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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18 텃밭일기 1] 작물은 절로 자라는 줄 알았다

by 낮달2018 2021.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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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중순께 우리는 묵은 밭에 퇴비를 뿌리는 거로 올 농사를 다시 시작했다 .
▲ 1주일 후에 우리는 밭을 고르고 비닐을 이용하여 고추 모종을 심었다 .  탄저를 예방하고자 이랑을 좀 띄었다.

글쎄, 간간이 짬을 내어 돌보아 온 텃밭에 불과하긴 하나 그간 햇수로 치면 우리 내외의 농사는 여러 해 연륜(?)을 쌓았다. 어쨌거나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기쁨과 안타까움을 맛보면서 농부의 마음도 얼추 헤아리게 되었다는 건방을 떨 정도였으니 말이다.

 

2018년 텃밭 농사를 시작하다

 

해마다 농사일을 시작할 때를 미루고 늦추다 간신히 모종을 심고 시작하는 텃밭 농사,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겨우내 거의 찾지 않았던 텃밭을 찾은 게 4월 중순께다. 3월에 아내가 뿌려둔 상추가 겨우 싹을 내밀고 있는 묵은 밭은 그나마 깨끗했지만, 유채를 뿌려두었던 새밭은 유채 대와 웃자란 풀로 무인지경이었다.

 

한 시간 남짓 대와 풀을 뽑아내고 장모님이 남긴 마지막 퇴비 네 포대를 풀었다. 퇴비 뿌리고 일주일쯤 묵힌 다음 파종을 한다고 다음 주에 들러 고추와 가지, 호박, 상추 모종을 심고 조선 배추는 씨를 뿌렸다.

 

그다음 주는 아내 혼자서 다녀왔고 나는 다시 일주일 뒤에 밭에 들렀다. 포기당 100원을 더 주고 사 온 고추 모종인데 어쩐지 통 자란 것 같지 않다고 아내는 구시렁댔다. 나는 좀 기다려보자고 달래며 고추에 지지대를 박았다. 끈은 찾으니 없어서 다음 들를 때 묶기로 하고.

 

지난주 금요일 아침에 나일론 끈 한 뭉치를 사서 들렀더니 키는 자라지 않은 듯한 고추가 새끼손가락만 한 열매를 하나씩 달고 섰다. 나는 끈으로 고춧대를 지지대에 묶어주면서 어젯밤 유튜브에서 여러 차례 영상을 보면서 익힌 대로 곁순을 제거하고 방아다리에 달린 첫 열매를 따 주었다.

 

▲ 방아다리에 첫 고추가 달렸다. 이걸 따는 게 고추 기르기의 요체라 해서 미련 두지 않고 땄다.
▲ 3월에 뿌려둔 상추는 제법 자랐고, 왼쪽에는 가지와 파를 심었다. 맨 앞은 작년에 이은 부추.

자라기 시작한 고추는 가지가 와이(Y) 자로 갈라지는 곳(여길 흔히 ‘방아다리’라고 하는데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다.)에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린다. 이를 ‘1화방’(이도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이라고 하는데 이는 제거하는 게 좋다. 왜냐하면, 제일 먼저 달린 열매를 키우기 위해 작물은 자라는 것을 멈추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기 때문이다.

 

방아다리의 1화방, 첫 고추를 따내다

 

양분이 위로 올라가면서 많은 열매가 맺히도록 하려면 방아다리 고추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아다리 아래쪽의 잎은 광합성을 할 수 있도록 남겨두되 새로 벋어 나오는 곁순은 모두 따 주는 것도 필수다. 결국 곁순 따기나 방아다리 고추 제거는 고추가 튼튼하게 자라 열매를 실하게 맺도록 하는 조치인 셈이다.

 

고추를 따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곁순과 잎은 언뜻 구분이 쉽지 않았는데 같은 작업을 거듭하면서 자연스레 깨우치게 되었다. 식물 성장의 구조는 잘 알지 못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작업을 끝내고 나는 잠깐 망연해졌다.

 

학교 운동장 가에 고추를 심어 가꾸기 시작한 게 2004년이다. 당시만 해도 끊임없이 고랑에 돋아나는 풀과 씨름하는 게 내 농사의 전부였다. 빛깔 고운 고춧가루 몇 근을 수확하고 행복해하였던 기억이 지금도 아련하다. [관련 글 : 초농기(初農記), 첫 농사의 기록]

 

▲ 방아다리에 달린 첫 고추를 따니 이만큼이 되었다. 오른쪽은 파프리카.
▲ 방아다리 고추를 따고 지지대에 묶은 우리 고추밭 . 1 화방을 따준 올 농사는 작년보다 나을 수 있을는지.

그리고 띄엄띄엄 해를 걸러 가며 텃밭을 가꾼 게 얼추 10년이 넘은 셈인데 나는 한 번도 고추 농사를 짓는 방법 따위를 고민한 적이 없었다는 얘기다. 땅이 있고 거기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으면 땅과 작물이 저절로 자라는 줄로만 알았던 게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손바닥만 한 땅에 소꿉장난하듯 하는 농사니 그걸 고민하고 연구할 계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 아무 고민도 하지 않고 씨뿌리고 모종만 심으면 작물은 알아서 자라주기도 했다. 더 실하게 수확하지 못했을 뿐, 그게 수확에 지장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 턱도 없는 농사를 지으며 모든 농사꾼이 그렇게 농사짓는 줄로만 여긴 것이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하던 일이 잘 안 되면 ‘시골 내려가 농사나 짓지’라고 하는 푸념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여느 사람이 그러하듯 나는 농사짓는 걸 아주 손쉽게 여기고 무시한 것이다.

 

그것은 땅은 원래 거기 있는 것이고, 거기다 씨를 뿌리거나 작물을 심기만 하면 절로 햇볕과 바람이, 흙의 수분과 영양이 옹근 열매를 맺어줄 것이라는 단순한 확신일 터이다. 단지 오랜 경험만이 필요할 뿐, 거기엔 어떤 특별한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고 사람들은 여기는 것이다.

 

누구나 농사를 우습게 안다. 정말?

 

그러나 진짜 농사꾼은 증산을 위한 기술을 몸에 붙이고 산다. 어떻게 해야 고추가 튼튼하게 자라는지, 어째야 더 실하고 굵은 열매가 달리는지를 전승과 경험을 통해 체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 농업이 더는 제대로 된 소득원이 되지 못하게 된 이 시절을 그나마 버티게 해 주는 것이다.

 

▲ 요즘은 흔한 게 장미다. 텃밭 옆 허물어져 가는 담장에 이웃집이 피워올린 장미꽃이 화사하다.

오늘 아내는 혼자서 텃밭을 다녀왔다. 나는 고추가 제대로 자랐느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농작물을 쑥쑥 자라게 하는 것은 얼치기 농부의 조바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임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면 바람과 햇볕, 물과 영양분을 받아들이며 작물은 스스로 자란다. 그 성장을 살피되 일희일비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2018. 5.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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