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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2019/0537

“전교조에서 사람의 길, 교사의 길을 배웠다” 창립 30돌, 퇴직 전교조 조합원 교사의 회고 지난 25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30주년 전국교사대회'에 다녀왔다. 이 대회의 구호는 '법외노조 취소! 노동기본권 쟁취'였다. 웬 '법외노조'냐고? 알 만한 사람은 구호만 살펴봐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지금 처한 상황을 눈치채고도 남을 것이다. 합법노조에서 법외노조로 되돌려진 전교조 30돌 그렇다. 1989년에 설립된 전교조는 10년 만인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합법노조가 됐다. 1천6백여 명의 교사가 학교에서 쫓겨나고 위원장과 노조 간부들이 투옥되는 등의 희생을 치르고서였다. 그러나 합법노조로 누린 시간은 길지 않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열 명도 되지 않는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 2019. 5. 30.
척화 대신, 모국어로 ‘망국’을 노래하다 [안동 시가 기행 ⑤] 청음 김상헌의 ‘가노라 삼각산아…’ 아이들에게 우리 문학을 가르치다 가끔 그런 얘길 하곤 한다. 만약, 송강 정철이, 또는 고산 윤선도가 ‘진서(眞書)’가 아닌 ‘언문(諺文)’으로 된 노래를 남기지 않았다면, 혹은 그들이 ‘사미인곡’이나 ‘관동별곡’을, 또 ‘어부사시사’와 ‘오우가’를 우리말 아닌 한시로 남기고 말았다면, 하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문학 유산이 한문투성이의 시부에 그친다면 그게 얼마나 ‘끔찍한 풍경’일 것인지를. 조선조 사대부들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한문 공부를 시작하여 평생을 이국 문자의 의미망 속에서 갇혀 산 이들이다. 당연히 이들은 한문으로도 완벽한 문자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이 굳이 우리말로 노래한 까닭.. 2019. 5. 29.
화림동 계곡에 으뜸 정자 ‘농월정(弄月亭)은 없다’ 국내 최고의 정자 답사 코스, 화림동 계곡 1월의 두 번째 주말, ‘안동’에서 ‘함양’으로 길을 떠났다. 예부터 큰 인물을 낳은 땅으로 경상좌도에선 안동을, 경상우도에선 함양(咸陽)을 꼽으니 우리의 여정은 ‘좌 안동’에서 ‘우 안동’으로 가는 길이다. 영남 유림의 본산으로 안동에 퇴계 이황이 있다면 함양에는 일두 정여창(1450~1504)이 있었다. 조선조 5현, 동국 18현 중의 한 분으로 기려지는 이 영남 거유가 태어난 곳이 함양군 지곡면인 것이다. 함양에서 제일 먼저 들른 곳이 안의(安義)다. 1914년 안의군이 폐지될 때까지 함양의 중심이던 고을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이 현감으로 다섯 해 동안 이 고을을 다스렸다. 그는 이때, 나라에서 처음으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쓰.. 2019. 5. 29.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안동 시가 기행 ④]역동 우탁의 ‘탄로가(嘆老歌)’ 시조는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걸쳐 형성, 정제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 문학 중 유일무이한 정형시다. 시조는 국문학사에 명멸해 간 여러 시가 형식 중 가장 생명력이 긴 갈래로 지금도 즐겨 불리고 있다. 현대인의 정서를 담는 데는 힘이 달릴 것 같은 이 오래된 시가 양식이 이날까지 장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시조의 형성은 고려 말에 유입되어 조선 왕조의 지도이념으로 각광 받게 된 주자학(성리학)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 시조는 고려의 타락 부패한 불교를 극복하고 여말 이래,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떠오른 성리학을 신봉하는 유학자들, 이른바 신흥사대부에 의하여 성립된 새로운 시형이었다. 여말 시조작가 우탁, 성리학을 정립한 신흥사대부 이들 신흥사대부는 원래.. 2019. 5. 28.
