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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

용산참사, 기억의 투쟁

by 낮달2018 2024.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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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 7주기, 기억의 투쟁

▲ 용산참사는 철거민들이 망루를 채 다 짓기도 전에 경찰이 특공대 를 투입하여 진압하면서 인명이 희생되었다.
▲ 시사만화가들의 만화로 구성된 <기억하라>에 수록된 만평.
▲ 기억하라(헤르츠나인, 2012)

용산참사 유족들이 참사 당시 경찰 책임자였던 현재 경주 국회의원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살인 진압 책임자’라며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내일(20일)이 참사 7주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간 거의 잊고 있었던 그날을 떠올리며 이른바 나는 ‘기억의 투쟁’을 생각한다. 물리적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지만, 시간의 경과는 문제의 해결을 담보해 주는 대신 사람들의 기억에서 그 고통과 진실을 바래게 한다. 하여, 기억의 투쟁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진실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싸움이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잊어버리라고 권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권한다. 기억한다고 해서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며 잊어버리고 한다. 희미해지는 기억만큼 그 죄의 무게와 책임은 가벼워진다. 그 진실과 본질은 바래가고 사람들은 잊을 때가 되었다고,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며 그 망각을 추인하는 것이다.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을 거스르는 기억의 투쟁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을 거스르는 기억의 투쟁”이라고 규정한 이는 작가 밀란 쿤데라다. 망각을 강요하는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이들의 기억이야말로 그들의 무기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살아가는 게 바빠서, 자기 앞을 추스르느라 시나브로 그 고통과 진실의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의 기억도 어느덧 희미해져 가고 있는데 용산참사는 그보다 5년 전인 2009년에 빚어진 비극이다. 나는 서가에서 시사만화가들의 만화로 엮은 ‘MB 4년의 현대사’ <기억하라>(2012)를 꺼내든다.

 

한국 시사만화를 대표하는 작가 손문상, 장봉군, 김용민, 권범철이 엮은 이 책은 “2012년 희망의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보다 많은 독자들이 지난 4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작가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철거 투쟁을 벌이던 철거민 다섯 명이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 작전에 희생됐다. 경찰은 사고 경위를 숨기려 했고 서둘러 조사를 마쳤다.”

 

- <기억하라> 132쪽 중에서

 

‘빅이슈 브리핑’의 첫 장도 ‘용산 참사, 눈물의 남일당’이다.

 

집 한 칸 없다면, 당신은 ‘테러범’이 될 가능성이 크다. (……) 인생을 건너가는 다리가 우리 사회에선 외줄이기 때문이다. (……) 다행히 한 손으로 외줄을 잡아채 발버둥을 치면, 테러범이 된다. 당신이 떨어지지 않게 손을 내밀어 주는 3자도 테러범이 된다.”

 

-<기억하라> 158쪽 중에서

 

이웃 다섯의 목숨과 경찰 1명의 생명이 사라진 이 참사는 “한파 몰아치는 ‘석기시대’를 연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작품이었다.”라고 책은 기록하고 있다. ‘대테러 작전이 무색할 정도의 진압’으로 여섯 명이 희생된 이 사고에 대한 책임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올라갔던 철거민들에게만 지워졌다.

 

책임은 철거민들에게 지워졌다

 

구속된 철거민들이 4~5년의 징역을 사는 동안 참사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김석기는 2011년 주일 오사카 총영사를 거쳐 2013년에는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역임하는 등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요직을 역임했다.

 

진압 과정에서의 사고로 6명의 인명이 희생되었으니 이 참사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라도 진압 책임자가 지는 게 옳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법, 혹은 권력은 그런 상식과 국민의 법 감정과는 무관하다. 일시적으로 자리를 내놓긴 했지만 이후 그는 권력에 잊히지 않고 권력의 부름을 받았던 것이다.

▲ 유족회와 추모위원회에서 경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지난해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농민 백남기 씨는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러나 사고가 난 지 두 달이 넘도록 아무도 이에 사과하지도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그게 이 나라가 정부에 저항하는 국민, 정치적 반대자들을 대응하는 방식인가.

 

그래서다. 권력과 맞서 진실을 지키고 그것을 밝히는 사람들에게 기억의 투쟁이 소중한 무기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억압과 압제에 맞서는 자유는 숱한 사람들의 기억의 투쟁 속에서 연면히 이어지고 지켜지는 것이라고 확인하면서도 정작 그것만으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은 씁쓸하고도 아프다.

