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8주기, 그를 다시 배웅하면서
2017년 노무현 8주기를 맞아 쓴 글이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의 자격으로 참석한 8주기 추도식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느꼈던 소회이기도 하다. 올 10주기 추도식은 또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면서 이태 전에 쓴 글을 다시 읽는다.
8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그의 죽음을 심상하게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어서가 아니라 그 죽음은 너무 무겁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운명’이라는 짧은 유서를 남겼던 그 자신뿐 아니라, 참담한 부음 앞에서 목 놓아 울었던 시민들의 가슴에 화인처럼 찍힌 뜨겁고 아픈 한과 슬픔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꿈과 희망’이고, ‘환멸’이고 ‘배신’이었다
그는 내가 표를 주어 당선된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재임 기간 중에 그에게 적지 않게 실망했다. 날이 갈수록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와 그의 정치적 선택 사이의 간극이 커지면서 나는 그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기도 했다.
그 무렵 쓴 글은 그가 ‘애증’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그에 대한 대중들의 다중적인 감정을 환기한 것이었다. 그는 ‘희망’과 ‘꿈’이었지만 한편으로 ‘환멸’이고 ‘배신’이며 ‘절망’이었던 것이다.
노무현은 민주주의를 지향한 많은 민주시민에게 있어서 ‘애증’의 인물이었다. 우리 정치사에서 그만큼 국민의 적극적 지지와 사랑을 받은 정치인이 또 누가 있을까. 그는 때로 사람들에게 자랑과 자부였고, 희망과 꿈이었다. 그러나 그는 때로 환멸이었고, 배신이었고, 절망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비극적 죽음이 결국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성장통쯤으로 정리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이내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그러나 대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서너 시간 동안 줄기차게 방송된 TV 뉴스를 바라보면서 나는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전혀 의식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조금씩 그의 죽음이 무겁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죽음, 스쳐가는 사고가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와 그 역사,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한 정치인의 좌절과 패배였고, 그것이 환기해 주는 우리 자신에 관한 확인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시민들의 애도는 자기 파당의 이해만이 눈에 보일 뿐, 진실과 공의(公義) 따위야 오불관언인 세상, 순식간에 2, 30년 전으로 퇴행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 그것 자체인지도 모른다. 시민들은 정치인 노무현의 죽음을 통하여, 지난 10여 년간 가꾸어 온 민주주의와 그 가치를 새롭게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 무관하게 사람들은 새삼 2009년,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그 역사적 의미를, 지난 세기 내내 싸워서 지켜온 가치들을 성찰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흘리는 눈물, 그 슬픔의 의미는 성장에 영혼을 팔고 있는 오늘의 삶과 가치에 대한 뜨거운 참회일지도 모른다.
- “노무현, 남은 자들의 성찰과 참회”(2009.5.24.) 중에서
5월 29일, 그의 국민장 날에 나는 일간지에 실린 추모 광고를 살펴보면서 애증이 교차한 파토스(pathos)의 정치인을 배웅했다. “당신이 다시 태어나 바보 대통령이 또 한 번 된다면, 나는 다시 태어나 그 나라의 행복한 국민이 되겠습니다.”하고 사람들은 노무현을 떠나보냈다. [관련 글 : ‘그’를 배웅하면서(2009/05/29)]
나는 그가 퇴임하던 해(2008) 12월, 재임 기간 내내 무차별 확산하였던 ‘노무현에 대한 조롱과 증오’를 ‘바보 온달’에 대한 지배층의 경멸과 경계심‘에 견준 기사를 썼었다. 나는 그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는 것을 부정한 게 아니라, 대중의 정치적 지향을 돌아본 것이었지만 대중은 여전히 미움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듯하다.[관련 기사 : ‘노무현 증오’에서 벗어나야 희망 그릴 수 있다]
노무현이라는 한 정치인에게 집중된 지배 엘리트의 경멸과 증오에 편승했던 다수 대중의 에너지와 정치적 지향이 이르러야 할 지점은 어디쯤일까. 그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 우리들의 계급적 이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아닐는지. 그리하여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새롭게 우리 사회의 지향과 미래상을 그릴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 위 ‘기사’ 중에서
노무현 최후의 선택은 양가적 감정에서 갈팡질팡하던 대중의 심사를 일시에 무력화해 버렸다.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한 대중 정치인에 대한 추모와 그리움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해마다 봉하마을에 몰리는 사람들의 발길과 그들이 거기 떨구고 가는 눈물과 그리움의 세월, 8년이 흘렀다.
