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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연대, ‘비봉산 화전놀이’로의 초대

by 낮달2018 2019.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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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정애 장편소설 <덴동어미전>

▲ <덴동어미전>, 박정애, 한겨레출판, 2012

장편 서사 가사인 ‘덴동어미 화전가(花煎歌)’의 주인공인 ‘덴동어미’가 새롭게 태어났다. 20세기 초엽 화전놀이 현장에서 구연(口演)된 한 여성의 일생을 새롭게 한 땀 한 땀 새긴 이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인 박정애다. ‘새롭게 태어났다’고 했지만, 기실 작가의 장편소설 <덴동어미전>(한겨레출판)은 가사로 전해져 온 덴동어미의 삶을 ‘복원’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가사 관련 글 : 기구하여라 덴동 어미’, 그 운명을 넘었네

 

가사 ‘덴동어미 화전가’의 소설화

 

“비봉산에 두견화 꽃 올해도 만발하니
화전 가세 화전 가세 꽃 지기 전에 화전 가세
사람이 살면 백 년을 살며 올해를 놓치면 명년엔 어떠할라”

 

‘덴동 어미 화전가’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어느 봄날, 인근 비봉산에 오른 한 무리의 경상도 영주 순흥 여인들의 신명 나는 꽃놀이 한판을 배경으로 하는 노래다. ‘화전놀이’는 연간 단 하루, 내외법(內外法)에 따라 집안에만 갇혀 지내던 이 중세의 여인들에게 허용된 ‘집 밖의 놀이’다.

▲ 화전놀이는 여인들에게 허용된 집밖 놀이였다. ⓒ 안동민속박물관

이 노래는 화전놀이가 펼쳐지는 가운데 한 청상과부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자 덴동 어미가 나서서 그녀를 위로하며 자신의 기구한 한평생을 털어놓는 게 주된 내용이다. 네 번 혼인했으나 네 번 모두 남편을 잃은 여인, 덴동어미의 거듭되는 상부(喪夫), 아무리 애써도 끝나지 않는 가난과 불행으로 점철되는 삶이 화전가의 4·4조 가락에 실리는 것이다.

 

첫 남편은 그네를 타다가 떨어져 죽었다. 두 번째 남편은 역병으로, 세 번째는 산사태로 잃었다. 네 번째 남편 엿장수 조 서방은 엿을 고는 과정에서 일어난 화재로 잃었다. 그때 그녀가 떨군 일 점 혈육이 화상을 입은 ‘덴동’이다.

 

덴동어미가 그런 간난의 세월을 넘어올 수 있었던 힘은 이웃들의 위로를 통해 확인한 희망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을 나누어 온 것은 우리 민족의 오래된 전통이고 공동체 의식이었다. 덴동어미는 자신의 받은 위로를 화전가에 실어 어린 과부에게 되돌려 준 것이다.

 

결국, 화전놀이를 배경으로 한 ‘덴동어미 화전가’는 한 여인의 기구한 인생유전을 중심으로 거기 모인 여성들의 ‘해방과 공감의 연대’의 노래다.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젊거나 늙거나, 남편이 있거나 없거나, 글을 알거나 모르거나에 상관없이 이들 여성이 서로 공감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비슷한 전근대적 억압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작가 박정애가 복원한 이들 20세기 초엽 여성들의 삶도 이 같은 공감과 연대의 궤적을 넘지 않는다. 화전놀이가 발의되고 준비되고 시행되는 과정을 꼼꼼하게 따라가는 부분이 작품의 1부다. 2부는 덴동어미뎐, 3부는 화전의 마무리, 화전 귀로를 다룬다.

 

<덴동어미전>, ‘공감과 연대’의 서사

 

화전놀이는 대개 반가의 부녀에 의해 주도되고 화전가 역시 그들에 의해 불리었다. 이 작품에서 화전놀이를 주도하고 덴동어미의 회고를 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이는 반가의 아낙 ‘안동댁’이다. 그녀 자신도 소생 하나 없이 청춘과부로 모진 세월을 살아온 여인이다. 그녀가 덴동어미에게 보내는 호의와 배려가 단순한 동병상련의 감정을 넘어 같은 여성으로서의 공감과 연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덴동어미전’은 가사로만 전승되어 온 한 여인의 생애를 역사의 갈피에서 깨워 살과 피가 통하게 만든다. 그 여자의 인생유전은 경북 북부지역의 걸쭉한 사투리로 구사되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공감도 역시 민중들의 살아 있는 구어로 이루어진다.

▲ '화전가'(왼쪽)와 '덴동어미 화전가'. 화전가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덴동어미화전가는 <소백산대관>에서 가져옴.

여인들의 봄나들이, 화전놀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전후의 과정과 덴동어미의 인생유전이 작품의 씨줄이라면 그 서사에 구체적 살을 더하는 날줄은 작가가 덧붙인 허구의 서사다. 그 허구의 중심에 안동댁이 거둔 고아 ‘봄이’와 덴동어미의 인생역정을 끌어내는 청상과부, 달실댁이 있다.

 

봄이는 일경의 수색을 피해 숨어 있다가 벌레에 물려 지른 자신의 비명 때문에 발각되어 부모를 잃고 그 충격으로 말을 잃어버린 소녀다. 그녀는 말을 잃은 대신 글을 잘 써 안동댁의 청에 따라 덴동어미의 삶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는다. 한과 슬픔이라면 그녀의 그것도 무겁고 아프다.

