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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나들이, 시립미술관과 바닷가 카페

by 낮달2018 2021.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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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나들이 - 포항시립미술관과 동해 바닷가 카페

▲ 전시회 팸플릿. 그림은 배운성의  ‘대가족 ’(1930~1935)'이다.

지난 주말은 황사와 미세먼지가 최악이었다. 그 전전날, 어버이날이라고 집에 온 아들이 제 누나와 의논하더니 8일에는 포항에 다녀오자고 했다. 포항 시립미술관 전시도 보고, 죽도시장에 가서 회도 먹고 오자는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전시 관람을 1시간에 40명으로 제한하고 있었는데, 사전 예약을 해놨다고 했다.

 

안동에 살 때 가족여행 삼아 해마다 영월의 동강국제사진제를 찾았었다. 아이들이 전시회를 즐겨 찾게 된 것은 그 이후부터인 듯하다. 그쪽에 남다른 소양이 있는 건 아닌데, 사진과 그림을 가리지 않는다. 요즘 전시회는 적지 않은 입장료를 받기도 한다. 나는 입장료를 내는 전시회에는 간 기억이 없는데, 아이들은 그 정도는 치러야 할 비용으로 여기는 것 같다. 아이들을 따라 전시회를 찾는 것은 2018년 ‘로버트 프랭크 전’에 이어 두 번째다. [관련 글 : 3년 만의 전시회 나들이, 『로버트 프랭크』 전]

 

두 시간쯤 걸려 포항 죽도시장에 닿았다. 경북 최대의 재래시장인 죽도시장에 오면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회를 맛보는 게 기본이다. 예전과 달리 고기를 직접 사서 차림 비를 받고 식당에서 회를 먹는 대신, 새로 생긴 회센터에 가서 정액의 모둠회를 먹었다. 회가 나오기 전에 멍게와 게장 등 이것저것 나오고, 회와 매운탕까지 먹긴 했지만, 회의 양이 흉내만 낸 듯해서 어쩐지 호객에 당한 느낌이었다. 

 

포항 시립미술관의 <한국 근현대 미술 ‘봄이 와 있었다’> 전

▲ 2009년에 개관했다는 포항 시립미술관은 북구 환호공원길에 있었다. 전면을 유리로 채운 미술관은 세련된 현대식 건물이었다.
▲ 미술관은 중앙을 비워놓고 가장자리에 전시실을 배치하는 구조였는데, 그것만으로도 미술관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미술관은 넓은 창을 통해서 주변의 자연을 관내에 들여놓았다. 산 너머는 바다다.
▲ 1층 1전시실 앞. 특별한 장식을 하지 않은 공간이 넓었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포항 시립미술관은 북구 환호공원길에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어귀에 붙은 길을 오르니 그 안쪽 널따란 평지에 전면을 유리로 조성한 현대적인 모습의 미술관이 나타났다. 뒤쪽의 야트막한 산을 넘으면 동해다. 2009년에 문을 열었다는 미술관은 중앙을 비워놓고 가장자리에 전시실을 배치하는 구조였는데, 그것만으로도 미술관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전시회에 간다고만 했지, 나도 아이들도 그게 어떤 전시인지는 말하지 않았는데, ‘한국 근현대 미술 『봄이 와 있었다』’전(2021.2.9.~5.9.)은 석 달간의 전시를 마치기 직전이었다. 나는 무심하게 전시장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으나, 장승업의 한국화에서부터 이응노, 천경자, 오윤 등의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었으니 꽤 쏠쏠한 시간이었다.

 

전시회는 우리나라 주요 공사립 컬렉션을 중심으로 구성했는데, 조선 말기 장승업부터 현대의 임옥상까지 40인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식민, 전쟁, 분단, 독재 등을 지나며 “시대와 삶, 그리고 그것의 연속성 안에서 함께 변화를 거듭해”(전시 소개) 온 한국 근현대 미술은 “노동, 인권, 자유 등과 같은 사회 문제를 직시하며 실천적인 태도로 문제의식에 접근”했다며, 이 전시는 그처럼 시대에 조응해 온 미술 작품을 통시적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는 4개의 공간에서 전개된다. 1전시실에서는 일제 강점기 조선 정통회화의 계승과 서구 조형기법의 이식으로 형성된 우리나라 근대회화를 살피고, 초헌 장두건관에는 이식된 미술 형식이 증식하여 해방 이후 한국적 향토성을 기반으로 생활 감정의 서정성을 담아낸 작품을 만난다. 2전시실에서는 전쟁 이후 존재론적 고민을 이어갔던 작가들과 한국에서 태동한 미술사조로 미적 이상을 추구했던 다양한 시도를 선보인다. 마지막 3전시실에서는 사회 참여적 미술 현장을 끌어와 냉혹하고 참담했던 현실과 공명한 결과를 그린다.

