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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2019/0537

“추억은 언제나 새로운 만남으로 다가온다” [서평] 신영복의 쇠귀 신영복 선생의 을 오열하며 읽은 것은 지난 1월 하순께다. 부음을 듣고 동료들과 선생을 추모하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그랬다. 선생이 쓴 책은 모두 갖고 있는데 왠지 이 빠졌다고. 다음날 후배 여교사가 집에 있던 책을 가져와 건네주었다. 나는 이 어떤 이야기인지 전혀 몰랐다. 단지 나는 치열하게 살아온 선생의 이력과 겹치는 무엇일 것이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1960년대 말에 선생을 이 사회와 격리해 버린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의 어떤 부분과 이어지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말이다. 청년과 어린이들의 ‘교유’ 두 해 나는 ‘청구’를 ‘靑丘’로 이해한 다음, 그게 선생이 몸담았던 어떤 조직의 이름이라고 여겼다. 이런 추리는 선생이 재판을 받는 과정의 검찰과 군법회의에서도 비슷한 형식으로 .. 2019. 5. 13.
허형식과 박정희, 극단으로 갈린 둘의 선택 [서평] 박도 실록 소설 ‘경상북도 구미’하면 ‘박정희(1917~1979)’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시내 상모동에서 태어나서 만주군 장교를 거쳐 해방 뒤 쿠데타로 집권한 그 덕분에 오늘의 구미가 만들어진 건 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선산군 구미면’은 그가 이 고을에 공업단지를 유치하면서 ‘선산읍’을 거느린 인구 40만이 넘는 ‘구미시’가 되었다. 그는 개발독재를 통하여 근대화를 추진했고,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구가함으로써 구국의 지도자로 기려진다. 18년 독재 끝에 비명에 갔지만 그는 지역에서 가히 ‘반신반인’으로까지 숭앙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 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어 성역화된 상모동 생가 부근에 세운 5m 크기의 청동상으로 살아 있다. 박정희의 상모동, 혹은 왕산.. 2019. 5. 12.
죽음으로 유예한 이별-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 [서평]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Lettre a D.: Histoire D’un Amour)』(2006) 불혹을 넘기면서 문득 나는 ‘영원한 사랑’ 따위란 없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 만들어 낸 이미지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망각’이란 꽤 쓸 만한 물건이어서 인간을 사랑의 상실로 인한 고통과 번민으로부터 구원해 준다. ‘죽도록’ 한 ‘목숨 바친’ 사랑도 그 이별을 받아들이면 잊어버리는 데는 고작 몇 해의 시간으로도 족한 것이다. 내 청년기의 끝에 세상을 떠났던 한 친구의 죽음과 그 이후를 바라보면서 나는 우정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음이란 참으로 얼마나 쌀쌀맞고 냉정한 것인가. 불타는 애정도, 얼음장처럼 식는 사랑도 모두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 2019. 5. 12.
아, 심산 김창숙 - 혼자 된 며느리에게 담배 가르친 시아버지 [답사] 경북 성주와 봉화로 떠난 ‘심산(心山) 역사기행’ 오늘 (5월 10일)은 이 땅의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 선생의 57주기다. 선생의 기일을 알리면서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이 고문께서 보내주신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비타협·불복종의 행동주의자’ 심산 김창숙 선생을 다시 생각한다. 심산 김창숙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베푸는 ‘심산 역사 탐방’의 답사단이 심산 생가인 경북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사도실 마을에 도착한 것은 지난 5월 30일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였다. 나는 이른 점심을 챙겨 먹고 정오 전에 일찌감치 사도실에 들어와 있었다. 심산은 경북 성주가 낳은 독립투사다. 대가에 그의 생가가, 읍내에 심산기념관이 있지만, 사람들은 무심히 그를 숱한 독립지사 가운데 한 분이라고 여기고 만다... 2019. 5. 10.
