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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시골 ‘이발 요금’은 왜 도시보다 더 비쌀까

by 낮달2018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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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이발비 15,000원 유감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한때는 아내가 머리를 잘라 주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수염이나 손발톱은 집에서 처리해도 머리는 이발소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가끔 머리카락이나 손·발톱은 노화와 무관하게 자라는가 보다 싶을 때가 있다. 머리는 3주쯤 지나면, 손·발톱은 그보다 더 짧은 주기로 깎아주어야 해서다. 수염은 젊을 때보다 더 왕성하게 자란다. 군대 있을 때는 이발할 때 외에 수염을 깎아 본 기억이 없고, 제대하고 나서야 전기면도기를 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다행히 전기면도기로 다스려도 될 만큼이어서 면도날을 쓸 일은 따로 없었다. 그러나 노년에 접어들면서 이틀에 한 번 깎는 거로도 감당이 안 되는 이유는 양도 많아졌지만, 하얗게 센 놈을 그냥 두면 갑자기 수년은 더 늙어 보이기 때문이다. 집 밖 나들이가 있으면, 수염부터 밀기 시작하게 된 것은 그래서다. 그러나 수염은 집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더 성가실 일은 없다.

 

어쨌든 머리는 이발소에 가야 한다

▲ 어느 시골 이발소 앞 입간판. ⓒ 저작권위원회 공유마

문제는 머리다. 초임 시절에는 아내가 가위로 듬성듬성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지만, 그것도 머리를 장발로 기를 때 얘기다. 이제는 3주차가 가까워지면 이발하러 갈 날짜를 받아 놓는 게 습관이 되었다. 머리는 한때는 미장원을 찾기도 했지만, 주로 나는 이발소를 이용했다. 

 

구미에 옮아오면서 주변에 이발소가 보이지 않아서 동네 미용실을 이용했다. 한 반년 남짓 미용실을 드나들었는데, 어느 날 미용사가 너무 수다스러워 불편해졌고, 아내가 머리가 좀 아니라고 해서 두어 블록 떨어진 동네 뒷골목의 이발소를 발견하고 그리로 옮겼다. 60대 이발사는 과묵한 데다가 머리 깎는 솜씨도 있는 듯해서 한 반년쯤 거기를 드나들었다. [관련 글 : .이발소로의 귀환]

 

이발소는 다 좋았는데, 이발사 동무들이 모이는 뒷방이 되면서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선 갈 때마다 <TV조선> 등 종편의 편파방송이 시끄러웠고, 거기에 이 극우파 노인들의 뒷담화를 꼼짝 없이 소화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옮긴 학교 앞에 있는 이발소로 옮긴 건 결국 극우파 노인들과 종편 시사 프로그램 탓이었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그런데 종편과 관련된 이발소 풍경은 다른 지역에서도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인근 군위의 친구는 ‘종편과 그 종편 듣는 인간들 싫어서’ 일부러 옆 동네 이발소로 옮겼는데, 상황은 거기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저보다 대여섯 살쯤 더 되어 보이는 이가 텔레비전에 ‘그 여자’가 나오니 하는 말이 “우리 대통령, 어찌 그리 말을 잘할꼬. 써온 것도 안 보고 참, 말 잘하네…….”였다니 말이다. [관련 글 : 이발소와 종편 채널, 그리고 박근혜]

 

학교 앞 이발소 이발사는 50대의 좀 젊은 친구였고, 이발 솜씨도 좋았다. 그는 우리 동네 이발소와 달리 드라마나 보도 채널만 틀어놓을 뿐, 종편 방송을 트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거기서 머리를 깎아 온 세월이 10년이 훌쩍 지났다. 그 역시 보수 정당 지지자이긴 했지만, 굳이 그와 시사 문제로 다툴 일은 없었고 그는 한결같이 내 머리를 만져주었다.

 

나는 1만 원으로 깎는데 의성·군위는 1만 5천 원이라고?

 

글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기선 이발비로 1만 원을 받는다. 나는 이발사가 건물주여서 따로 가게 임대료 부담이 없을 터이니 그리 받아도 되긴 하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우리 동네 외곽에도 두어 곳에 이발소가 있어 물어보니 대체로 1만 5천 원을 받고 있었다.

 

주변 시군에 사는 벗들과 통화하다가 이발비가 어떤지를 물어보았다. 의성 탑리에 사는 벗은 “11년 전 8천 원에서 지금은 1만 5천 원 균일, 작은 동네인데 아직 대여섯 곳 버티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1만 5천 원, 그것도 대여섯 곳이 모두? 나는 머리를 갸웃했다. 시골의 물가가 도시보다 더 높다는 게 얼른 와 닿지 않았다.

 

벗의 아흔이 넘은 부친은 지금도 40년째 중앙로 단골 이발소를 찾는데 거긴 ‘아직도 5천 원’이라고 했다. 맞다, 도시 지역의 특정 동네에서는 그런 실비로 머리를 깎아주는 데가 적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런 가게는 ‘인간극장’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더러 나오지 않는가.

▲ 이발소 풍경은 대부분 거기가 거기다. ⓒ 김포마루(김포시청)

인터넷으로 찾아본, 이른바 ‘바버샵’으로 불리는 서울의 고급 이발소는 시설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커트 가격’이라는 이발비는 가장 싼 데가 3만 원, 가장 비싼 곳은 7만 7천 원이었다. 요금이 시골보다 2~5배가 되는 업소도 있는데, 1만 5천 원이 비싸다는 푸념이 민망해지긴 했지만, 저마다 사는 삶의 모습은 다른 것이다.