      <한국 근현대 미술 ‘봄이 와 있었다’>전 팸플릿 중에서

 

조선조 마지막 화원 장승업의 ‘잡화도십곡병(雜花圖十曲屛)’, 국민화가 박수근의 ‘소금 장수’, 장욱진의 ‘무제’, 천경자의 ‘그라나다의 도서관장’, 이응노의 ‘군상(群像)’, 박서보의 ‘Ecriture’ 등 사진으로나 만났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 장승업의 ‘잡화도십곡병(雜花圖十曲屛)’
▲ 박수근의 '소금장수'
▲ 장욱진의 '무제'
▲ 천경자의 '그라나다의 도서관장'
▲ 이응노의 '군상'
▲ 박서보의  ‘Ecriture’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오윤의 ‘도깨비’와 임옥상의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을 만날 수 있었다. 도깨비는 눈에 익은 오윤의 판화 가운데 한 편이고, 임옥상의 작품은 팔폭 병풍의 형식으로 산하를 표현하되,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을 화제(畫題)로 삼았다. 코르텐 스틸(Corten Steel)을 이용해서 그림과 글씨를 부조 형식으로 표현해낸 작품이었다.

▲ 오윤의 판화 '도깨비'. 천에 찍은 판화다. 그의 인물 표현은 매우 독특하다.
▲ 임옥상의 '대한민국 헌법'
▲ 구본주의 조각 '파랑새'

아마추어들이 전시회에 머무는 시간은 거기가 거기다. 우리는 전시된 작품을 한 바퀴 돌고 나와 바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아들과 나는 미술관을 두고 의견을 나누었다. 포항은 인구 60만, 경북에선 최대 도시다. 그에 걸맞게 미술관을 두고 있다는 건 괜찮은 일이라고. 아이는 구미에도 미술관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어. 구미는 인구는 40만이 넘는 도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지만, 문화적으로 가난한 도시야.”

 

한 십여 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내가 아는 한 구미는 그 정도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구미에는 관변 문화 아닌 비주류, 또는 민중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20만이 채 되지 않는 안동이 관변 아닌, 민중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라는 걸 겪고 와서 그럴까. 문학도 미술도, 음악도 관변 일색만이 존재하는 곳이 구미다.

 

최근에 성리학역사관이 문을 열고, 소규모 박물관으로 시립민속관이 있지만 그게 다다. 그건 공업단지 덕분에 도시로 발전한 한계 탓일까. 김수근이 설계한 최신식 구미문화예술회관을 보유하고 있지만, 거기 채워지는 공연 전시는 대부분 관변 행사들이거나 소규모 대관 행사에 불과하다.

 

바닷가 카페

▲ 카페. 누구는 좋은 자리에 카페를 내어 구경 잘했다 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멀쩡한 바닷가 풍경을 막아 독점하며 돈을 버는 거로 보였다.
▲ 바닷가 풍경 가운데 그중 좋았던 게 방파제 끝에 서 있는 등대였다. 실제 등댄지, 조형물인지는 모르겠다.

다음 목적지는 화진해수욕장 쪽에 있다는 한 카페였다. 며칠 전 거기 다녀온 딸애가 가보자 해서 갔는데, 엄청난 규모의, 이른바 ‘오션뷰((Ocean View)’ 카페였다. 드넓은 주차장에 주차요원 몇 명이 드나드는 차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주차된 차는 족히 백 대가 넘을 듯했다.

 

바다 쪽으로 커다란 유리창을 내 바다를 볼 수 있도록 설계한 가게였는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거기서 바다를 바라보는 건 편할지는 몰라도 소음으로 가득 찬 실내에서 바다를 조망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지하로 내려가면 바닷가로 갈 수 있는데, 거긴 정자 하나를 세워놓았다.

 

내 눈에는 창문으로 보이는 방파제 끝에 선 빨간 조형물만이 인상적이었다. 그게 조형물인지, 실제 등대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수십억 이상을 들였을 규모, 돈이 돈을 번다는 것은 이 자본주의 시대의 특징인 것이다. 우리는 빵 한 조각과 커피를 마시고 영덕 당진 고속도로를 타고 귀로에 올랐다.

 

 

2021. 5. 9. 낮달

 

 

*한국 근현대 미술 <봄이 와 있었다>는 학예사가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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