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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돌, 노동절(메이데이)을 맞으며

by 낮달2018 2020.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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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돌 노동절(2008)

▲ 118돌 노동절을 맞지만, 이 땅엔 85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5월 1일은 ‘메이데이(May Day)’다. 1886년 5월 1일, ‘하루 8시간 노동’을 내걸고 미국 노동운동의 중심지인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는 총파업 집회가 시작되었다. 5월 3일, 경찰과 군대가 노동자들을 향해 발포, 파업·농성 중이던 어린 소녀를 포함한 모두 여섯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5월 4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경찰의 노동자 살해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는 평온하게 진행되었으나 경찰이 해산을 명령하자 누군가가 폭탄을 던져 난투가 벌어지면서 쌍방에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 사건은 조작으로 의심됐다. 지배자들은 이 사건을 빌미로 국가의 물리력을 동원해 시위를 금하고 시위자 수백 명을 체포했다. 이 사건이 바로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이다.

 

이후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이어지면서 총파업으로 얻어 낸 8시간 노동제는 헌신짝처럼 버려졌고, 경찰관 살해를 교사하였다는 혐의로 파업 지도자 8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파업 지도자들 가운데 5명은 사형, 3명은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금고형을 받은 세 사람은 1893년, 주지사에 의해 재판이 부당하였다는 이유로 특사 되었다.) 사형을 선고받은 노조 지도자 스파이즈는 최후 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절규했다.

▲ 헤이마켓 사건을 묘사한 삽화

 

노동자들은 재판에 넘겨진 지도자 8명에 대한 연대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옷깃에 붉은 장미를 달았다. 이후 좌파들은 해마다 열리는 노동절 집회에서 으레 붉은 장미를 가슴에 꽂았다. 장미가 ‘진보’를 상징하는 기점이 된 것이 바로 이때였다. 2차대전 이후 붉은 장미는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이 쟁취한 ‘8시간 노동’은 하루 14~18시간씩 일하면서도 저임금과 절대 빈곤의 고리를 끊은 일대 쾌거였다. 1880년 초부터 8시간 노동 요구가 확산하면서 노동자들은 조직화 되기 시작했다. 노동자 기사단과 국제노동자협회에 이어 1886년에 미국노동총연맹이 결성되었고, 이 연맹은 설립규약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하나의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 투쟁은 압제자에 대한 피압박자의 투쟁이며 자본가와 노동자의 투쟁이다. 이 투쟁은 또한 필연적으로 해가 거듭할수록 격렬해질 것이다. 이러한 투쟁에 서 노동자들이 사회 이익의 증진과 보호를 위해 굳게 단결하지 않는다면 수백만의 노동자들은 결국 엄청난 재앙에 부딪힐 것이다.”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급속히 확산하자 자본가들은 파업을 봉쇄하기 위해 독자적인 군대를 조직하여 무장시키고 군사 훈련을 시행했는가 하면 신문도 그들의 이익을 대변했다. 자본가들은 8시간 노동제 추진 운동을 ‘비미국적’이라면서 ‘노동자들의 소란은 외국 공산주의자들의 선동‘ 때문으로 몰아갔는데, 이들의 논리는 언제 어디서나 닮은꼴인 모양이다.

 

헤이마켓 사건은 메이데이를 낳았다. 1889년 7월, 제2인터내셔날 창립대회에서는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해 싸웠던 미국 노동자의 투쟁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5월 1일을 세계 노동절로 정했다. 그리고 1890년 5월 1일을 기해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서 8시간 노동의 확립을 요구하는 국제적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이듬해인 1890년, 세계 노동자들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치며 제1회 메이데이 대회를 치렀다. 그 이후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과시하는 국제적 기념일로 정하여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이랜드 투쟁은 300일을 넘겼지만, 미해결 상태다.

지난해에 썼듯이 만국 공통의 이 ’노동절‘은 아, 대한민국에서만 ’근로자의 날‘이다. 이날의 역사도 만만찮다.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 도당의 선전 도구’라는 이승만의 훈시에 따라 1957년, 3월 10일(대한노총 창립일)로 생일이 바뀐 데다 1963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근로자의 날’로 개칭되어 버린 것이다.

▲ 민주노총의 노동절대회 포스터

‘노동’이 ‘근로’로 바뀐 이유는 자명하다. ‘1963년 군사정권은 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노동위원회법 등의 개정을 통해 노동 통제의 기반을 마련하면서 ‘노동’, ‘노동자’라는 개념 속에 내포된 계급의식을 희석하기 위해’(민주노총 자료) 이를 ‘근로’, ‘근로자’라는 개념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힘써 부지런히 일하다’는 의미의 ‘근로’와 ‘몸을 움직여 일을 함,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체력이나 정신을 씀, 또는 그런 행위’를 뜻하는 ‘노동’은 마치 숯과 얼음과 같은 부조화를 연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들의 손으로 온 세상이 창조되고 유지된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 땅에선 자본가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에게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누구 말마따나 ‘시장과 청소부’가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이해할 수 없는 정치의식도, 유례없는 계급 배반 투표가 이루어진 총선거도 그 출발점은 같은 것이다.

 

올 노동절은 백열여덟 돌을 맞았다. 1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이 땅의 노동자는 노동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민주노총 노동절 포스터는 ‘이제 물가·교육·의료·연금 투쟁입니다’라는 구호를 제시하고 있다. 구호에 등장한 주제가 눈에 익다. 새 정부가 잡거나 개혁하겠다고 내건 내용들이다. 정부가 갈 길은 노동자들의 이해와 너무 멀기만 하다.

 

 

2008. 4. 30. 낮달

 

* 메이데이 관련 글

‘메이데이’ 120돌, 그리고 2010 한국

[경축] 노동절(메이데이) 126돌

[오늘] 첫 메이데이(May Day),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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