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나들이] ⑩ 대구미술관 해외교류전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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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한때 서울, 부산에 이은 세 번째 도시로 알려졌지만, 대구는 이미 인구 순위에서 인천에 3위를 내주었다. 2021년 6월 기준으로 인천은 290만을 넘겼지만, 대구는 230만 대에 그친 것이다. 좀 묵은 통계이긴 하지만, 2018년 기준으로 대구의 문화기반시설은 모두 74개로 서울 등 7대 도시의 4번째, 전국 13위의 최하위 수준이었다. [관련 기사 : (사설) 전국 최하위에다 구·군별 격차마저 심한 대구 문화시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1980년대만 해도 대구의 이른바 ‘문화 수준’은 하위권이라는 얘기가 자자했다. 대구에는 예술영화를 개봉해도 반응이 제일 미적지근한 곳이라거나 진보적 문화가 발을 못 붙인다는 둥 다분히 자조적인 평가가 적지 않았었다. 그건 박정희 독재 이후, ‘만년 여당 도시’라거나 ‘보수 정당의 아성’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이어진 탓일 수도 있었지만.
설날 다음 날 오후에 아이들이 대구미술관에서 하는 렘브란트 전시회를 다녀오자고 해서 집을 나섰다. 가까이 살아도 무심하기만 했는데, 아이들은 그런 전시회도 제대로 챙기고 있는 걸까, 3년 전 5월에 포항시립미술관도 그래서 다녀왔었다. [관련 글 : 주말 나들이, 시립미술관과 바닷가 카페]
2011년에 개관한 시립 대구미술관
무심히 따라나서긴 했는데, 대구미술관이란 이름이 생소했다. 나는 그걸 대구문화예술회관쯤으로 이해했었나 보다. 동대구 인터체인지로 나와 미술관 주차장에 차를 댔을 때야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대구의 문화시설 중에서 ‘대구미술관’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미술관이 있는 동네는 수성구 삼덕동이었다. 삼덕동? 나는 경북대 의대와 경북대 병원이 있는 중구 삼덕동을 떠올리고 머리를 갸웃했다. 확인해 보니 중구 삼덕동과 다른 수성구 삼덕동이 따로 있다. 미술관이 있는 동네가 삼덕마을이었던 경산군 고산면 삼덕동이 1981년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수성구로 편입된 것이다.
확인해 보니 대구미술관은 대구광역시에서 2011년에 개관한 시립미술관이다. 나는 1984년에 대구를 떠난 뒤, 도내를 떠돌며 살았으니 내가 몰랐던 게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2017년 처음으로 국립대구박물관에 들러서야 박물관이 1994년에 문을 열었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관련 글 : 1994년에 연 국립대구박물관, 20년이 지나서 처음 들렀다]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라면 미술 문외한도 이름쯤은 귀에 익힌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다. ‘빛의 화가’라고도 불리는 그는 일반적으로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히고 그가 그린 동시대의 초상화, 자화상, 성경 장면의 삽화는 그의 가장 위대한 창조적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전시 이름이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여서 나는 맹추처럼 렘브란트가 사진도 찍었냐고 물었다. (사진을 발명한 것은 200년 뒤인 19세기 후반이다) 아들애가 당대를 사진처럼 정교하게 묘사했다는 뜻인 듯하다고 해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렘브란트는 “미술사가들로부터 ‘렘브란트 이후 판화의 역사가 다시 쓰였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판화, 특히 동판화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독보적인 판화가”(미술관 작가 해설, 이하 인용 같음)였다. 이번 전시는 “대구미술관과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순회재단(Stichting Rembrandt op Reis), 벨기에의 판화 전문 미술관 뮤지엄 드 리드(Museum de Reede)가 협력해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다.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점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
렘브란트는 자화상과 초상화로 대표되는 유화뿐 아니라 에칭(etching)과 드라이포인트(drypoint) 기법을 활용한 판화를 평생 300여 점 남겼다. 긴 렘브란트의 판화가로서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그는 사진이 발명되기 2세기 전, 마치 카메라의 렌즈와도 같은 시선으로 17세기의 세상과 당시의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작품에 담아냈다.
· 에칭(Etching):
산(酸)의 부식작용을 이용하는 기법으로 금속판에 산(酸)의 화학 작용을 방지하는 '에칭 그라운드'를 입히고 바늘을 이용하여 형태를 새겨 금속판이 노출된 형태로 만든 후 희석된 산(酸)에 담가 노출된 부분을 부식시켜 금속판에 형태가 새겨지도록 하는 판화의 한 기법.
· 드라이포인트(drypoint) :
비닐판이나 금속판 따위에 끝이 뾰족한 철필, 바늘로 직접 긁어 그림을 파서 판을 만드는 판화. 판의 표면을 긁어서 패인 홈에 잉크를 스며들게 하고, 그 위에 종이를 얹어 프레스기를 사용해서 판화를 찍어낸다.
처음 찾은 대구미술관은 지상 3층, 지하 1층의 공간에 5곳의 전시실, 어미홀, 강당, 교육시설 등을 갖추고 있었는데, 특유의 높다란 천장과 개방적인 벽 등으로 관람객을 압도했다. 렘브란트 전은 1층 제1전시실에서 동판화 120점을 ▲ 자화상 ▲ 거리의 사람들 ▲ 성경 속 이야기 ▲ 장면들, 누드 ▲ 풍경 ▲습작, 앨범 ▲ 인물, 초상 등 7개의 범주로 나눠 소개하고 있었다.
120점이라면 적지 않은 작품이지만,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기법으로 제작한 판화는 모두 소형이다. 높다란 천장 아래 구획한 벽에 걸린 작품들은 작은 것은 5cm 내외, 제일 큰 것도 30cm 안팎이니 잔뜩 기대하고 온 관람객들의 마음에 차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시실은 명절을 쇠면서 가족 단위로 온 관람객으로 꽉 찼다. 전시실 앞에 선 관람객의 줄은 계속 이어졌다. 대구 시민들, 많이 왔네. 이제 문화를 즐길 때도 된 건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명절이라 입장료는 무료라고는 하지만, 유료일 때도 1,000원밖에 받지 않으니, 시립미술관 노릇을 제대로 하는 셈이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미술에 대한 이해가 워낙 얕으니 그저 ‘구경’ 수준을 넘지 못한다. 관람객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일 듯했다. 주마간산 격이지만, 어쨌든 17세기 화가가 판화로 제시한 당대의 삶과 인물을 들여다본 것으로 시골에서 온 이들은 만족스럽게 여길 일이었다.
감도를 잔뜩 높여 찍은 전시 작품 사진이 있지만, 미술관 누리집(https://daeguartmuseum.or.kr/)에 게시된 이미지를 내려받았다. 실제 작품보다 훨씬 큰 이미지로 도상 관람을 해 보시기 바란다.
전시회는 3월 17일(일요일)까지 계속된다.
2024. 2.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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