 

 

2016. 1. 19. 낮달

 

[용산참사 관련 글]

· 우리 시대의 부음, 떠도는 죽음들(2009)

· 누가 저들의 이웃입니까?”(2009)

· 180, ‘나라국민버린 시간(2009)

· 우리 모두가 상복을 입어야 한다(2010)


 

10년…, 여전히 철거민 폭력 퇴거는 끝나지 않았다

▲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2012) 스틸

7주기로부터 3년, 20일에 용산 유족들은 10주기를 맞는다. 고작 3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그간 세상은 적지 않게 변했다. 들불처럼 일어난 촛불혁명으로 박근혜는 탄핵당했고, 정권 교체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2017년 12월, 용산참사 철거민 중 현재 다른 범죄로 재판을 받는 1명을 제외한 25명이 특별사면되었다.

 

2016년 총선에서 참사 책임자를 경북 경주의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공천한 박근혜는 탄핵으로 쫓겨나 ‘전 대통령’이 되었고, 지금 국정농단 혐의로 재판을 받으며 감옥에 있다. 김석기는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용산참사의 실질적 책임을 져야 할 전 대통령 이명박은 퇴임 5년 만에 감옥으로 갔다.

 

지난 이태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대의 온갖 적폐들이 드러나면서 용산참사 관련 여론조작도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해 9월,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당시 경찰청 수사국 등이 사이버 요원 900명을 동원해 ‘댓글 공작’과 ‘인터넷 여론조사’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아 범국민 추모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벌써 10주기를 맞지만, 아직도 용산참사는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현재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용산참사에 관한 검찰의 수사와 공소 유지가 적절했는지 조사하고 있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용산참사에 대한 진상 조사가 중단된 건 관계자들이 조사에 불응하고, 검찰들이 조사관에게 상당한 압력을 행사하며 고소, 고발까지 거론하다 보니 조사관이 조사 활동을 못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조사관 2명이 사퇴하고, 2명은 출근을 하지 않고 있어 용산참사 관련 조사팀이 거의 해체 지경에 이르렀다. (…) 이런 지경에서 3개월 조사 기간 연장돼도 조사 제대로 될 수가 없다”

 

-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소장), 용산참사 10주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지난 15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범국민 추모위원회 주최 ‘용산참사 10주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강제퇴거 전면금지를 위한 제도개선을 요구한다’에서 분출된 퇴거 피해 사례는 참사 10년을 맞는 2019년 현재에도 “철거민 폭력 퇴거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아프게 확인할 수밖에 없다.

 

이날 증언대회에 참가한 청량리 철거 지역, 노량진 수산시장, 노원구 월계2 인덕마을 등과 궁중족발 등 상가에서 강제 퇴거당한 피해자와 세입자들은 “용산참사 이후에도 국가 권력이나 자본 권력에 의해서 강제 집행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용산참사 10주기를 맞는 2019년, 우리는 언제쯤 국가 권력과 자본에 의해서 야만적 강제퇴거가 집행되는 현실을 넘어갈 수 있을까. 무분별한 재개발 정책으로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이 천박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영화 <두 개의 문>(2012)와 <공동정범>(2018).

 

2019. 1. 18.


참사 15주기, 2024

▲&nbsp; 추모위원회가 18일 대통령실 앞에서 연 용산참사 15주기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용산참사 15주기다. 참사가 있은 지 15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거의 없다. 참사 책임자 처벌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무분별한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참사 15주기를 맞아 유가족·생존자와 시민단체들이 참사 책임자 처벌과 무분별한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중단을 요구한 이유다.

 

참사 당시 참사의 책임자로 처벌을 받아야 했던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2016년 20대 총선에서 금배지(상주)를 달았고, 2020년 총선에선 경주에서 재선했다. 참사 유가족·생존자와 시민단체들이 김석기 의원은 21대 총선 공천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참사의 진압 책임자로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진 책임을 져야 할 김석기 의원은 국민의힘 최고위원이던 지난해 11월 최고위원회의에서 “용산참사는 전문 시위꾼의 도심 테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용산참사 15주기 추모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규제를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1.10.)라는 발언을 두고 “이 정권이 개발이 부른 참사에 대해 아무런 성찰이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라고 지적했다.

 

추모위는 15주기인 오는 20일 오전 11시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추모제를 연다고 한다. [관련 기사 : 어느덧 15주기용산참사 이후, 그들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유]

 

2024.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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