30년 문학교사가 추적한 친일문인의 민낯 [책이 나왔습니다] 책이 나왔다. 원고를 넘긴 게 지난해 11월 중순이니 432쪽짜리 단행본 1권이 나오는 데 꼬박 다섯 달이 걸렸다. 물론 난생처음 펴낸 책이다.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를 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끼적인 지 10년이 넘어서다. 책이 나왔다는 걸 실감한 건,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이 가능해지면서다. 젊은 시절 한때, 문학에 뜻을 두기도 했지만, 교직에 들어 서른을 넘기면서 '문학'에 관심을 끊은 이후 나는 한번도 글쓰기를 고민하거나 쓰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살았다. 스무 해쯤 지나, 오래 몸담은 교원단체 활동에서 놓여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꾸리게 되면서 나는 한두 편씩 끄적인 글로 '블로그'에 입문했다. 블로그에서 글쓰기 시작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모두 1700편이 넘는 글을 쓰.. 2019. 5. 8.
기억 속 구멍가게, 할 말을 잃게 하는 풍경 [서평] 이미경의 펜화 수상집 ‘구멍가게’라면 미국 작가 폴 빌라드(Paul Villard)의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를 빼놓을 수 없다.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이 투영된 아름다운 수필 ‘이해의 선물’에 나오는 이 가게는 한 어린이가 만나는 세상이면서 어른의 이해와 관용이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이라는 걸 깨우쳐 주는 공간이다(관련 기사 : 이해의 선물). ‘교환’의 개념을 이해했으되 그걸 매개하는 ‘돈’에 대한 이해가 모자랐던 한 어린이에게 베푸는 위그든 씨의 넉넉한 마음이 선사해 준 사탕 가게의 추억은 작가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그가 물려준 유산은 작가의 삶의 방식으로 이어졌다. 사탕 가게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유년 시절의 구멍가게를 기억한다. 그곳은 처음으로 우리가 세상과 ‘거래’하던 공간.. 2019. 5. 7.
정태춘의 40년, 그는 ‘우리의 시대’였다 데뷔 40주년 맞은 정태춘·박은옥... 그와 함께한 우리의 젊은 날 정태춘(1954~)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는 정태춘·박은옥은 공영방송 무대로 초청되고 각종 인터뷰 등으로 . ‘아이돌 못지 않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정태춘·박은옥 40 프로젝트로, '붓글전’을 포함한 전시 가 베풀어졌고, 전국 순회 ‘날자, 오리배’ 공연도 곳곳에서 펼쳐졌다. 두 번째 시집 (천년의시작)도 출간되었다. 40주년, 정태춘의 소환 그러나 서울에서 벌어지는 부산한 움직임은 지방 소도시에 사는 이들에게 좀 먼 이야기다. 내가 정태춘을 다시 만난 것은 지난 4월 6일 1텔레비전에서 특별 편성해 방송한 ‘열린음악회’의 정태춘-박은옥 부부 편이었다. 나는 무심코 채널을 돌렸다가 거기 나온 정태춘.. 2019. 5. 6.
11주기, 작가 박경리를 다시 생각한다 작가 박경리 선생의 부음에 부쳐 5월 5일은 작가 박경리 선생의 11주기다. 선생은 강원도 원주에서 살다가 2008년 5월 5일,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마음으로 꽃 한 송이 바치며 선생을 배웅했다. 일찍이 고교 시절에 에 입문한 뒤, 대여섯 번쯤 이 위대한 소설을 읽었다. 11주기를 맞아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박경리문학관에서는 추모문학제가 열린다고 한다. 하동의 박경리문학관은 2017년 평사리문학관을 개축하고 박경리문학관으로 이름을 바꿔 개관한 곳이다. 나는 2007년에 「토지」의 주 무대를 재현한 이곳 평사리를 찾았었다.[관련 기사 : 평사리, 그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 서다] 박경리 선생을 기리는 시설은 하동 말고도 타계할 때까지 살았던 강원도 원주와 그의 묘소가 있는 경남 통영에.. 2019. 5. 5.
