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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2019/0537

2009년, 노무현 이야기 둘 노무현, 남은 자들의 성찰과 참회 어느새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다. 2009년 그의 죽음은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를,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가르쳤고, 그를 지지한 국민에겐 정치적 지지의 시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노무현은 적어도 지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는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은 길이어서, 스스로 가야 할 길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그의 길을 간 지도자다. 그를 따르려던 정치인들은 그 길이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그가 떠난 지 8년 뒤에 그의 비서실장이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고 정치적 동.. 2019. 5. 22.
온달과 노무현, 그 ‘경멸과 증오’의 방정식 온달산성에서 ‘노무현과 그의 시대’를 생각한다 “오늘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온달산성에서 엽서를 띄웁니다.” 이 문장은 쇠귀 신영복 선생의 글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 갑니다”(나무야 나무야, 2001)의 첫 문장이다. 내가 가족과 함께 단양의 온달산성을 다녀온 것은 지난해 이맘때, 대통령 선거일이었지만, 오늘은 같은 문장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온달산성이 있는 충북 영춘은 내가 사는 데서 100여 Km쯤 떨어진 한적한 시골이다. 이 조그마한 시골 언저리에 길게 누운 427m의 성산(城山)에 세워진 길이 922m, 높이 3m의 반월형 석성이 온달산성이다. 중3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이 글을 내리 세 해 동안 가르쳤지만 정작 나는 거기 가보지 못했었다. 문학작품 속의 배경.. 2019. 5. 20.
불국사의 발견, 또는 재발견 길라잡이 따라 불국사 답사, 불국사의 ‘발견’ 5월 첫날에 불국사(佛國寺)를 다녀왔다. 지난 3월 첫날의 ‘대구 근대 투어’에 이은 두 번째 답삿길이었다. 훌륭한 길라잡이는 답사객의 눈을 뜨게 해 주는 법, 나는 이웃 블로거 초석이 들려주는 불국사를 기대했고 그것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불국사, 첫 아이가 말문을 튼 곳 불국사는 아마 내가 난생처음 찾은 절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향 주변엔 절이 드물었고, 부모님은 불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거쳐 부산을 다녀왔으니 그때 불국사를 빼먹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어릴 적 여행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다. 나는 초등학교 때에 들렀던 이 절집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 다시 나는 불국사를 찾았던 것일까. 글쎄,.. 2019. 5. 20.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구미 금오산 채미정(採薇亭) 구미에 들어와 산 지 어느새 4년째다. 선산 골짝을 골골샅샅 훑는 데만 족히 서너 해가 걸릴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왔건만, 골골샅샅은커녕 아직 금오산에도 오르지 못했다. 블로그의 ‘선산 톺아보기’에 쓴 글도 8편이 고작이니 ‘개점휴업’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금오산 어귀의 채미정(採薇亭)을 지날 때마다 자신의 게으름을 돌이켜보곤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善山)에 있다.”()고 할 때 그 인맥의 출발점이 곧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이기 때문이다. 야은은 목은(牧隱) 이색(1328~1396), 포은(圃隱) 정몽주(1338~1392)와 함께 여말 삼은(三隱)으로 불리는 이다.(.. 2019. 5. 19.
울진 소광리의 금강소나무 숲 ‘금강송’ 대신 ‘황장목’으로 쓰자 어저께 치악산에서 열린 ‘황장목 숲길 걷기’ 관련 텔레비전 뉴스에서 ‘금강송’이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붙인 이름으로 ‘황장목(黃腸木)’으로 써야 한다고 했다. 무심히 ‘금강소나무’니, ‘금강송’이니 하고 써 왔는데 정작 국어사전에서는 검색해 봐도 실려 있지 않다. 조선시대 왕의 관을 짤 때 쓰던 우리나라 최고 품질의 소나무가 황장목이다. 두꺼운 껍질과 단단한 재질에다, 속살이 누렇다고 하여 ‘황장목’이라 불린다. 황장목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 일대의 산지에서 자라는 소나무”라는 ‘춘양목(春陽木)’으로도 불리지만, 대체로 ‘금강송’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게 일제 식민지의 찌꺼기 말이라고?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가 가꾸고 있는 금강소나무 .. 2019. 5. 19.
띠동갑 내 ‘첫사랑’이 다녀갔다 띠동갑 내 첫 제자들과 만나다 지난 월요일에 띠동갑인 내 첫 제자들이 다녀갔다. 그간 내왕하던 두 아이를 출판기념 모임에 초대했더니 스승의 날을 앞두고 모두 넷이 겸사겸사 구미를 찾은 것이다. 부산과 경주, 밀양과 대구에서 각각 달려온 이들은 올에 쉰둘, 나와 열두 살 차 띠동갑이다. 스물아홉에 만난 열일곱 여고생 스물아홉, 뒤늦게 대학을 졸업하고 부임한 경주의 어느 시골 여학교에서 나는 이들, 열일곱 살짜리 여학생을 만났다. 담임을 맡아 졸업할 때까지 내리 3년을 가르쳤다. 이들을 내 ‘첫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관련 글 : 좋은 이웃, 혹은 제자들(1)] 나는 꽤 오랫동안 내게 배운 아이들을 ‘제자’라고 부르는 것을 삼갔다. 글쎄, “‘스승’은 없고 ‘선생’만, ‘제자’는 없고 ‘학생’만 있다”.. 2019. 5. 17.