 

그러나 그녀는 덴동어미의 삶을 받아쓰면서 그이의 목소리를 통해 어머니의 못 다한 마음을 읽어낸다. 봄이는 ‘거미줄에 걸려 있던 나비가 거미줄을 떨치고 훨훨 날아가는 환상’을 보면서 비로소 어버이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는 죄의식에서 벗어난다. 마을로 돌아오면서 덴동이와 마주친 봄이는 그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너는 불귀신한테 몸을 데었지만, 난 마음을 데였단다. 불에 데어, 울퉁불퉁, 얼룩덜룩, 오그라들고 빠드러진 내 마음이 보이니?”

 

마음의 상처를 넘지 못하던 봄이가 덴동어미를 통하여 자신을 갈무리하고, 덴동이와 자신이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웃의 아픔을 내 것으로 공감하는 사람들, 위로를 통하여 아픔을 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뜨겁고 뻐근한 연대다.

 

덴동어미의 인생유전을 끌어낸 청춘과부, 달실댁의 삶을 두고 벌어지는 여인들의 훈수도 20세기 초엽의 사회상을 일정하게 반영해 준다. 소생도 없이 홀로된 여인 달실댁에게 친정에서 개가를 권하면서 매파를 넣은 것이다.

 

“젊어 수절은 한다 그지마는, 장차 늙은 몸을 어데다 맽길 챔이로. 마침 의성 어느 골에 사는 할아비가 취처를 할라꼬 자식 없는 홀과부를 구한다 그이, 잔말 말고 그 집으로 개가를 하거라. 세간도 충실하고 그고 아들자식도 많다 그더라. 전실 자식이라도 하늘같이 떠받들다 보믄 늙어가 자식 덕을 볼 게라….”

 

내매이로 살라 그나 살지 말라 그나?

 

안동댁도 딱 부러진 의견을 내지 못한다. ‘앉은자리에서 굶어 죽더라도 꼬박이 수절을 해야 사람값을 쳐주지 수절을 못하믄 개돼지 취급밖에 못 받았’다는 세월을 살아온 이 노인에게도 밀려오는 새 시대의 바람은 힘겹다.

 

“아이고, 요즘 세상에는 입이 있은들 훈수를 둘 수가 없네. 내매이로(나처럼) 살라 그나, 내매이로 살지 말라 그나? 나는 시어매라도 있었지마는 달실 새사람은 혈혈단신, 의지할 데가 아무도 없으이……. 수절한다꼬 나라에서 열녀문을 나리줄 것도 아니고…….”

 

개가를 주장하는 여인이 목소리를 높이자, 덴동어미는 달실댁의 손을 잡고 ‘가더라도 가고 싶을 때 가야지, 등 떠밀려서 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박(이야기)’을 시작하는 것이다.

 

“팔자 한탄이 어예 없을꼬마는 잘 만나도 내 팔자요 못 만나도 내 팔자, 백년해로도 내 팔자요 십칠 세 청상도 다 내 팔자래요. 천하 도망 다 댕기도 팔자 도망은 못 댕기니더. 내 말 한번 들어보세이.”

 

‘팔자’로 표현되는 덴동어미의 인생관은 전근대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정작 자신의 인생을 한 바퀴 들려주고 난 뒤에는 새로운 태도를 드러낸다.

 

“시집을 가고 안 가고…. 세상천지 그 두 가지 길밖에 길이 없는 기 아니라요. 두 가지 길밖에 없다꼬 생각하마 두 가지 길밖에 안 븨니더. 이짝으로 가마 벼랑 끝이고 저짝으로 가마 깊은 계곡이라, 아이고 나 죽었네, 이래 생각하마 죽는 길밖에 안 븨지요. 딴 길이 있다꼬 믿고 딴 길을 찾어보소. 벼랑도 잘 찾어보마 덜 가파른 비탈길이 있을 게고 계곡도 잘 찾어보마 빙 둘러 니리가는 자드락길이 있을 끼래요.

달실 아씨요. 재취 시집을 가느니 지성으로 핵교를 가소. 요새 영주 어드멘가 권학대(勸學隊)라 카는 기 와갖꼬 핵교 댕기라꼬 난리나니더. 재와주고 믝이주고 공책, 연필도 다 거저 준다니더.[…중략…] 아씨는 인자 겨우 열아홉 살 홀몸인데 걸거치는 기 뭐가 있니껴? 공부 열심히 해가 선생도 하고 의사도 하소.”

▲ 진달래 화전 ⓒ 위키백과

화전놀이가 끝나고 여인들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열아홉 달실댁은 ‘죽고 싶은 맘밖에 없던 사람에게 살고 싶은 맘’을 준 덴동어미에게 감사하며 덴동이를 친정 조카같이 생각하고 돌봐주겠다고 약속한다. 말 못 하는 봄이는 손가락으로 달실댁의 손바닥에다 글씨를 써 자기 뜻을 전한다.

 

작품의 에필로그는 30년 후의 ‘화전 회상’이다. 그것은 여인들의 현재의 삶과 이 모든 삶과 사랑의 기록자인 봄이가 쓴 ‘20년 만의 가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이 작품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테마, 공감과 연대의 결과물이다.

 

작품은 진작에 가사로 알려진 덴동어미의 삶을 소설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주변 인물들의 서사를 통하여 우리네 삶의 지혜와 진실을 새롭게 드러낸다. 경북 북부지방 고장 말의 재미를 무심히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따뜻한 불이 지펴지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덴동어미로 표상되는 이 땅의 소박한 삶이 주는 감동 때문인 것이다.

 

작가가 “오늘도 사는 게 힘든 당신, 제 설움에 눈멀어 ‘다른 길’‘다른 풍경’은 통 못 보는 당신”에게 ‘비봉산 화전놀이’에 슬그머니 끼어보라고 말하는 것(‘작가의 말’)도 다르지 않다. 그것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는 우리네 삶의 어떤 부분이 ‘공감과 연대’ 안에서 하나 되고 있음의 소박한 증명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2012. 6. 2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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