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맞은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
<오마이뉴스>에 블로그를 열고 첫 글을 올린 게 2006년 12월 15일이었다. 애당초 첫 글을 쓰면서도 이 새집을 얼마 동안이나 꾸려갈 수 있을지는 별 자신이 없었다. '다음'과 '천리안'에 각각 블로그를 열었다가 이내 그걸 허물어 버린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련 글 : 카메라, 카메라]
블로그 10년(2006~2017)
그러나 햇수로 치면 11년째, 용케도 나는 오늘까지 이 둥지를 꾸려왔다. 전적으로 이는 그만그만한 삶의 장면들을 되새기며 주절댄 내 푸념과 넋두리를 읽고 격려해 준 이웃들 덕분이다. 신통찮은 글을 기사로 만들어 준 <오마이뉴스>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2013년 10월 15일에 나는 “블로그 글 1000편에 부쳐”를 썼다. 블로그를 연 지 일곱 해 만이었다. 그 글에 이웃들의 축하가 잇따랐고 <오마이뉴스>에서는 이 글을 머리기사로 올려주기도 했다. 참으로 과분한 격려였다. 그 글의 말미에 나는 그렇게 썼다.
“앞으로 얼마만큼 더 나아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백 편을 더 쓰든, 천 편을 더 쓰게 되든 지금까지 글을 써 오면서 느끼고 갈무리했던 마음을 잊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나이 들면서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길도 여물어가고 늙어가겠지만 그 세상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살피고자 하는 글쓰기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웃들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해서 거는 약속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4년, 지난해 12월에 꽉 찬 10년을 넘겼다. 날짜를 헤아려보니 그날로부터 오늘(3월 19일)이 3,747일째다. 처음 블로그를 열었을 땐 1일 조회 수가 10을 채 넘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10이 100이 되고 100이 1,000이 되는 변화가 이어졌다. 낯설고 외진 블로그에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 마치 마술 같았다.
1,000이 다시 2천, 3천, 5천이 되고 어느 날은 1만, 2만을 훌쩍 넘기는 그 마술에 나는 때로 고무되기도 했다. 누적 조회 수가 9백만을 넘었을 때 나는 4, 5월쯤이면 천만에 이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폭주하는 조회 수는 예상을 간단히 뛰어넘었다.
어젯밤 11시 25분에 잠자리에 들면서 스마트폰으로 갈무리한 조회 수는 9,991,824였다. 천만까지는 8,176이 부족했으므로 내일 중에는 천만을 넘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벽 4시 22분에 확인해 본 숫자는 이미 천만을 넘고 있었다. 자정께부터 새벽까지 1만 명이 넘게 찾은 것이었다.
누적 조회 수 천만을 넘기다
3월 17일에 나는 “조선인 최초의 경찰서장 윤종화와 그 후예들”이라는 글을 써 올렸다. 이 글은 이튿날에 <오마이뉴스>의 으뜸 기사가 되었는데 저녁 무렵부터 조회 수가 급격하게 늘기 시작하더니 자리에 들며 확인했을 때 2만5천을 넘고 있었다. 그 정도 조회 수는 그동안에도 드물지만은 않았다.
새벽에 천만을 넘길 때, 당일 조회 수가 4시간 만에 1만5천대라는 걸 확인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좀 이례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날 조회수를 합하면 4만이 넘으니 이는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정오 무렵에 다시 확인했을 때 오늘 조회 수는 7만을 가파르게 넘고 있었다.
독자들의 추천 수가 230을 넘었고, 네 분의 독자가 준 원고료의 합이 7만이었다. 그제야 나는 이 글이 무척 예민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방 뒤 소련으로 끌려갔지만 친일 부역자 윤종화의 후예들 가운데 두 명의 국회의원까지 나온 역사를 오욕으로 받아들인 뜨거운 독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오후 6시 34분 현재, 오늘과 전체 조회수는 각각 100,420과 10,096,668이었다. 1일 조회 수로는 기록이다. <오마이뉴스> 주 화면에서 기사가 내려가면서 조회 수의 증가 추세가 드러나게 떨어졌는데도 10만을 거뜬히 넘겨 버린 것이다.
조회 수란 말 그대로 내 블로그에 들어온 방문자 수의 누적에 불과하다. 그건 클릭 한 번으로 더해지는 숫자일 뿐 열독(閱讀)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 숫자엔 꼼꼼히 글을 읽고 가끔 댓글을 남기기도 하는 성실한 독자와 우연히 스쳐 지나가거나 곁눈질 한 번으로 떠나는 이들도 포함되어 있을 터이다.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코웃음을 치면서 이내 걸음을 옮김으로써 욕설을 대신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숫자가 결코 여기 담긴 내 생각에 대한 동의로만 간주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는 천만을 넘긴 블로거가 이미 한두 명이 아니다.
나는 조회 수로 뻐기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단지 햇수로 11년, 정확히 10년을 넘긴 내 블로그 역사의 한 장면을 이웃들에게 전하고 싶을 뿐이다. 누가 옆구리를 찔러 벌인 일도 아닌데, 지난 10년 동안 나는 이 집을 꽤 열심히 가꾸고 꾸려온 것이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동안 쓴 글 1,468편과 조회 수 천만을 넘긴 이력을 자랑하기보단 ‘그런 시간을 꾸려온 자신을 치하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거의 2~3일에 한 편씩 꾸준히 글을 썼고, 그런 끈기를 격려해 준 게 하루 평균 2600여 회에 이르는 조회 수인 셈이었다.
글쓰기를 이어온 힘, 이웃의 격려와 믿음
나는 지금도 내 ‘글쓰기’가 세상을 향한 말 걸기인 동시에 내 삶의 성찰 과정이라 여기고 있다. 그리 신통하지는 않은 글이지만 글을 쓰면서 나는 자신을 돌아보고 세계와 나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려고 애써 온 것을 대견히 여기고 있다.
때로 내 글이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없진 않지만, 나는 굳이 무심해지려고 한다. 전문 글쟁이도 아니면서 지나치게 결벽을 부리는 것은 또 다른 자만이거나 자기기만일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까짓것, 서툴면 서툰 대로, 재미없으면 없는 대로 받아들이면 될 일 아닌가 말이다.
누구에게는 시답잖은 일로 보일 수 있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도 힘에 겹다. 쇠퇴해가는 기억력을 되살려내면서 자료를 모으고 그걸 재구성하는 등의 작업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런 성가신 일들이 내 무심한 일상에 이런저런 의미를 더함을 알고 있다.
블로거로 지내온 지난 10년을 나는 만족스럽게 돌아보곤 한다. 이제 그 10년을 매듭지으며 다시 새로운 10년을 시작하고자 한다. 다만 바라는 것은 ‘글을 쓰면서 느끼고 갈무리했던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나 자신의 몫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알게 모르게 사랑과 격려를 베풀어 주신 모든 이웃들에게 거듭 각별한 고마움과 존경의 뜻을 전한다. 말없이 지켜본 당신들의 믿음이 쉰이 넘어 뒤늦게 시작한 글쓰기를 오늘까지 이어지게 한 힘이었음을 고백하면서.
2017. 3.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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