그리움의 세월 8년, 다시 출발선에서
이른바 ‘대선 과몰입 증후군’에 가까운 유례없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야 했던 촛불 대선이 끝나고, 마침내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부터 선보인 광폭 행보로 온 국민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것은 전임 정권의 비정상성을 확인해 주면서 동시에 상식과 민심을 따르는 정치도 국민에게 행복감을 선사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그냥 기자회견을 하고 말을 하고 대화를 하고 사람들과 자연스레 만나고 악수하고 인사할 뿐인데 그게 신기하고 놀랍고 막 감동적이고…….”
- 대통령의 ‘국무총리 후보 지명 기자회견’에 대한 누리꾼 반응 중에서
대통령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새삼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느꺼워하고 그것을 새롭게 이룩한 ‘공민’으로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있다. 나는 지난 23일 봉하마을에서 베풀어진 노무현 8주기 추도식 중계방송을 모바일로 시청했다.
봉하마을에 가지도 않았고, 추도식 동영상도 전혀 본 적도 없는 내가 그걸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번 대선의 낙수 덕분이다. 나는 이번 대선 기간 유튜브를 통해 적지 않은 동영상을 보면서 이 미디어 시대의 열혈 주권자 흉내를 잔뜩 내보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된 친구 문재인이 참석함으로써 뜻깊은 자리가 된 추도식을 중계로 지켜보면서 내 눈가는 내내 젖어 있었다. 떠난 지 8년이나 지난 고인의 추도식 방송을 보면서 ‘찌질하게’ 눈물 바람을 할 줄을 나는 정말 몰랐었다.
무대에 오른 이들의 추도의 말들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도 결국, 지난 보수 정권의 적폐를 딛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 덕분일 터였다. 나는 현 국회의장(정세균)과 전 국회의장(임채정)의 추도사를 들으며 처음으로 우리 민주공화국의 역사를 생각해 보고 있었다. 그 고단한 여정 가운데서도 우리 사회의 민주 역량도 괄목할 만하게 성장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구시대의 막차가 밀어주어서 새 시대의 첫차가 출발합니다. 바보 노무현의 부산행이 지역주의 망령을 걷어내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당신의 올곧음이 이게 나라냐고 외치는 함성이 됐습니다. 그래서 광화문의 촛불 바다에는 당신의 얼굴이 항상 일렁였습니다. 당신이 뿌린 씨앗이 거둔 열매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지난 10년간 민주주의 후퇴에 맞서온 우리 국민 모두의 진통과 산고의 결과이자 노무현 정신의 승리입니다.
……이제 잊을 법도 한데 우리는 여전히 당신이 그립습니다. 잊은 줄 알았는데 여전히 보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인데 어찌하여 당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더 많아집니까.
당신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유하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은 세상을 사랑하고 불의에 대해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늘 약자 편이었습니다.
당신은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사람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정의가 승리하고 불의가 패배하는 증거를 보고 싶어 했던 그 사람, 착한 사람이 이긴다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사람이 우리 마음속에 사무칩니다.
……우리가 깨어 있겠습니다. 우리가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대통령님이 멈춘 그 자리에서 그날 우리는 다시 출발했습니다. 더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당신이 못다 이룬 꿈! 우리가 기필코 이루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개혁과 통합의 과제를 완수하겠습니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더불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 협력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 임채정(전 국회의장) 추도사 중에서
뒤이은 노무현 대통령의 집 안내 해설 자원봉사자 고명석 씨와 김용옥 씨의 시민 추도사가 사람들을 울렸다. 그들은 깊은 어둠 속에서 살아야 했던 지난 8년을, 자신들이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외로운 독립운동가’였다고 말했다.
“다시는 어리석은 짓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지켜드리지 못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당신이 무척이나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울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당신이 되어 따뜻한 사람 노무현이 되어 봉하마을을 찾는 손님들을 기다리겠습니다.”
봉하마을에 넘치는 활기와 날아오르던 나비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제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을 제대로 배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탄 막차가 새 시대의 첫차를 떠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 다시 일어나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모두 새 출발선 앞에 서 있다.
그를 보내는 통과제의로 시민들도 단단해졌다
희망대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지는 않으리라는 걸 사람들은 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들이 결코 예전처럼 호락호락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그를 보내는 고통스러운 통과제의를 통해서 시민들도 단단해졌다. 때론 증오가 서툰 사랑의 표현이기도 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아직도 봉하마을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나는 다만 적극적으로 거길 찾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을 뿐이다. 지난해부터 여러 번 저울질 해 본 봉하행, 2009년 5월에 보낸 노무현을 영영 배웅하기 위하여 언제쯤 길을 떠날 수 있을까.
2017. 5. 2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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