하다. 이참에 농사를 엎어버릴까 하는 유혹이 전혀 없지도 않은 텃밭 농사를 우리는 10년도 넘게 지어 오고 있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 텃밭이 남의 땅이 아니라, 장모님이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한 주에 두어 번 텃밭을 돌보러 드나들면서 비어 있는 집을 챙기는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이유다.

올해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텃밭 농사의 첫발을 뗀 게 지난 3월이었다. 3월 16일, 고아농협에서 퇴비 4포를 사서 새 밭과 묵은 밭에 각각 두 포씩 뿌렸다. 지난해보다 1포씩 적게 뿌린 것은 그게 과하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압축해 놓은 퇴비는 쉽게 녹지 않아서, 꽤 오랫동안 밭에서 발견되곤 한다.

2. 멀칭 작업(4월 22일)

▲ 밭은 일구어서 이랑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삽으로 간신히 하는 작업이라 깊이 파기도 어렵다.
▲ 묵은 밭은 이랑을 세 개로 줄였다. 그만큼 이랑 간격을 넓게 했다. 그게 바람을 잘 통하게 하고, 병충해에도 좋다고 한다.
▲ 새 밭은 길이로 내던 이랑을 반대 방향으로 하여 7개 이랑을 만들었다. 역시 이랑 간격을 널찍하게 했다. 

파종할 이랑을 만들고, 거기 비닐(폴리에틸렌 필름)을 씌우는 멀칭(mulching) 작업을 했다. 멀칭은 우적(雨滴)침식을 방지하고 토양 수분 보존, 온도조절, 표면 고결(固結) 억제, 잡초 방지, 유익한 박테리아의 번식 촉진 등의 효과를 얻는 방법이라고 한다.

텃밭 농사나 주말농장을 하는 이들 가운데, 아예 멀칭을 금기시하는 이들도 있는데 우리는 맨 처음 고추 농사를 지을 때부터 당연한 것처럼 그걸 했다. 멀칭을 하는 게 자연농법에 반하기 때문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거로 따로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농약을 치는 문제로는 여러 해 고민을 했지만.

해마다 하는 멀칭이지만, 올해는 좀 이랑의 형태를 다르게 했다. 이랑을 둥글게 하지 않고, 평평하고 한 것은 아내가 농사짓는 친구의 조언을 들은 결과다. 둥글게 하면 내린 비가 다 미끄러져 내리니, 옆으로 평평하게 하면 빗물이 고여서 적시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는 이랑 사이의 간격을 기존의 두 배 정도로 벌렸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해마다 이랑을 짓다 보면, 고추가 자라면 사이로 지나다니기도 불편할 정도가 되기 일쑤였다. 실제 이랑 간격을 벌리는 것은 바람이 잘 통하게 하여 병충해를 줄이는 효과까지 있다는 걸 우리는 미처 몰랐었다.

이랑 간격을 벌리니 묵은 밭은 세 이랑밖에 안 나왔다. 새 밭은 남북으로 길게 내던 이랑을 동서로 내 이랑 길이가 상당히 짧아졌다. 이랑을 다 내고 보니, 그게 맞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는 이런 변화가 올 고추의 풍작을 약속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3. 모종 심기(4월 29일)

▲ 고추는 원래 낸 세 이랑과 앞쪽으로 짧은 이랑 두 개를 새로 냈다. 앞 왼쪽은 부추, 오른쪽은 상추다. 
▲ 새 밭 끄트머리에는 어린 대파를 심었다. 

애당초 농사를 짓자고 할 때 굳이 뭘 심을까 고민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해마다 고추를 심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고추 농사를 시작한 게 2004년이다. 중간에 마땅한 땅을 빌리지 못해 거른 게 두어 해쯤 되고 구미로 와서 장모님 농사지은 걸 얻어먹은 4년을 빼면 우리는 해마다 소꿉장난처럼 텃밭 농사를 지었다.

우리 농사가 소꿉장난에서 졸업(?)한 게 지난해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시골의 텃밭과 함께 아파트 앞 공터의 땅을 빌려서 고추를 심었는데, 모종은 처음으로 육묘장에 가서 ‘족보’가 있는 놈으로 사 왔다. 고추는 자라면서 그 혈통을 증명해 주었는데, 그건 우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크기(주로 장모님 농사에서나 보는)의 고추였다. [관련 글 : 2020 텃밭 농사 시종기 고추 농사 , 고추 농사 ]

이 엄청난 열매 앞에 흥분한 우리는 그걸 지킨다고 여러 번 농약을 치면서 노심초사했다. 결국 파장에는 병충해에 손을 들고 말았지만, 우리는 두 군데 밭에서 고추를 20근이나 땄다. 우리 집에서 한 해 동안 먹는 고춧가루는 전적으로 우리가 농사지은 것으로 충당했으니, 소꿉장난을 면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지 않은가.

4월 28일, 김천시 아포읍의 육묘장에서 고추 모종을 포기당 500원, 80포기를 샀다. 박과 호박, 가지 등도 3~4포기씩 샀다. 다음 날 우리는 고추와 다른 채소를 심었다. 아내는 시장에서 사 온 어린 대파를 고추밭 끝 가장자리에 심었다. 집에서 파를 기르는 이른바 ‘파 테크’가 유행할 만큼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던 대파는 요즘 값이 내려갔다. 그러나 대파는 어린 고추 모종뿐인 우리 텃밭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한 주에 한 번 이상 텃밭에 들를 때마다 우리 고추는 무럭무럭 자랐다. 작년 거에 비기면 키가 작지 않나 싶었어도 튼특한 대에 믿음이 갔다. 그 믿음이란 올해도 지난해 못지않게 풍작을 기록해 주리라는 기대다. 지난해의 반을 겨우 넘기는 수준의 파종을 해놓고 욕심이 과했는지 모르겠다.

2021. 6.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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