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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2019/0631

오래된 도시, 그 벽화마을의 ‘적요(寂寥)’ 경북 김천시 자산동 자산(紫山) 벽화마을 전국 각지에 벽화마을이 있다. 개중에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얻어 나들이객을 모으는 동네도 꽤 있다. 서울의 이화동 벽화마을, 부산의 감천 문화마을, 통영의 동피랑 마을 등이 그렇다. 반면에 같은 지역에 있는데도 낯선 이름의 벽화마을도 적지 않다. 김천시 자산동 벽화마을 우연히 인근 김천시 자산동 벽화마을을 알게 되어 거길 다녀온 게 3월 중순께다. 김천 시내 조각공원에 피어 있다는 얼음새꽃(복수초)을 보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서다가 잠깐 들른 곳이었다. 혼자여서 나는 빠른 걸음으로 마을을 돌았고 한 삼십 분쯤 거기 머물렀다. 돌아와서 이내 나는 그 마을은 잊어버렸다. 며칠 전에 사진을 정리하다가 다시 자산동 벽화마을을 다시 만났다.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면서 나는.. 2019. 6. 20.
상주 공검지(恭儉池), 그 논 습지의 연꽃 삼한 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저수지 상주 ‘공갈못’ 상주 공검지(恭儉池)를 다녀온 건 지난 13일, 8월의 마지막 연휴였다. 그리고 두 주가 훌쩍 흘렀다. 무더위 속에 바다나 산이 아니라 굳이 내륙으로 들어간 것은 공검지의 연꽃을 보고 싶어서였다. 지역 텔레비전 방송의 배경 화면에서 만난 거대한 연꽃 단지에 나는 단번에 꽂혔는데 그게 공검지였다. 삼한 시대의 저수지 ‘상주 공검지’ 안동에서 상주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다. 가는 길에 예천군 용궁면의 산택지(山澤池) 연꽃공원에도 들렀다. 약 4천 평 부지에 자생 연꽃이 피는 연못 산택지는 말하자면 이번 외출의 덤이었다. 사진 찍기에 도움이 되긴 했지만, 연못 안에 세운 팔각정과 거기 이어진 나무다리 따위의 인공 시설물이 ‘옥에 티’였다. 공검지가 있는 상주시.. 2019. 6. 19.
[쑥골통신] 유년의 시장기와 청미래덩굴 열매 쑥골에서 부치는 편지 내가 사는 동네가 ‘봉곡(蓬谷)’입니다. ‘쑥대’가 많아 ‘다봉(多蓬)’이라고 불렀다는데 봉곡은 한자를 풀면 ‘쑥골’입니다. 이 편지를 ‘쑥골에서 부친다’고 쓰는 까닭입니다. 에서는 대여섯 편을 썼는데 티스토리로 와서는 한 편도 쓰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의 여유가 모자라서입니다. 한갓진 일상을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우선 묵은 글을 올리고, 때가 되면 새 글도 쓰려 합니다. 굳이 경어체를 쓰는 이유는 자신을 아주 낮은 자리에 매겨서 스스로 겸허해지고 싶어서입니다. 경어체의 서술은 일상을 넘는 울림이 있지요. 신영복 선생의 산문이나 도종환의 시를 떠올려 보십시오. 선생의 산문은 담담하면서도 웅숭깊은 성찰의 기록입니다. 장중한 경어체의 서술을 통해서 선생의.. 2019. 6. 19.
[쑥골통신] 꽃 진 뒤, 잎 나는 봄 창밖엔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창문 너머로 며칠 동안 오르지 못한 산자락을 건너다봅니다. 빗줄기와 안개 사이로 군데군데 신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루걸러 산을 오르면서도 정작 만나지 못한 풍경입니다. 역시 산을 벗어나야 산이 보이는 법, 산속에선 느끼지 못했던 봄의 빛깔이 아련하게 눈 아래에 감겨옵니다. 지지난해 숲길로 출퇴근할 때는 산에 꽃이 왜 이렇게 드무냐고 불평이 늘어졌더랬지요. 지난가을에는 왜 꽃이 피지 않느냐고 애먼 소리를 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꽃은 때가 되어야 피고, 인간의 발길이 잦은 길에는 꽃들이 스스로 몸을 숨기는 듯했습니다. 겨울 지나 봄으로 오면서 산에서 만난 꽃은 진달래와 생강나무 꽃이 주종이었지만 온산을 물들인 그 꽃들의 향연은 더 부러울 게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진달래야.. 2019. 6. 19.
