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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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㉓ 소한(小寒), 추위보다 미세먼지가 걱정이다 23번째 절기 ‘소한(小寒)’ 1월 6일(2024년도는 5일)은 2019년 들어 처음 맞는 절기, 24절기 가운데 23번째 절기인 소한(小寒)이다. 소한은 이름으로는 ‘작은 추위’지만, 우리나라에선 ‘가장 추운 날’이다. 절기 이름으로 보면 다음 절기인 대한(大寒) 때가 가장 추워야 하지만 실제로는 소한 무렵이 가장 춥다. 이것은 절기가 중국 주나라 때 화북지방의 기후를 잘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놀러온 '대한'이 얼어 죽었다는 '소한' 소한 무렵은 ‘정초 한파’라 불리는 강추위가 물려오는 시기다. 이른바 ‘소한 땜’이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든가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라고 하는 속담이 생긴 이유다. 소한 때면 반드시 추운 법임을 강조하여 “소한 추위는 꾸어서라도.. 2024. 1. 6.
망가져 가는 공영방송 <KBS>, 반복되는 ‘퇴행의 데자뷔’ 과 가 전하는 근황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에 관한 글을 쓸 때만 해도 현 정부가 공영방송의 ‘접수’(?)를 시작하지 않은 때였다. 제아무리 ‘살아 있는 권력’이라고 해도 최소한 절차적 정의를 지켜야 했으니, 정부가 미처 손을 쓰지 못한 상황이었였다. 잔뜩 뿔이 난 정부와 집권당이 이사회를 장악하지 않고도 KBS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방책이 KBS의 안정적 돈줄을 죄어 버리는 ‘수신료’ 분리 징수였으니 권력은 그걸 ‘신의 한수’로 여겼을지 모르겠다. 내가 “‘수신료’ 분리 징수, ‘땡윤 뉴스’를 얻는 대신 ‘공영방송’을 잃는다”라고 쓴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의 꼼수를 따른다고 해서 당장 수신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신료는 시청 여부와는 상관 없이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요금이어.. 2024. 1. 5.
[오늘] 의열단원 김지섭, 일본 궁성에 폭탄을 던지다 [역사 공부 ‘오늘’] 의열단원 김지섭 니주바시(二重橋) 의거 1924년 1월 5일 오후 7시, 김지섭(金祉燮, 1884~1928)은 일본 궁성(宮城)의 다리인 니주바시(二重橋) 부근에서 궁성의 문인 사쿠라다몬(櫻田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가슴에 품고 있는 폭탄의 무게를 가늠해 보면서 자신의 동선을 계산해 보았다. 김원봉의 의열단이 1924년 초 도쿄에서 제국의회가 열려 일본 수상을 비롯한 고위 관료와 조선 총독이 참가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은 1923년 12월이었다. 의열단은 제국의회에 폭탄을 던져 일제의 주구들을 처단하고 일제의 만행을 온 천하에 알리고자 했다. 김지섭, 폭탄을 품고 석탄선을 타다 결사 대원으로 선발된 김지섭은 12월 20일, 상하이 푸둥에 정박 중인 미쓰이(三井) 화물 소속의 .. 2024. 1. 5.
[오늘] 36년간 계속된 야간 통행금지 제도 폐지 [역사 공부 ‘오늘’] 1982년 1월 5일 야간 통행금지 해제 1982년 1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0시부터 전년도 12월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통금해제안’에 따라 36년 4개월 동안 시행되었던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미군정청이 공포한 ‘미군정 포고 1호’에 따라 1945년 9월 8일부터 시행되었던 이 제도는 36년 4개월 만에 그 명운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6년 동안 존속되었던 제도가 폐지된 것은 1981년 바덴바덴에서 결정된 ‘88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야간 통행금지 제도를 유지하면서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치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2024. 1. 5.
