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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행복한 눈물’이 당신들의 ‘힘’이다

by 낮달2018 2020.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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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KBS)의 파업에 부쳐

▲ 새내기 아나운서의 눈물. 그것은 '행복한 눈물'이었다. ⓒ <미디어오늘> 이치열

KBS 새 노조(언론노조 KBS본부)의 파업이 그들 현업 방송인(언론인)들의 ‘존재 증명’이라는 글을 쓴 것은 지난 7월 19일이다. 시청자(요즘은 KBS를 거의 보지 않고 있긴 하지만)라는 걸 빼면 방송과는 아주 무관하면서도 굳이 글을 쓴 것은 물론 ‘공정방송 회복’에 대한 동의뿐 아니라, 파업을 선택한 언론노동자들에게 짙은 동질감과 연대 의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KBS 언론노동자들이 흘린 ‘행복한 눈물’

 

나는 그들 방송노동자가 감행한 파업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라고 썼다. 그리고 ‘때로 이상을 지키거나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이기는 싸움뿐 아니라 이길 수 없는 싸움도 피하지 못한다’라고도 썼다. 신영복 선생의 어법으로 표현하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피하는 것은 지혜일 수 있지만 이길 수 없는 싸움도 피하지 않는 것은 용기’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지난 29일에 노조는 사측과 ‘공정방송위 설치를 포함한 단체협약 체결에 성실히 노력’한다는 데 잠정 합의하면서 파업 잠정중단을 선언했다. 이 집회에서 KBS의 조합원들은 눈물보가 터졌다고 했다. 지난 2년간 ‘정말 쪽팔렸다’라며 흘린 이들의 눈물의 의미를 나는 대충 이해할 듯도 하다.

 

‘쪽팔렸다’라는 속어 속에 담긴 그들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유식한 말로 하면 ‘수오지심(羞惡之心)’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부당한 힘 앞에서의 무력’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국민의 방송’에서 단박에 ‘권력의 방송’으로 간단하게 탈바꿈한 조직 앞에서 느끼는 조직 구성원들의 부끄러움은 그걸 쉽게 되돌릴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KBS가 공정하고 독립된 방송이 돼야 한다고 여기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시청자와 동료, 나아가 나 자신에게 그동안 너무 미안했다.”

 

“처음부터 시작도 힘들었는데 이렇게 많은 동료와 함께 끝까지 같이 왔다는 생각에 든든했다. 이번 파업을 통해 강해진 것 같다. 힘을 얻었고, 옳은 결정을 한 것이라 판단한다.”

 

“이렇게 반가운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가 다시 헤어지게 돼 눈물이 난다.”

 

“ 30일간 동료와 함께했다는 감격과 행복,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우리가 완벽한 승리라 말씀 못 드리는 아쉬움의 눈물……, 앞으로 진정한 KBS를 만드는 데 기반이 될 행복한 눈물이다.”

     - 이상 <미디어오늘> 기사(☞ 바로 가기)에서 인용]

 

조합원들이 밝힌 ‘눈물의 변’에서 드러난 핵심 코드는 ‘동료애’와 ‘자신감’인 듯싶다. 소수 노조의 구성원으로서 파업에 참여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 달 가까운 시간(29일) 동안 그들을 버티게 한 것은 자기 선택에 대한 확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확신은 동료들과 함께하면서 배가되고 단단해졌으리라.

 

프로그램 진행에서 하차하게 된 ‘조합원’들

 

선배 아나운서를 껴안고 오열하는 새내기 아나운서의 눈물 젖은 얼굴을 아름답게 여긴 것은 그런 뜻에서다. 자기 확신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고 주어지는 삶의 무게를 넉넉히 견디게 만든다. 노조 간부 등 활동가뿐 아니라 파업 투쟁에 함께 한 조합원들은 자기 삶과 직분에 대한 정체성을 새롭게 벼렸을 터이다.

 

‘작은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자기 확신이고 정체성(Identity)의 확인일지도 모른다. 파업 중단 이후 주요 뉴스·스포츠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아나운서와 기자의 복귀를 불허한 사측의 조치는 이후 노조의 앞길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 KBS 2TV <뉴스타임>의 이수정 기자 ⓒ KBS TV 캡처
▲ KBS 1TV <비바 K 리그>의 이재후 아나운서 ⓒ KBS TV 캡처

사측은 주말 KBS 1TV <뉴스9>의 김윤지 아나운서와 2TV <뉴스타임>의 이수정 기자, 그리고 <비바K리그>의 이재후 아나운서 등 3명을 프로그램 진행에서 배제했다고 한다. 노조가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노사합의서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한 치졸한 보복행위’라며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합리적이고 믿을 수 있는 사용자만 있다면 노조 운동은 땅 짚고 헤엄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용자란 원래 그리 믿을 수 있는 상대가 못 되지 않은가. 더구나 KBS의 ‘공정방송 회복’을 주장하고 나선 노조에 맞서 그들만의 ‘공정방송’을 지킴으로서 정권의 ‘언론 장악’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사측임에랴!

 

함께 흘린 ‘행복한 눈물’, 그것이 당신들의 힘이다

 

▲ KBS 노조의 트위터 ⓒ 언론노조 KBS 본부 누리집

이번 파업은 내게는 지난 2년 동안의 궤도이탈에 대한 KBS 언론노동자들의 국민에 대한 ‘진사(陳謝)’이면서 동시에 더는 그 이탈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지의 천명으로 읽힌다.

 

글쎄, 시청자들이 이 저간의 사정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난 29일간의 파업을 통해 보여준 ‘국민의 방송 KBS’를 되찾기 위한 언론노동자들의 소망은 한국방송을 눈여겨 바라보는 국민에게 쉬 잊히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방송 복귀부터 몰아쳐 오는 부당 노동행위의 파고 앞에서 더욱더 굳건해지는 KBS 언론노동자들의 건투를 빈다. 프로그램에서 배제된 세 사람의 조합원들은 물론이거니와 KBS 노조의 모든 구성원에게 나는 ‘잊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방송을 진행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존재감을 떠올리는 시청자들의 지지와 연대가 함께 함을 말이다. 파업을 끝내는 날, 조합원이라는 이름으로 손을 맞잡고 흘린 눈물이 그들의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사실도.

▲ KBS총파업 29일의 기록

 

2010. 8.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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