남명 조식, 경상우도의 ‘의(義)’가 그에서 비롯하였다 [지각답사기 ②]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유적지 함양과 산청 일대를 다녀온 것은 2008년 벽두다. 1월의 두 번째 주말, 나는 두 친구와 함께 지리산 자락의 화림동 계곡 주변과 단속사, 덕천서원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두 편의 글로 갈무리했다. 한 편은 기사로 쓴 ‘화림동 계곡의 정자 이야기’였고 다른 한 편은 블로그에 올린 ‘단속사 옛터’를 다룬 글이었다.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은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우리는 산청군 시천면 원리에 있는 덕천서원을 비롯하여 산천재와 세심정, 그리고 선생의 묘소를 돌아보고 귀로에 올랐다. 나는 남명 유적을 다녀온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남명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어떤 밑천도 내겐 없었던 까닭이다. 나는 80년대 중반부터 학교에서.. 2019. 6. 18.
원주, 허물어진 절터를 찾아서 [지각답사기 ①] 원주 흥법사(興法寺)터와 법천사(法泉寺)터, 거돈사(居頓寺)터 애당초 길을 떠날 때의 목적이야 뻔하다. 답사다운 제대로 된 답사를 하겠다는 다짐도 다짐이거니와 미리 목적지 정보를 간추려 들여다보면서 머릿속이나마 챙길 것과 버릴 것을 가늠해 놓는다. 그러나 막상 길을 떠나 목적지에 닿으면 이런 다짐과 계획은 어긋날 수밖에 없다. 답사하고자 한 유적지가 언제나 내 뜻대로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미리 파악한 정보가 유적의 변화를 담고 있지 않을 때도 있고, 작정하고 수십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지만, 촬영 결과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많다. 무엇보다 돌아와서야 빠뜨린 풍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실망은 오래 마음에 앙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각답사기’를 쓰게 하는 .. 2019. 6. 18.
경상도 사람의 전라 나들이 ① 전주 한옥마을 전북 전주 한옥마을과 경기전, 전동성당 그동안 나는 한 번도 전주(全州)에 가보지 못했다. 웬만한 도시나 유적지는 빼놓지 않고 다녔던 편인데, 어쩐 일인지 전주와는 연을 맺지 못했다. 전주를 잘 알지 못하니 전주라 하면 떠올리는 게 고작 ‘경기전’이나 ‘비빔밥’ 정도다. 영호남, 서로 ‘나들이가 쉽지 않다’ 사실, 아주 유명한 관광 유적지가 아닌 이상 영남에서 호남 쪽으로 넘어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거꾸로 호남에서 영남으로 넘어오는 일도 어렵기는 매일반이다. 무엇보다도 일단 동서로 나뉜 영호남을 잇는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다. 전두환의 신군부 시절에 개통한 88올림픽고속도로가 유일하게 영남 내륙과 호남을 잇는 고속도론데, 사실 이 길은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짝퉁’ 고속도로다. 고속도로인데도 좁.. 2019. 6. 17.
밀밭 속에 남긴 황홀한 젊음 - 황순원의 ‘향수’ 황순원의 초기 시 ‘향수’ 시골에도 사랑은 있다. 하긴 사람이 사는 곳인데 사랑 없는 데가 어디 있으랴! 아니다, 시골에도 로맨스가 있다고 쓰는 게 더 정확하겠다. 사람이 있고 삶이 있으니 거기 로맨스가 있는 것 역시 ‘당근’이다. 그 전원에서 이루어졌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시골의 사랑, ‘밀밭의 사랑’ 뜬금없이 ‘전원의 사랑’ 운운하는 이유는 황순원의 시 ‘향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황순원의 단편소설 ‘물 한 모금’을 공부했다. 작가를 소개하면서 나는 그가 쓴 초기 시 몇 편을 들려주었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다. 중학교 때던가, 우리 집에는 자줏빛 하드커버의 이 있었다. 거기서 읽은 그의 시 두 편이 기억에 남아 있다. ‘빌딩’이라는 한 줄짜리 시와 ‘향수’가 그것이다. ‘.. 2019. 6. 17.