[오늘] 압록강 진격 국군과 유엔군, 1·4후퇴로 서울을 다시 내어주다 [역사 공부 ‘오늘’]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공세로 1·4후퇴 시작되다 1951년 1월 4일, 전년도 12월께부터 시작된 중국 인민지원군의 공세로 전선에서 밀리던 국군과 유엔군은 마침내 서울을 내주고 남쪽으로 퇴각했다. 정부는 다시 부산으로 옮겨갔고 1월 14일, 유엔군은 북위 37도 선의 중서부 전선에서 30만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른바 ‘1·4후퇴’가 시작된 것이었다. 일방적인 패퇴 끝에 전세를 뒤집고 압록강까지 진격할 때만 해도 승리는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중공군(관례대로 표기함)의 등장과 함께 승리는 신기루처럼 스러졌고 전황은 불과 서너 달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1·4후퇴, 중공군의 참전으로 뒤집힌 전세 그것은 이 전쟁의 승패가 단순한 전력의 차이나 명분 따위에 .. 2024. 1. 3.
갑진(甲辰) 새해, 다시 ‘청룡(靑龍)’의 해에 2024, 갑진(甲辰)년 새해를 맞으며 더는 해의 ‘간지’를 달력에서 찾기는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1970년대가 그 상한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 시절에 시골에 가면 집집이 간지를 이마에다 커다랗게 써 붙인 한 장짜리 농협 달력이 붙어 있곤 했었다. 지금도 농촌에 가면 그림 없이 커다랗게 날짜를 박고 아래에도 일진까지 인쇄한 달력을 볼 수 있는 이유는 그게 농사를 짓거나 세시를 아는데 쓸모가 있어서다. 간지가 더는 쓰이지 않는 시절에 맞는 갑진년 그런데 요즘 나오는 달력은 탁상형이든, 벽걸이형이든 해의 간지 따위는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신식’ 물건이다. 이제 시골에도 굳이 일진 따위가 인쇄한 달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일까. 하긴 해마다 책력(冊曆)을 사서 보곤 했던 토정비결을.. 2024. 1. 1.
자선의 계절, ‘구세군’과 ‘자선냄비’ 구세군, 전국 353개 지역서 ‘자선냄비’ 모금 날이 갈수록 시간 감각이 굼뜨다. 어느새 12월, 세밑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어저께 시내에 나갔다가 처음 구세군(救世軍) 자선냄비를 보았다. 날씨는 그리 차지 않았는데도 자선냄비 주변은 썰렁해 보였다.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가느라 종종걸음을 했다. 구세군 대한본영에서는 지난 11월 29일 광화문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시종식’을 열고 전국 353개 지역에서 자선냄비 모금을 시작했다. 어느 때부턴가 구세군 자선냄비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 연말 시즌의 상징이 되었는데, 이 땅에서만 그 역사가 82년이다. 내가 구세군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시절이다. 고종사촌 동생과 함께 지내던 대명동의 자췻집에서 꽤 긴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높다란 축대 위에 외벽에 콜타르를 .. 2023. 12. 31.
세밑, ‘빈자일등(貧者一燈)’을 생각한다 낮은 사람들이 이웃에 내미는 따뜻한 손 불교 문학을 대표하는 3대 비유경(譬喩經) 가운데 거룩한 현자와 어리석은 범부를 대비하여 현명함과 어리석음에 대한 교훈을 일깨우는 〈현우경(賢愚經)〉이 있다. 타인을 위한 가난한 여인의 보시(布施)를 다룬 ‘빈자일등(貧者一燈)’은 거기 실린 이야기다. ‘빈자일등(貧者一燈)’, 에 실린 이야기 가난한 여인 ‘난타’는 석가세존이 온다는 소식에 구걸해 얻은 돈 두 닢으로 기름을 사서 등불 하나를 밝힌다. 밤이 지나 다른 등불은 모두 꺼졌으나 그 등불만은 홀로 타고 있었다. 이에 목련존자가 그 불을 끄려 하였으나, 불꽃은 흔들리지도 않았다. 이에 석가세존은 “일체중생을 모두 건지려는 큰마음을 낸 사람이 보시한 것”이므로 끌 수 없으리라고 하였다. 불교를 떠나도 이 이야기는.. 2023. 12. 29.
