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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쑥골통신

[쑥골통신] 꽃 진 뒤, 잎 나는 봄

by 낮달2018 2019. 6. 19.

 

▲ 빗줄기와 안개 사이로 군데군데 북봉산의 신록이 눈에 들어온다.  계절은 이미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다.

창밖엔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창문 너머로 며칠 동안 오르지 못한 산자락을 건너다봅니다. 빗줄기와 안개 사이로 군데군데 신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루걸러 산을 오르면서도 정작 만나지 못한 풍경입니다. 역시 산을 벗어나야 산이 보이는 법, 산속에선 느끼지 못했던 봄의 빛깔이 아련하게 눈 아래에 감겨옵니다.

 

지지난해 숲길로 출퇴근할 때는 산에 꽃이 왜 이렇게 드무냐고 불평이 늘어졌더랬지요. 지난가을에는 왜 꽃이 피지 않느냐고 애먼 소리를 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꽃은 때가 되어야 피고, 인간의 발길이 잦은 길에는 꽃들이 스스로 몸을 숨기는 듯했습니다.

 

겨울 지나 봄으로 오면서 산에서 만난 꽃은 진달래와 생강나무 꽃이 주종이었지만 온산을 물들인 그 꽃들의 향연은 더 부러울 게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진달래야 새삼스럽지 않지만, 생강나무가 그렇게 지천이라는 걸 올봄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 산 어귀의 산벚나무(위)와 산 중턱에서 만난 산벚꽃. 일반 벚꽃보다 꽃잎이 희고 소박하다.

얼마 전에는 등산로 입구에서 하얀 꽃을 단 키 큰 나무, 산벚나무를 만났습니다. 그게 다인가 했더니 산 중턱의 바위 언덕에서도 그 꽃은 수줍게 피어 있었지요. 분홍빛이 도는 벚꽃에 비기면 희고 수더분해 보였습니다.

 

일상을 ‘삶과 죽음의 비의’로 받아들이기

 

봄에 피는 꽃을 느꺼워하게 된 것은 모두가 그렇듯 40줄에 접어들어서였습니다. 그것은 돌아오는 봄이면 꽃을 피우는 계절과 우주의 질서 앞에 스스로 낮아질 줄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지요. 계절의 순환에 따라 생성과 소멸이 되풀이되는 것은 이 지구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일입니다.

 

자신이 맞닥뜨린 삶의 순간에 골몰하는 젊은이들에겐 그 순환은 일상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의 연소에 마음을 뺏긴 이들에겐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사물에 관한 관심은 멀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날부터 그 일상을 삶과 죽음의 비의(秘義)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것은 이 압도적 삶의 중력 앞에 참으로 겸허해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 산수유의 꽃눈. 겨울의 추위를 견뎌온 꽃눈이 벙글면서 알알이 들어찬 꽃잎이 터질 듯하다.

봄에 피는 꽃은 잎보다 먼저 나오는 걸 알게 된 게 언제쯤이었던가요. 잎이 나고 거기서 꽃이 핀다는 오래된 고정관념은 다투어 피어나는 봄꽃 앞에서 스러지고 맙니다. 이른 봄에 피는 꽃들 가운데 많은 꽃이 잎보다 먼저 꽃이 핍니다.

 

산수유와 생강나무, 매화와 목련, 개나리와 진달래……. 이제 이런 꽃나무들은 이제 꽃을 떨구고 잎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늦봄에 나오는 꽃들과 달리 왜 이른 봄의 꽃나무들은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것일까요. 으레 그러려니 하다가도 그 이유가 예사롭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것이니까요.

 

▲생강나무 꽃과 잎눈. 가지 끝에 갈색의 뾰족한 것이 잎눈에서 잎이 난다.
▲ 꽃지며 잎눈들이 점차 회백색으로 변해 잎이 나더니 마침내 무성해졌다.
▲ 꽃이 지고 잎이 난 뒤에 생강나무는 언제 꽃을 피웠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푸른 잎을 자랑한다.

봄의 전령사로 불리기는 하는 이른 봄꽃들이 서둘러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됩니다. 첫째는 햇빛의 영향입니다. 기본적으로 햇빛은 식물의 성장을 좌우하기 때문이지요. 봄꽃은 대체로 일조 시간이 12시간 이상이면 꽃봉오리를 맺는 장일성(長日性) 식물이라는군요.

 

그다음은 온도입니다. 식물은 전년도에 여러 가지 영향으로 이미 꽃눈을 만들어 겨울눈 등 보호기관에 감추고 있다가 일정한 온도가 되면 꽃을 피워낸다고 합니다. 간혹 겨울철에도 온도가 올라가 따뜻해지면 꽃망울을 터뜨려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마지막은 번식을 위한 꽃가루받이[수분(受粉)]를 위해서입니다. 종족 번식을 위한 경쟁 때문이라는 거지요. 식물들은 번식하기 위해 화려한 꽃을 피우고 진한 꽃향기로 벌과 나비를 부릅니다. 봄꽃들은 꿀이 거의 없고 향기도 미약하지만 겨울 동안 굶주린 벌을 유혹합니다.

 

봄꽃들의 ‘생존의 기술’

 

봄꽃들은 다른 꽃들이 피기 전인 이른 봄에 개화함으로써 겨우내 굶주린 벌을 불러들입니다. 봄꽃이 피면 벌들은 더 열심히, 그리고 더 멀리 날아다니면서 꿀을 채취합니다. 벌의 노동만큼 나무는 양질의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지요.

 

▲ 백목련 꽃이 진 뒤, 이제 잎눈에서 잎이 나오고 있다.

이렇듯 봄꽃들이 서둘러 꽃을 피우는 것은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려는 특성에 기인한, 불리한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생존의 기술인 셈입니다. 세상의 어떤 꽃들도 무심코 피고 지지 않습니다. 단지 그것은 바라보는 인간의 눈길이 무심할 뿐이지요.

 

올봄에는 산을 다니면서 생강나무 꽃이 지면서 잎이 돋아나는 광경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바뀌어 가는 생강나무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었고요. 4월도 중순, 봄이 난만히 무르익는 시기, 이제 생강나무 꽃은 거의 지고, 잎눈이 천천히 열리면서 싱싱한 새잎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

 

아직도 꽃의 자취는 얼마간 남았지만, 조만간 그 꽃잎도 지고 말겠지요. 그러고 보니 어느새 신록의 여름이 오고 있습니다. 벌써 추위에 움츠리고 지내온 지난겨울이 마치 꿈결 같아지니 계절에 대한 인간의 얄팍한 적응력은 가증스러울 지경입니다.

 

겨우내 기다렸던 꽃눈, 잎눈을 모두 틔운 나무를 바라보며 황지우의 시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를 떠올립니다.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한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화자의 자리에 자신을 놓아 봅니다.

 

길가에 그만그만한 높이로 왜소하게 서 있는 생강나무는 동백기름처럼 머릿기름으로 쓰여 강원도에서 ‘개동백’이라 불렸다지만 그것도 한때, 이제 별로 쓸모없는 나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아 꽃과 잎을 피우는 그 어기찬 생명력 앞에서 우리의 삶은 그리 자랑스럽지 못합니다.

 

노란 꽃잎이 지고 이제 잎눈에서 천천히 잎을 펴고 있는 생강나무를 눈여겨보면서 시인이 노래한 ‘자기 몸으로/꽃 피는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깨닫습니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저마다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우는 이 난만한 봄에 ‘스스로의 몸으로 꽃 피는’ 삶을 거듭 생각해 봅니다.

 

 

2017. 4.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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