황교안 칭송 안동 유림이 욕먹는 진짜 이유 국정농단 관련자 추켜세우기 부적절…독립운동 앞장선 ‘혁신 유림 정신’ 되새겨야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칭해 온 경북 안동시가 뉴스의 한가운데로 불려 나왔다. 지난 13일, 지역 유림이 안동을 방문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구세주”, “백 년에 한 번 나올 사람”이라고 추켜세운 일 때문이다. ‘유림(儒林)’이라고 했지만, 오늘날 이런 호칭은 얼른 실체가 드러나는 낱말이 아니다. 사전이 풀이하는바, “유학을 신봉하는 무리=사림”(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뜻을 새기는 게 만만찮은 일이 아닌 까닭이다. 전근대에야 학문이라면 성리학 일색이었으니 ‘글줄이나 읽은 사람’은 모두가 유림의 일원이었겠다. 그러나 만인이 근대교육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하는 오늘날에 ‘유학을 신봉하는 무리’를 특정하고 이를 가리켜 ‘유.. 2019. 5. 28.
버릴 수 없는 꿈, 교사 배주영을 생각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가 창립 30돌을 맞았다. 1989년 5월 28일 창립 이후 1600여 교사가 학교에서 쫓겨났다. 5년여의 해직 기간에 유명을 달리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듬해 2월, 첫 비보를 남기고 떠난 이가 경북의 배주영 선생이다. 꼭 10년 전이 그의 19주기였으니, 올이 그의 29주기다. 우리는 그의 죽음에서 역산하여 전교조 창립 30주년을 환기한다. 그것은 회한이면서 일종의 부채감이기도 하다. 1993년에는 내 동갑내기 친구 정영상이 갔다. 복직하고 5년 만에 전교조는 합법노조가 되었다. 그러나 14년 뒤인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하면서 전교조는 다시 법외노조가 되었다. 촛불 혁명을 거쳐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6년째 전교조는 법외노조다. 10년 .. 2019. 5. 27.
‘저 아름다운 한 사람’을 더욱 잊지 못하네 [안동 시가 기행 ③] 퇴계 이황과 퇴계의 그늘은 넓고도 크다 안동은 퇴계의 고장이다. 이 16세기의 대 성리학자는 무려 4세기가 지났어도 여전히 안동에 살아 숨 쉬는 인물이다. 퇴계를 떠나 안동의 유림과 학문, 전통과 역사를 말할 수 없다. 내로라하는 안동의 명문거족들이 모두 퇴계의 문하로 또는 영남학파로 이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서애 류성룡(풍천 류씨)을 비롯 학봉 김성일(의성 김씨), 송암 권호문(안동 권씨)이 퇴계의 문하였고, 퇴계의 학맥은 장흥효(안동 장씨), 이휘일(재령 이씨), 이상정(한산 이씨) 등으로 이어졌으니 이들은 모두 안동과 인근 고을의 명문가들인 것이다. 십수 년 전에 안동 인근에 살게 되면서 나는 왜 안동이 이육사 시인을 기리지 않는가를 의아해했다. 안동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까.. 2019. 5. 27.
속세를 끊은 마을, 떠나기가 싫었네 [안동 시가 기행 ②] 농암 이현보의 , 댐이 건설되면 숱한 마을과 논밭이 물 아래에 잠긴다. 당연히 거기 살던 사람들은 물에 잠길 고향을 떠나 더 높은 뭍으로 떠난다. 정든 집과 마당, 유년의 추억이 깃든 개울이나 언덕 따위와도 꼼짝없이 헤어져야 한다. 그나마 수몰을 면하는 집이 있다. 주로 보존 가치가 있는 옛집들이다. 이들 고가는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비용이 드는 해체·복원 과정을 거치며 살아남는다. 그게 수백 년 동안 고택이 먹은 나이에 대한 지금 세상의 배려고 대우다. 안동댐 건설에서 살아남은 농암 이현보 유적 분강촌 경북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 일대에 있던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 선생의 유적도 안동댐 건설에서 그렇게 살아남았다. 얼마 전에는 흩어져 있던 긍구당과 사당, .. 2019. 5. 26.
