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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1 텃밭 농사 ③] 텃밭 농사도 ‘심은 대로 거두기’는 매일반

by 낮달2018 2021.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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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풀매기(6월 5일)

 

▲ 열흘 만에 들른 텃밭. 고랑에 풀이 빽빽하게 돋아났다. 

지지대를 세워준 게 5월 26일, 열흘 만에 텃밭에 들르니 고랑마다 돋아난 풀이 말이 아니다. 일찍이 첫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나는 텃밭 일이 풀과의 씨름이라는 걸 알았다. [관련 글 : 초농기(初農記), 첫 농사의 기록] 며칠만 한눈을 팔면 풀은 마치 임자의 게으름을 비웃듯 밭고랑을 잠식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바랭이 등 잡풀들의 공세에 기가 질리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새록새록 나날이 짙어지는 잡풀의 기습을 불가항력이라고 느낀다면 ‘폴과의 공존’을 선택해도 좋다. 요즘 농사꾼 가운데서는 굳이 고랑의 풀을 뽑지 않고 버려두는 경우도 흔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내는 곧이곧대로 농사일을 곁눈질하며 자란 사람이라, 풀과의 공존 따위를 입 밖에 낼 수 없다. 부지런히 틈만 있으면 놈들을 뽑아내야 하는 것이다. 임자 몰래 고랑을 잠식해 오는 풀에 무슨 죄가 있으랴. 그 녀석들은 나름대로 자기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일 뿐이니.

 

한 시간쯤 재게 손을 놀리면 풀매기가 가능할 듯해서 우리는 호미를 들고 고랑 하나씩을 차지하고 작업 방석을 깔고 앉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 일은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차라리 큼직한 놈이라면 일이나 수월하지, 자잔한 잡풀을 뿌리까지 제거하려면 적지 않은 인내심과 끈질김이 필요하다.

 

▲ 아내는 대체로 쉬지 않고 일하는 편이지만, 나는 중간에 커피를 내려 한 잔씩 마시는 등 적당히 게으름을 부리곤 한다.
▲ 사람 손이 두어 시간 미치니 이렇게 바뀌었다. 어른 말씀처럼 '내 손이 내 딸'이다. 

넉넉하게 두 시간쯤 지나서야 풀매기는 끝이 났다. 우리가 지나오면서 풀이 뽑힌 밭고랑은 인물이 훤하게 났다. 참, 사람 손이 무섭긴 하네. 우리는 좀 만족스럽게 그런 말을 서로의 노동을 치하하고 잠깐 쉬었다. 그 중간에도 나는 원두커피 한 잔을 내려서 마셨다. 그게 내게 일종의 ‘참’이었던 게다.

 

2. 약 치기(6월 9일)

 

▲ 새 밭 가장자리에는 대파와 배추, 그리고 담 밑에는 호박을 심었는데,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 새 밭 한쪽에 심은 가지. 세 포기뿐이지만, 여름내 우리 집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채소다. 심어놓고 돌보지 않아도 되는 효자 작물이다.

집은 며칠만 비워도 금방 축이 간다. 빈집인 걸 어찌 아는지 마당에는 잡풀의 잔치가 벌어지고, 눈이 미치지 않는 뒤란이나 집 옆은 이내 웃자란 풀들로 빽빽해진다. 자주 오지 못해 집을 관리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아내는 제초제를 치기로 했다.

 

고작 텃밭 서너 평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을 친다고 하는 말을 하기가 부끄럽긴 하다. 우리가 처음으로 농약을 친 건 2017년이었다. 때 이른 ‘진딧물’의 습격에 아내는 손을 들었고, 그걸 막는 길은 약을 치는 길밖에 없다고 이웃 어른이 충고해 주었기 때문이다. [관련 글 : 2017 텃밭 일기 기어코 농약을 치고 말았다]

 

우리 내외는 농약 치는 문제로 고민을 거듭했다. 띄엄띄엄 4, 5년 농사 흉내를 냈지만 한 번도 약을 치지는 않았고 그래도 농사를 망치지는 않았다. 농약으로 칠갑을 한다는 비난을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농민들의 처지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고작 텃밭 한 자락 농사를 시작한 우리가 이럴진대 제대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민들은 오죽하겠는가.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을 쓰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것은 작물을 병충해와 나누어 먹는 걸 감수하며 마음을 비워야 한다. 10년 넘게 우리는 농약 없이, 땅심에 의존해서 작물을 길렀다. 그러나 우리의 인내력은 진딧물의 습격 앞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무릇 모든 일은 시작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수월해진다. 도둑질이 그렇다고 할진대 내가 먹을 채소에 농약 좀 뿌리는 일은 ‘말해 무삼하리요’다. 나는 이 ‘농약 치기의 윤리’ 앞에서 가벼워지기로 했고, 농약이 필요하면 무심히 그걸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텃밭 농사에 농약을 친다고 비난한다면 그걸 무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알러지로 고생하고 있는 나를 대신하여 약은 아내가 쳤다. 적지 않은 무게의 분무기를 메고 약을 치는 아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내가 ‘농장주’임이 분명하다고 느끼곤 한다. 제초제에 이어 진딧물과 총채벌레 등 약 등 서너 종을 섞어서 치고 나서 우리는 텃밭을 떠났다.

 

3. 지지대 보완과 풀매기(6월 19일), 그리고 첫 수확(6월 22일)

 

▲ 고추는 이제 가지가 버거울 만큼 풍성하게 달려서 큼직하게 익어가고 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6월 22일)
▲ 첫 호박. 자주 들르지 못하다 보면 호박은 이내 커 버려 먹기에 곤란해지곤 하는데 이번엔 적당하게 익은 놈이다. (6월 22일)

포기마다 지지대를 세우고 줄기와 묶어준 게 지난 5월 26일이었다. 6월 초순께 아내는 강풍이 분다는 뉴스를 듣더니 혼자 텃밭에 가서 한나절 동안 이랑별로 좌우에 지지대를 박고 거기 끈을 두르는 방식으로 지지대를 보완했다. 둘이 갔으면 한결 수월했을 것을 아내는 고집을 부린 것이다.

 

그리고 6월 19일에 다시 텃밭에 들러 풀을 한 번 더 맸다. 지난번에 워낙 알뜰하게 맨 덕분에 일은 훨씬 수월했다. 고랑이 돋아난 풀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흘 후에 한 번 더 들러서 밭을 살폈다. 중간에 비가 넉넉하게 내린 덕분에 고추는 성큼 큰 키에, 가지마다 커다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그걸 들러보는 기분은 각별하다. 올해도 모종을 육묘장에서 사 온 게 최선이었음을 확인하고, 우리 내외는 마주 보며 싱글벙글했다. 아, 방앗다리에서 따낸 고추가 아니라, 집에서 먹으려고 아내는 풋고추를 좀 땄다. 어른 손가락보다 더 길고 굵은 고추를 바라보며, 나는 올해도 풍작을 은근히 빌고 있었다.

 

▲ 이웃집 대문간에 만발한 능소화.(6월 22일) 
▲ 동네 어귀의 보리도 익었다. (6월 5일)

아, 해마다 재미를 보지 못한 호박, 올해는 일찌감치 1개가 달렸다. 호박도 종자가 좋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걸 따 들고 집에 오는데, 사랑스러워서 보고 또 보곤 했다.

 

이웃집 대문채 위에 풍성하게 핀 능소화가 새삼스레 계절을 환기해 준다. 동네 어귀의 보리는 다 익었고, 슬슬 모내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2021. 7. 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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