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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각과 삶, 혹은 추억

콩나물밥, 한 시대와 세월

by 낮달2018 2019.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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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의 ‘콩나물밥’을 그리며

▲  우리 집 콩나물밥 . 우린 콩나물을 넣어서 짓는데 따로 해 비비는 게 좋단다.

어저께 저녁에는 아내가 콩나물밥을 했다. 오랜만이다. 밥을 푸기도 전에 집안에 콩나물의 비린 듯한 담백한 냄새가 확 퍼졌다. 그동안 죽 현미밥만 먹었는데 모처럼 한 메밥이다. 아내가 처가에서 현미라고 찧어온 게 백미에 가까웠다. 그냥 먹기로 했는데 그걸 현미밥이라고 할 수는 없을 터이다.

 

글쎄, 콩나물밥에 어떤 역사적 유래가 있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양식을 아끼거나 밥의 양을 늘리고자 한 거로 보이지는 않는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봐도 구체적 자료가 눈에 띄지 않는다. ‘디지털 부천문화대전’이란 사이트에서는 ‘경기도 부천지역의 향토음식’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글쎄, 콩나물밥이 어디 부천만의 음식이랴!

 

가난한 살림 탓에 생겨난 음식이 아니라면 이는 '별식'이겠다. 어린 시절에 우리 집에서도 콩나물밥을 즐겼고, 요즘은 학교 급식에도 나올 정도니 별식으로 보는 게 무리가 아니다. 학교 급식으로 나오는 콩나물밥은 콩나물밥이긴 하지만 무언가 빠진 듯한 것이다.

 

밥을 지을 때 쌀을 안치고 그 위에 콩나물을 올리는 거야 다를 게 없다. 문제는 양념장이다. 콩나물밥이 순정(純正)(!)의 맛을 내는 데 가장 종요로운 것이 이 장맛인 것이다. 파·마늘·고춧가루·깨소금을 넣어 만든 양념장은 우리 집에서 만드는 것보다 나은 맛을 나는 아직 먹어 보지 못했다. 역시 입에 길든 맛이란 게 있기는 하다.

 

어머니께서 만드신 장맛은 며느리인 아내에게 그대로 물렸다. 아내가 만드는 양념장은 정평이 있다. 국수나 묵 같은 음식은 양념장이 그 맛을 가른다. 아내의 양념장을 맛본 이들은 그걸로 맨밥을 비벼 먹고 싶어 한다. 특히 아내가 아끼지 않고 듬뿍 치는 참기름은 거기 든 다른 조미료들의 맛을 반쯤 누르면서 고소한 뒷맛을 만들어낸다.

 

아내는 콩나물밥에도 무도 좀 썰어 넣었다. 널따란 식기에 떠 주는 콩나물밥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하다. 양념장으로 비벼 한 입 넣으니 입안에 퍼지는 담백한 맛이 낯익다. 조금 싱겁게 먹자고 양념 간을 덜 치고 먹는데도 구미가 새로워진다.

 

먹다 보니 아내가 같이 넣어서 비비라고 김치를 잘게 썰어 놓았다. 맞다. 콩나물은 잘게 썬 김치와도 궁합이 맞다. 예전 내 어릴 적에 우리 집에서는 고봉밥과 밥 위에 얹은 썬 김치와 무생채로 방아를 찧으러 온 마을 사람들을 대접했다. 무생채와 김치의 궁합만큼은 아니지만 담백한 맛의 콩나물 맛과 다소 자극적인 김치 맛은 서로의 허한 부분을 메꿔 주기에 족하다.

 

인터넷에 오른 콩나물밥은 다진 고기를 넣은 게 태반이다. 왜 사람들은 담백한 콩나물밥에도 고기를 쓰는 걸까. 얼마 전에는 집에서 토란탕을 끓여 먹었다. 인터넷을 뒤져 보고서야 사람들은 토란탕에도 빠지지 않고 고기를 넣는다는 걸 알았다. 고기가 모든 음식의 으뜸이라고 보는 오래된 식습관 탓일까.

▲ 비빈  콩나물밥.  밥 빛깔이 불그스레해지니 구미가 당긴다 . ⓒ 유튜버(만 개의 레시피)

‘디지털 부천 문화대전’에서는 세계에서 콩나물을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전한다. 아, 그건 정말 몰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콩나물만으로 무침과 국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음식에도 넣어서 그 음식 고유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 맛을 살려주는 게 또한 콩나물이다.

 

딸애도 맛나게 콩나물밥을 먹는다. 하긴 우리가 이 밥을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아이는 콩나물밥을 들 것이다. 우리에게 콩나물밥은 아련한 어린 시절의 식생활만을 환기하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을 가득 채우던 시대의 공기와 추억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해 주는 음식인 것이다.

 

음식은 의식주의 으뜸이다. 그것은 생존을 가능케 하는 원천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 같은 것이다. 어떤 특정한 시대마다 그 시대를 특징짓는 음식이 한 가지씩 있지 않은가. 초겨울 저녁 콩나물밥을 들면서 우리 내외는 새삼 1960년대 어름의 한 시대와 그 세월에 잠깐 젖어 있었다.


콩나물밥
 
[정의]
경기도 부천 지역에서 많이 나는 콩나물을 이용한 향토음식.
 
[개설]
세계에서 콩나물을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콩나물무침, 콩나물국 등 콩나물을 다양하게 이용한다. 또 아귀찜이나 미더덕찜 같은 매운 해물 음식에 아귀나 미더덕보다 더 많이 들어가 맛을 내는 것도 콩나물이다. 일본에도 콩나물을 먹는 지방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전파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원 및 변천]
예전에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고 식량을 자급자족했기 때문에 농사가 쉽고 일년 내 저장해 두었다가 먹을 수 있는 콩을 많이 재배하였다. 자연히 콩을 이용한 음식도 많이 생겨났는데, 콩나물밥도 그중 하나이다. 콩나물은 주로 집에서 길렀는데, 시루에 짚을 태운 재와 콩을 켜켜이 넣고 보자기를 씌워 빛을 차단하고 물을 주면 콩이 발아하여 콩나물이 된다.
 
[만드는 법]
콩나물을 다듬어 씻는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콩나물을 밥 위에 올린다. 흰밥을 지을 때보다 물을 적게 붓고 참기름을 한두 방울 넣는다. 밥이 다 되면 간장에 파·마늘·고춧가루·깨소금을 넣고 양념장을 만들어 비벼 먹는다.
 
                                                                                                       <디지털 부천 문화대전>에서

 

2010. 12.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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