‘샛강’, 사라지거나 바뀌거나 샛강, 마음속을 흐르는 강 ‘샛강’은 “큰 강의 줄기에서 한 줄기가 갈려 나가 중간에 섬을 이루고, 하류에 가서는 다시 본래의 큰 강에 합쳐지는 강.”(표준국어대사전)이다. 큰 강이 흐르는 지역에는 샛강이 있기 쉽다. 인터넷에 ‘샛강’을 치면 뜨는 것은 ‘여의도 샛강’이다. 샛강, 잔뼈가 굵은 추억의 강 ‘샛강’은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1970년대에 소설가 이정환은 ‘창작과 비평’에 장편소설 을 연재했다. 서울 서북쪽 샛강 가에 사는 변두리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다룬 작품인데, 작품을 띄엄띄엄 읽었던 같긴 한데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의 샛강은 내가 자란 고향 앞을 흐르던 낙동강의 샛강이다. 칠곡군 약목면 앞을 흐르는 꽤 깊고 유속도 빠른 낙동강 본류 이쪽으로는 드넓은 백사장이 .. 2019. 6. 17.
기구하여라 ‘덴동 어미’, 그 운명을 넘었네 [안동 시가 기행 ⑨]내방가사 경상북도 북부지역을 더듬으며 ‘국문 시가’를 찾는 이 기행도 이제 막바지다. 그러나 이 성긴 기행은 유감스럽게도 우리 문학사에서 한글 시가의 유산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해 준다. 안동 인근에서 역동 우탁, 농암 이현보, 송암 권호문, 퇴계 이황, 청음 김상헌, 갈봉 김득연의 자취를 뒤졌다면 타시군은 고작 영덕의 존재 이휘일, 영주의 근재 안축의 흔적을 더듬었을 뿐이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경북 북부의 열한 개 시군에서 나는 더는 한글 시가를 찾지 못했다. 만약 내가 찾지 못한 한글 시가가 남아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경로로든 햇빛을 보지 못한 노래일 가능성이 클 듯하다. 이번 기행에서 처음으로 70여 수의 시조를 남긴 갈봉 김득연을 만나게 된 것도 그의 시가.. 2019. 6. 14.
‘산 높고 물 맑은’ 죽계(竹溪), 만만찮은 곡절과 한을 품었다 [안동 시가 기행 ⑧] 안축의 경기체가 ‘관동별곡’과 ‘죽계별곡’ 가을이 깊었다. 한가위가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더니 어느새 우리는 겨울의 어귀에 서 있다. 곱게 물들며 지는 나뭇잎, 그 조락(凋落)이 환기하는 것은 시간, 그 세월의 무상이다. 그것은 또 우리 역사 속에 스러져 간 시인들의 삶과 그들의 노래를 덧없이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오늘의 여정은 영주 순흥 쪽이다. 순흥, 소백산 자락으로 한 시인의 노래와 그 자취를 찾아나서는 길이다. 그는 본관을 ‘순흥’으로 쓰는 고려 말의 문신 근재(謹齋) 안축(安軸,1287~1348)이다. 근재는 경기체가인 ‘관동별곡(關東別曲)’(조선조 중기에 송강 정철이 쓴 가사 ‘관동별곡’과는 다른 노래다)과 ‘죽계별곡(竹溪別曲)’의 지은이다. 후.. 2019. 6. 13.
[사진] 주산지(注山池), 왕버들과 물안개의 호수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의 왕버들 풍경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주산지는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 주왕산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저수지다. 조선 숙종 46년(1720)에 쌓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경종 원년(1721)에 완공되었다. 이 물로 산 아래 60여 가구가 6천여 평 남짓한 논밭에 농사를 짓고 있다 한다. 주산지는 길이 100m, 넓이 50m, 수심 8m 정도의 아담한 호수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못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난 적이 없다고 한다. 특히 호수 속에 자생하는 약 150년생 능수버들과 왕버들 30수는 이 외진 못의 상징이 되었다. 왕버들은 원래 호숫가나 물이 많은 곳에서 자라는 높이 약 20m, 지.. 2019.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