[오늘] 미 육군, 운디드니에서 북미 원주민 300여 명 학살하다 [역사 공부 ‘오늘’] 1890년 12월 29일-미 육군, 운디드니에서 북미 인디언 300여 명 학살 1890년 12월 29일, 미 육군 제7기병연대 병사 500여 명은 운디드니(Wounded Knee: 상처 입은 무릎) 내와 그 주변 언덕에서 북아메리카 수족(Sioux) 원주민 300여 명을 학살했다. 기관총까지 동원한 이 학살로 인디언 전사, 노인,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포함된 350명의 수족 가운데 300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그것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멸망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끔찍한 비극이었다. 미합중국의 ‘서부 개척사’는 백인들에겐 ‘프런티어(Forontior)’ 정신의 발현으로 이룬 위대한 성취였지만, 인디언에게는 ‘땅과 목숨을 빼앗아가는 파괴적이고 탐욕적인 정신’( 옮긴 이 후기)이었.. 2023. 12. 29.
[순국] 의열단원 나석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자결하다 1926년 12월 28일, 나석주 의사 동척에 투탄, 자결 1926년 오늘, 이틀 전 중국에서 인천항으로 귀국한 의열단원 나석주(羅錫疇, 1892~1926)는 찬바람이부는 경성 거리, 조선식산은행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신문지를 싼 폭탄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고 주머니 속에 권총을 숨기고 있었다. 조선식산은행은 조선총독부의 산업 정책을 금융 측면에서 뒷받침했던 핵심 기관으로 일본제국의 식민지 경제 지배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중요한 축이었다. 식산은행은 채권으로 확보한 일본 측 자본을 조선의 산업 기관과 개인에게 빌려주고, 그로부터 회수한 원금과 이자를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금융기관이었다. 수탈기관 동척에 폭탄을 던지다 식산은행의 창구는 연말이라 일본인 고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는 신문지를 벗기고 안전.. 2023. 12. 28.
한동훈의 ‘길’과 루쉰(魯迅)의 ‘길’, 혹은 ‘희망’ 루쉰의 아포리즘 ‘길’과 한동훈의 ‘선택’ 사이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같이 가면 길이 되는 것이다. 진짜 위기는 경험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과도하게 계산하고 몸을 사릴 때 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본다.” 한동훈 전 장관의 ‘루쉰’ 인용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지명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다. 낯익은 내용이라고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중국 작가 루쉰(魯迅, 1881~1936)이 쓴 글을 원용한 것이다. 본인이 찾았건, 주변의 도움을 받았건 간에 그건 아마도 준비한 메시지일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지난 토요일판 의 성한용 선임기자가 쓴, 한 전 장관의 인용이 맥락을 잘못 짚은 것이라.. 2023. 12. 27.
[오늘] 의열단원 최수봉,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20년 12월 27일, 최수봉 의사, 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1920년 12월 27일 오전 9시 30분께 밀양경찰서장 와타나베 스에지로(渡邊末次郞)는 직원 19명을 서내 사무실에 모아놓고 훈시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 남쪽 유리창이 깨어지면서 폭탄 하나가 날아와 조선인 순사부장 쿠스노키 게이고(楠慶吾)의 오른쪽 팔에 맞아 굴러떨어졌다. 폭탄은 터지지 않았지만,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또 한 발의 폭탄이 경찰서 현관에서 터지면서 현관문과 마루, 벽 일부와 서류함이 파손되었다. 일경들은 폭탄을 던지고 달아나는 청년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밀양경찰서를 폭탄 공격한 청년 최수봉 청년은 추격하는 일경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인근의 민가로 들어가 품속의 단도로 복부를 그었다. 칼은.. 2023.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