춘양목과 황장목…, ‘금강소나무’는 있다! 금강소나무, 춘양목, 황장목 무엇이 다른가 봉화 서벽리의 금강소나무 숲을 다녀온 건 지난 4월이다. 봄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사위는 잿빛이었다. 애당초 강릉 쪽을 겨누었던 발길을 경북 북부의 골짜기로 돌린 것은 수백 리 길을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꿩 대신 닭이긴 했지만, 금강소나무 숲을 떠올린 건 며칠 전 일간지에서 읽은 소나무 숲길이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4월 중순, 봄바람의 훈기에도 골짜기의 얼음은 상기도 녹지 않았다. 막 새잎이 돋는 나무들, 하얗고 노랗게 꽃을 피운 나무들의 실루엣이 마치 그림 같았다. 주말인데도 철 늦은 진달래가 막 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한산한 숲길을 찾은 이는 우리 가족뿐이었다.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 봉화 서벽리 금강소나무 숲 기사를 읽고 봉화로 차를 몰면서 나는 아.. 2019. 5. 4.
[유럽여행-바티칸]초보 여행자, 바티칸에서 길을 잃다 [처음 만난 유럽 ⑥]초보 여행자, 바티칸에서 길을 잃다 *사진은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음. 여행기를 이어 쓰면서 퇴직을 즈음하여 아내와 같이 유럽을 여행한 것은 지난해 4월이었다. 15일부터 22일까지 이어진 8박 9일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한숨 돌린 뒤 바로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져 미리 여행지 공부를 하긴 했는데 정작 돌아와 사진을 뒤적이며 복기한 여행의 기억은 뒤죽박죽이었다. 당연히 찍힌 사진은 시간 순서에 따른 것이었는데도 그 기억의 앞뒤가 헛갈렸다. 그게 로마였는지 피렌체였는지가 헛갈리는가 하면 찍은 사진의 유적이 무엇이었는지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기억조차 헛갈리는 사진만으로 여행을 그대로 복기하라고 했다면 나는 나자빠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때는 인터넷 시대.. 2019. 5. 3.
콩나물밥, 한 시대와 세월 그 시절의 ‘콩나물밥’을 그리며 어저께 저녁에는 아내가 콩나물밥을 했다. 오랜만이다. 밥을 푸기도 전에 집안에 콩나물의 비린 듯한 담백한 냄새가 확 퍼졌다. 그동안 죽 현미밥만 먹었는데 모처럼 한 메밥이다. 아내가 처가에서 현미라고 찧어온 게 백미에 가까웠다. 그냥 먹기로 했는데 그걸 현미밥이라고 할 수는 없을 터이다. 글쎄, 콩나물밥에 어떤 역사적 유래가 있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양식을 아끼거나 밥의 양을 늘리고자 한 거로 보이지는 않는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봐도 구체적 자료가 눈에 띄지 않는다. ‘디지털 부천문화대전’이란 사이트에서는 ‘경기도 부천지역의 향토음식’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글쎄, 콩나물밥이 어디 부천만의 음식이랴! 가난한 살림 탓에 생겨난 음식이 아니라면 이는 '별식'이겠다. 어린 시.. 2019. 5. 3.
[유럽여행-로마]로마, ‘드라마틱’과 ‘로맨틱’ 그 사이 어디쯤 [처음 만난 유럽⑤] 로마 ② 고대에서 근대로의 여정 *사진은 클릭하면 큰 사이즈(1280×848)로 볼 수 있음. 우리는 가끔 연극처럼 그 전개가 역동적이고 경이로운 상황을 일러 ‘드라마틱(dramatic)하다’고 표현한다. 그것은 고여 있는 일상을 일거에 깨뜨리는 파한과 파격의 시간이다. 드라마틱한 시간의 전개 가운데 으뜸은 역사다. 때로 역사는 드라마의 그것을 뛰어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라의 크기와 무관하게 역사는 극적으로 전개되지만, 단일 국가가 아니라 세계적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의 경우 그 극적 성격은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제정으로 전개된 2천 년의 역사에 아롱진 숱한 정복 전쟁과 권력 투쟁에서 흘린 피의 성찬(盛饌)이야말로 ‘드라마틱 로마’의 진면목이 아니던가 말.. 2019.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