"가는 것이 저와 같으니 백 년인들 길겠느냐" [안동 시가 기행 ①]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의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 교과서에 등장하는 지은이들의 자취를 이웃에서 심심찮게 만나는 경우가 많다. 볼 것 없이 이 땅 곳곳이 선비들의 고장이었던 덕분이다. 당연히 그건 내가 사는 지역만의 상황은 아니다. 그만그만한 땅과 마을마다 고전문학 주인공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것이다.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구호로 그 전통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고장이다. 당연히 발길에 차이는 게 고택과 정자요, 거기 머문 시인묵객의 자취도 화려하다. 의 퇴계를 비롯, 경기체가 과 을 지은 근재 안축, 의 농암 이현보 등이 이 고을과 인근에서 삶과 자연을 노래했다. 퇴계와 농암의 자취는 인근 도산면에서, 근재의 흔적은 영주 순흥의 죽.. 2019. 5. 25.
공감과 연대, ‘비봉산 화전놀이’로의 초대 [서평] 박정애 장편소설 장편 서사 가사인 ‘덴동어미 화전가(花煎歌)’의 주인공인 ‘덴동어미’가 새롭게 태어났다. 20세기 초엽 화전놀이 현장에서 구연(口演)된 한 여성의 일생을 새롭게 한 땀 한 땀 새긴 이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인 박정애다. ‘새롭게 태어났다’고 했지만, 기실 작가의 장편소설 (한겨레출판)은 가사로 전해져 온 덴동어미의 삶을 ‘복원’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가사 관련 글 : 기구하여라 ‘덴동 어미’, 그 운명을 넘었네] 가사 ‘덴동어미 화전가’의 소설화 “비봉산에 두견화 꽃 올해도 만발하니 화전 가세 화전 가세 꽃 지기 전에 화전 가세 사람이 살면 백 년을 살며 올해를 놓치면 명년엔 어떠할라” ‘덴동 어미 화전가’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어느 봄날, 인근 비봉산에 오른 한 .. 2019. 5. 23.
8년…노무현을 다시 배웅하면서 노무현 8주기, 그를 다시 배웅하면서 2017년 노무현 8주기를 맞아 쓴 글이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의 자격으로 참석한 8주기 추도식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느꼈던 소회이기도 하다. 올 10주기 추도식은 또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면서 이태 전에 쓴 글을 다시 읽는다. 8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그의 죽음을 심상하게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어서가 아니라 그 죽음은 너무 무겁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운명’이라는 짧은 유서를 남겼던 그 자신뿐 아니라, 참담한 부음 앞에서 목 놓아 울었던 시민들의 가슴에 화인처럼 찍힌 뜨겁고 아픈 한과 슬픔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꿈과 희망’이고, ‘환멸’이고 ‘배신’이었다 그는 내가 표를 주어 당선된 첫 .. 2019. 5. 23.
효순·미선이 8주기, “역사는 바래고 노래는 남는다” 효순·미선이 8주기에 부쳐 오늘 아침 를 보고서야 어제가 효순·미선이 8주기라는 걸 알았다. 2002년 6월 13일, 친구 생일잔치에 가던 두 여학생 신효순과 심미선(14)이가 50t 미군 장갑차에 치여 희생되었다. 서둘러 장례를 치르고 사고를 봉합하려던 한미 군 당국의 조치는 전 국민적 저항을 불러왔다. 결국, 그해 연말의 대통령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친 이 사고는 소파(sofa, 한미행정협정)를 비롯한 한미 양국 간 불평등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사건의 미온적 처리가 국민적인 반미열풍을 부르자 미군은 미 대통령의 간접사과를 전하고 소파 개선방침에도 합의했지만, 가해자들은 미군의 군사 법정에서 무죄 평결을 받고 한국을 떠났다. 당시 ‘미군 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 2019.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