“동인문학상·팔봉비평문학상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작가회의·민족문제연구소 주최 학술세미나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3.1운동·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가 열렸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이번 세미나에서 다룬 문학상은 동인문학상(조선일보)과 팔봉비평문학상(한국일보)이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의 기조 강연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동인문학상과 관련해서는 고인환(경희대), 하상일(동의대), 임성용(시인)의 발표와 서영인(국민대), 이동순(조선대), 손남훈(부산대)의 토론이, 팔봉문학상 관련해서는 이명원(경희대)의 발표와 최강민(우석대)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임헌영 소장은 친일파 청산이 '빨갱이'로 매도되는 현실에서 민족문제연구소는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공인된 친일.. 2019. 5. 16.
역과 기차, 그리고 세월… 철길과 역 그리고 역(驛)이란 공간이 주는 울림은 만만찮다. 그것은 한 세계를 다른 세계와 이어주는 장소다.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익숙한 공간이기도 하다. 역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 이를테면 대합실과 개찰구, 플랫폼, 철길 따위의 부속 요소들이 함축하고 있는 이미지들과 함께 사람들에게 저마다 달리 다가간다. 역, 한 세계를 다른 세계와 이어주는 곳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철도역’으로 축소되었지만, 근대 이전에는 그 의미가 훨씬 드넓었다. 왕조시대에 역은 역마(驛馬)를 갈아타는 곳이었고, 사람과 말, 마차가 머무르는 여관과 차고이기도 했다. 또 역은 통신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역은 옛날과는 사뭇 다르다. 그 의미조차 축소되어 ‘철도’라는 특정한 교통수단에서만 쓰는 용어가 된 .. 2019. 5. 16.
성냥불, 허공에 그어보는 아득한 기억의 불꽃 무릇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소회 제우스 몰래 ‘천상의 보물’이었던 ‘불’과 ‘지혜’를 훔쳐서 인간에게 전해준 것은 프로메테우스였다. 진노한 신은 그를 코카서스의 바위산에 묶고,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내렸지만, 인간은 그 보물에 기대어 오늘날의 문명을 창조했다. 프로메테우스가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불이 인류 문명의 발전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했는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불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에너지양의 지속적인 증가와 인간이 불을 제어하는 것이라는 현대 과학기술사’의 특징은 그만두고서라도 불이 없는 인간의 일상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 난만한 21세기에도 인간은 불 없이 음식을 익히고 어둠을 밝히거나 공간을 덥힐 수 없다. 불은.. 2019. 5. 15.
시간을 잇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뭍의 섬, 경북 영주 무섬마을의 ‘고향 이야기’ 마을을 둥그렇게 물이 돌아 흐르는 이른바 ‘물돌이 마을’로 안동에 하회가, 예천에 회룡포가 있다면 경북 영주에는 무섬이 있다. 안동시 임동면 무실의 행정명칭이 ‘수곡(水谷)’이듯 무섬의 주소는 정확히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水島里)다. 무섬은 ‘물의 섬’이라는 ‘물섬’에서 시옷(ㅅ) 앞의 리을(ㄹ)이 떨어진 형태다. 이는 ‘불삽’에서 ‘부삽’이 나온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이 이름과 그 해석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섬은 당연히 물 가운데 있는 것, ‘물’자를 굳이 붙일 이유가 별로 없다. 누군가의 주장대로 ‘뭍’에 있는 섬, ‘뭍섬’에서 온 이름일 가능성이 훨씬 커 보인다. 이웃한 동네, ‘술미’의 한자 이름은 ‘탄산(炭山)’인데 이는 아마 본디 이름 .. 2019. 5. 14.
거대한 감옥, 식민지에 살다 1910∼1945 강제병합 100년 특별사진전 도록 강제병합 100년 특별전 는 지난 8월 12일부터 9월 30일까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11·12 옥사에 열렸다. 주최는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국 실행위원회, 주관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했고, 동북아역사재단·경향신문사·서울지방보훈청이 후원했다. 물론 이 행사에 나는 가보지 못했다. 대신 민족문제연구소 누리집(☞ 바로 가기)에서 펴낸 이 전시회의 도록을 샀다. 민족문제연구소의 히스토리뱅크몰에서 파는 이 도록은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에게는 할인을 해 준다. 나는 사실 을 사지 못했다. 책의 가치와는 별개로 책값이 너무 부담스러웠던 까닭이다. 대신 나는 학교 도서관에 가정 먼저 그 책을 구입하게 했고, 필요할 때마다 학교에서 사전을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2.. 2019. 5. 14.
"여기 알아? 동네 사람들이 벽 속에 있어" 안동 신세동 길섶 미술로(路)에는 사람들의 삶이 있다 흔히들 ‘가난’은 불편한 것일 뿐 부끄러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책임으로 물을 수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제도 등 구조에서 비롯된 게 가난이니 이 명제에 잘못은 없다. 그러나 사실 가난이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명심보감에 이르기를 ‘사람이 가난하면 지혜가 짧아진다’[인빈지단(人貧智短)]고 한 까닭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삶이 고단하면 지켜야 할 예의범절도, 사람 노릇도 쉽지 않아진다. 궁핍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한 가정의 삶을 옥죄는 질곡인 것이다. 가난하다고 아름다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한 이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넉넉한 이들이 누리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식구들끼리의 단란한 외식은 물론이.. 2019.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