 

나는 탑리(행정구역은 금성면 탑리리)에 이발소가 대여섯 군데 있는 것도, 거기서 마치 협정가격처럼 1만 5천 원을 받는다는 게 의아했다. 도시에 비기면 시골이 뭐라도 조금은 싸다는 건 내 고정관념에 불과한 것일까.

 

그래서 몇 군데 벗들에게 물어보았다. 군위의 친구(옆 동네로 이발하러 간다는)는 지금도 50리 너머 이웃 동네로 가서 이발하는데, 거기선 1만 3천~4천 원쯤 받는다고 했다. 군위는 어떤가 싶어 다른 친구에게 물었더니 역시 평균은 1만 5천 원, 자기는 1만 원에 한다고 했다.

 

그는 이발소가 있는데, 연세 많은 어르신이 손을 떨면서 이발하는데 값도 싸지 않아서 미용실에 간다고 했다. 미용실은 평균 1만 5천 원인데, 머리를 안 감으면 5천 원을 할인해 주는곳이라고 했다. 나도 안동에 살 때, 머리를 감지 않고 오기도 했었다.

 

구미 외곽, 그러니까 행정구역으로는 고아읍 원호리에 사는 후배에게 물어보니, 그는 동네에 이발소가 없어 미용실에서 깎는데, 1만 2천 원쯤 주는 거 같다고 했다(같다고 하는 건 카드 결제를 하니 정확한 가격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대구 외곽에 사는 벗은 동네에 이발소가 잘 없어서 미용실 이용하는데, 요금은 8천~1만 5천 원 사인데, 본인은 만 원을 준다고 했다.

 

안동의 선배에게 물었더니, 시내에 8천 원짜리 이발소에 다닌다고 했다. 그전에는 중학교 구내 이발소에 다녔는데, 그 집이 문을 닫아서 옮긴 데란다. 왜 시골이 이발비가 더 비싸냐고 했더니, 엉뚱하게 서울 동묘 근처에 가면 싼 이발소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 동묘든, 탑골공원이든, 경동시장이든 노인들이 많이 모여드는 지역에는 그들을 단골 손님으로 여기는 실비의 이발소가 숱한 것이다. 단골들이 장사를 이어가게 도와주는 전형적인 가게가 이발소다. 이발은 낯선 곳이 아니라 익숙한 동네로 가서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까닭이다.

 

왜 시골 이발비가 도시보다 더 비싼가

▲ 유년 시절에 이용하던 시골 이발소에서 60년이 흘렀어도 이발소 풍경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시골 이발비가 더 비싼 까닭은 나는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이용하는 사람이 제한적이니까 비싸진 거라는, 이를테면 시장의 원리를 까닭으로 제시한 친구가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고객이 한정적이라면 그들을 두고 다투는 업소에서 오히려 가격을 낮추어서 그들을 끌어들이려 하지 않을까.

 

탑리 같은 시골이라면 이발소는 대부분 임대가 아닌 자가에서 운영할 터이니, 1만 원을 받아도 무리가 없을 듯한데 왜 요금은 도시보다 비싼가. 만 원을 받아도 충분히 운영될 만큼 고객이 있는 도시 지역에 비겨 시골에서는 한정된 고객에게서 올릴 수 있는 수익도 한정되기 때문일까. ‘담합’은 위법이니 이심전심으로 가격이 정해진 걸까.

 

한 친구는 이발이 자기 동네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발소에서는 운영상 요금 인상이 불가피했고, 이용자들은 또 단골로 다니던 이발소를 두고 다른 지역으로 가 이발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게 일견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시골의 비싼 이발비를 설명할 수 있을까.

 

글쎄, 요즘 젊은 세대들이 다니는 대도시의 이른바 ‘바버샵’은 어떤지 몰라도, 이발소의 풍경은 내가 처음 머리를 깎던 이발소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벽면 거울을 향해 놓인 2~3개의 이발 의자, 그리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 조그마한 물뿌리개를 이용하여 머리를 감아주는 개수대 따위의 기본 풍경은 변함 없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리깡’으로 불리던 수동 이발기가 전기이발기로 바뀌고, 선풍기가 에어컨으로 바뀌고 구공탄 난로 대신 온풍기가 도는 것 등이다. 아, 개수대에는 난로 위에 항상 올려져 있던 찜통의 물을 떠 옮기던 물뿌리개 대신 순간온수기가 온수를 공급한다.

 

이발사들이 능숙하게 난로의 함석 연통에 거품 솔을 문질러 만들던 면도액은 면도 크림이 대신하고, 면도칼을 문질러 날을 벼르던 가죽띠도 요즘은 보이지 않는다. 양은 주전자에 담긴 보리차 대신 정수기가 있고, 머리를 말려주는 최신식의 헤어드라이어도 제 몫을 한다.

 

요즘 이발소에는 젊은이들은 물론, 아이들도 다니지 않으니, 중장년, 노년의 남자들이 주 고객이다. 중장년 가운데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미용실을 이용하니, 노인들이 최대 고객이라고 보는 게 맞다.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바버샵과 달리 오래된 동네 이발소는 어쩌면 쇠락해 가는 우리 사회의 초상, 그 쓸쓸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월요일은 내가 이용하는 문화이용소의 휴업일이다. 내일모레 화요일 오전이나 오후에 머리를 깎으러 이발소에 들러야 한다. 2월 6일에 이발하고 꼭 3주 만이다. 남자 머리는 역시 이발소에서 깎는 게 맞다. 듬성듬성 머리를 치는 미용실의 그것과 비길 수 없다. 그게 낡고 허전한 풍경의 이발소를 다시 찾는 이유다.

 

 

2024. 2.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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