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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풍경

울진 소광리의 금강소나무 숲

by 낮달2018 2019.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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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송’ 대신 ‘황장목’으로 쓰자

어저께 치악산에서 열린 ‘황장목 숲길 걷기’ 관련 텔레비전 뉴스에서 ‘금강송’이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붙인 이름으로 ‘황장목(黃腸木)’으로 써야 한다고 했다. 무심히 ‘금강소나무’니, ‘금강송’이니 하고 써 왔는데 정작 국어사전에서는 검색해 봐도 실려 있지 않다.

조선시대 왕의 관을 짤 때 쓰던 우리나라 최고 품질의 소나무가 황장목이다. 두꺼운 껍질과 단단한 재질에다, 속살이 누렇다고 하여 ‘황장목’이라 불린다. 황장목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 일대의 산지에서 자라는 소나무”라는 ‘춘양목(春陽木)’으로도 불리지만, 대체로 ‘금강송’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게 일제 식민지의 찌꺼기 말이라고?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가 가꾸고 있는 금강소나무 숲이 있는 울진군 서면이 2015년에 ‘금강송면’이라고 행정구역 명칭까지 바꾸었는데? 글쎄, 이게 왜 이제야 알려졌는지 입맛이 쓰다.

조선 시대에는 황장목이 자라는 강원과 경북 등 전국 60곳 산의 입산을 통제하고 ‘황장금표(黃腸禁標)’라는 경고 표지로 주민들의 벌채를 엄격히 금지했다. 유일하게 황장금표가 세 군데나 있는 특별한 황장목 서식지인 치악산에서 황장목의 정확한 유래를 알리기 위한 황장목 숲길 걷기축제가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안동에 살 때, 해마다 소광리를 다녀오곤 했는데, 2007년에 쓴 글 한 편, 그리고 2011년에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인 봉화 서벽리 금강소나무 숲을 답사하고 쓴 글을 다시 읽는다. 숲은 한 번도 거길 찾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울진 소광리가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까닭이다. (금강소나무를 전부 황장목으로 바꾸는 게 어쩐지 낯설어 그냥 두기로 한다.)

 * 춘양목과 황장목…, ‘금강소나무’는 있다!

                                                       2019. 5. 19.

 

울진군 금강송면(2015년에 서면에서 행정구역 명칭 변경) 소광리에는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가 가꾸고 있는 금강소나무 숲이 있다. 2003년부터 거의 해마다 한 번꼴로 찾았으니 이번이 다섯 번째 방문길이다. 언제나 그렇듯 소광리를 찾은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특히 잡목숲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붉고 곧은 금강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소광리의 숲은 숲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 준다.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의 면적은 1,610ha(1ha3,025평이니 약 480만 평이다.), 나무의 나이는 평균 150(10~520), 나무의 키는 평균 23m(6~35m)이다. 어른 가슴높이에서 잰 나무의 평균 지름은 38cm(6~110cm)이다. 금강소나무는 강원도와 경북 울진·봉화지역의 곧은 소나무를 가리키는데 강송, 또는 금강송(金剛松)이라고도 불린다.

 

금강소나무의 다른 이름인 황장목(黃腸木)은 중국 황제의 관()을 만든 가래나무를 가리킨 이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가래나무를 대신해 금강소나무로 왕실의 관과 궁궐을 짓는 데 써서 붙은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소광리 일대 소나무들이 벌목돼 기차가 있는 봉화 춘양역으로 실려 갔다 해서 춘양목, 나이테가 조밀하고 심재부가 넓고 붉은색을 띠고 있다 하여 적송(赤松)이라고도 불린다.

 

경북 봉화 현동에서 울진으로 가는 길, 통고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5쯤 더 가면 왼쪽에 소광리이정표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소광리의 끝 마을인 대광천까지는 9. 어귀는 포장길이지만 금세 울퉁불퉁한 비포장 흙길과 자갈길로 바뀐다. 길을 따라 금강소나무 숲과 맑은 내가 이어진다.

 

찻길이 끝나며, 임도(林道)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거대한 금강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맞은편에는 금강소나무 전시실이 세워져 있다. 소광리 금강소나무 생태 경영림은 우리나라 최대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다. 공중진화용 사방댐, 물고기 댐, 물막이 보, 34Km의 임도를 갖추고 있다. 계곡을 중심으로 한 먹이사슬도 복원되고 있다.

 

현재 이 숲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12ha의 후계림을 조성하고 있다. 어린나무가 거의 없고 대부분 40년생 이상의 나무들만 자라는 상황이어서 큰 나무들이 죽으면 금강소나무는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정작 아름다운 풍광인데도 불구하고 소광리는 늘 한적하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계곡에 어쩌다 가족 단위의 피서객이 눈에 띌 뿐이다. 강수 확률 60%라는 예보를 무시한 방문이었는데, 다행히 거기 머문 시간 동안 비는 오지 않았다.

 

여러 번 사진을 찍었지만 만족할 만한 사진을 얻기는 힘든다. 언제쯤 제대로 된 사진 얻을 수 있을지……. 때론 렌즈도 재현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의 풍경 하나, 오롯이 담고 우리는 소광리를 떠났다.

▲지난해 2월, 금강산 호텔에서 내려다본 금강소나무 군락이다.
▲ 황장봉계 표석 . 봉산 ( 封山 : 나라에서 일반인들이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실시한 제도 ) 의 경계를 표시한 표지석 .
▲ 지상진화용 소화전이 소광리 숲에는 세 개나 있다.공중진화용 저수댐도 있다고.
▲길가의 개다래.푸르지 않고 약간 노란 빛이 도는 잎은 이 나무가 선택한 생존 전략.

개다래는 잎이 피고 난 뒤 꽃이 피는 데다 잎에 가려서 꽃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수정의 메신저인 곤충이 잘 꾀지 않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잎의 빛깔을 바꿔서 곤충을 유인한 다음, 원래대로 돌아간다

 

2007. 8.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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