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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희망을 꽃피우다(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by 낮달2018 202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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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 나들이] ⑨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50)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대구시 중구 서문로에 일본식 2층 목조 건물을 재건축하여 2015년에 문을 열었다.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하 희움 역사관)은 올 9월, 다시 대구 나들이를 시작할 때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한 곳이다. 언젠가 얼핏 ‘위안부’ 역사관 관련 기사를 본 듯해서 확인한 것이었는데, 스스로 ‘대구를 잘 안다’라고 여기는 자신의 수준이 여기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2015년, 경상감영길에 문을 연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잠깐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경상감영공원 근처니까 금방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대구근대역사관에서 나와서 카카오맵으로 찾아보니 동서남북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경상감영길 주변이 변한 탓도 있지만, 나이 들면서 내 방향 감각도 길을 잃은 것이었다. 뺑뺑이를 돌다가 물어물어 간신히 찾고 보니 희움 역사관은 대구근대역사관 근처의 서문로 119안전센터 앞에 있었다.

 

희움의 주춧돌은 1997년 발족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그동안의 활동을 밑거름으로 하여 2009년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면서 놓였다. 그리고 2010년에 고 김순악 할머니께서 “내가 죽어도 나를 잊지 말아 달라.”라는 유언과 함께 맡긴 5천여만 원에 다른 할머니들도 뜻을 함께하면서 희움 역사관 건립의 종잣돈이 마련되었다.

▲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처마 아래에 조그만 간판이 걸려 있다.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고자 위안부에는 따옴표를 쓴다.

시민모임은 희움 역사관 건립 기금을 마련하고자 여러 방식의 범국민 모금 캠페인을 전개하였고, 많은 시민이 이에 화답해 주었다. 지역 예술가와 여러 부문의 전문가들도 재능기부로 이 모금에 함께해 주었다고 한다. 또 2012년에 발매된 시민모임의 브랜드 ‘희움’으로 많은 이들이 역사관 건립에 힘을 보탰다.

 

시민들의 힘으로 이룬 역사관과 브랜드 희움 

 

브랜드 ‘희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와 피해자 정서 치료의 일환인 압화 작품을 모티브로 제작하는 제품”이다.(희움 누리집 바로가기) 특히 많은 청소년이 희움 제품을 공동 구매하여 수익금을 전달해 주었고, 문제 해결을 위한 캠페인에도 적극 참여해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희움 역사관은 시민모임의 노력과 여러 시민의 성원에 힘입어 추진되었고, 여성가족부와 대구광역시, 대구광역시 중구도 지원에 나섰다. 사업비 13억 4천만 원 중 대구시와 여성가족부는 2억 원을 지원하였고 나머지는 시민 모금으로 충당하였다. 그리하여 2015년 12월 5일, 마침내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문을 열 수 있었다. 식민지 조선의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로 끌고 간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지 70년 만이다.

 

물론, 2차 대전이 끝난 후 무려 반세기 가까이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일본의 전쟁범죄, 그 끔찍한 진실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해방된 지 46년 뒤인 1991년 8월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 덕분이었다.

▲ 지난 2023년 10월 4일에 열린 1616회 수요시위. 수요시위는 31년째 이어지고 있다. ⓒ 정의기억연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현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한 첫 수요시위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게 1992년 1월 8일이고, 지난주 10월 4일에는 1616회 수요시위가 이어졌다. 31년째 수요시위는 공휴일인 날과 1995년 고베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지진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시위를 쉰 것을 빼고는 이어와 지구상에 가장 긴 시위가 되었다. [관련 글 : 24년 전 오늘, 수요시위열리다 / 일본군 위안부용기와 희망으로 지켜온 스무 해(<20년간의 수요일> 서평 포함)]

 

지구상에서 가장 긴  시위 ‘수요시위’

 

2023년 10월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총 240명이다. 이 중 231명이 사망해 생존 피해자는 이제 한 자릿수, 아홉 분뿐이다. 이들 생존자의 연령대는 90~95세가 8명, 96세 이상 1명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수요시위나 정의기억연대의 요구 사항에 대해 어떤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은 바 없다.

▲ 내가 서둘러 돌아보느라고 빠뜨린 희움 역사관 1층 상설 전시실.

대구 지역에서 꾸려진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누리집)’도 어느새 26살의 청년이 되었다. 누리집의 ‘연혁’을 살펴보면, 그간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활동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시내 한복판에 비록 낡은 건물이나마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세워낸 것은 이들의 이바지 덕분인 듯하다.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경기도 광주시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부산광역시 수영구의 민족과 여성 역사관, 서울특별시의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에 이어 전국에서 네 번째로 문을 연 위안부 역사관이다. 희움 역사관은 1926년 경일은행 자본으로 지어졌던 일본식 2층 목조 건물을 뼈대는 남기되 내부를 개조하여 만들었다.

 

평화와 여성 인권 존중 사회를 위한 실천하는 역사관’ 지향

 

희움은 일제강점기 대구의 정치·경제 중심지면서 였던 북성로와 함께 대구에서 일제강점기의 모습을 가장 많이 보전한 거리인 서문로에 있다.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위안부’ 피해자들과 동시대를 살아온 공간의 재건축을 통해 고통스러운 과거를 덮기보다는 식민지 시대의 흔적을 직시하여 역사적 교훈을 얻고, 이를 기억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자”(누리집)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공간”이며, “더 나아가 문제 해결을 통하여 평화와 여성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실천하는 역사관’”(이상 누리집 ‘역사관 소개’)이다.

▲ 2층으로 오르는 좁은 계단길 좌우에 사진이 빽빽이 걸려 있다.
▲ 벽면에 빽빽이 걸린 사진의 주인공들은 모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운동 31년사 연표가 두 개 벽면에 걸쳐 전시되어 있다.
▲ 전시 중인 '위안부' 관련 서적과 자료집들.
▲ 속아서, 또는 강제로 끌려간 소녀들은 '위안부'로 혹사 당하다 돌아와 할머니가 되었다. 그들이 존재를 드러낸 것은 1991년 이후였다.

오후 1시를 막 넘길 때쯤 나는 희움으로 들어섰다. 1층 접수대는 비어 있었는데, 금방 여성 근무자가 나와서 나를 맞아주었다. 1층의 상설 전시 공간에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생존자들의 기억,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 운동사를 볼 수 있다는 건 돌아와서야 알았다. 나는 무심히 2층으로 바로 올라가 버린 것이다.

 

재건축한 건물이지만, 내부 공간은 비좁았다. 설마 접수대 뒤편이 상설 전시장일 줄이야. ‘위안부’ 피해자들의 흑백과 컬러사진이 빽빽하게 걸린 좁은 계단을 오르면 2층 전시실이었다. 벽면 두 개에 걸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31년사 연표가, 그 뒤쪽 교육관에는 대구·경북 지역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과 이야기,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희움은 무엇보다도 좁은 전시 공간의 제한이 너무 뚜렷해 보였다. 좁은 공간을 구획하였지만, 그 경계도 모호하여 각 공간의 독립성이 분명하지도 않은 듯했다. 2층의 좁다란 복도는 시민모임의 공간이었지만, 너무 옹색하기만 했다.

▲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벽화. 2021년에 열린 전시회 포스터를 겸한 그림이다.

2층 계단 바로 앞에는 영상관 모니터에는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 영상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젊은 외국인 여성이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하도 기특하여,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이인가 싶어, 물었더니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모니터 하단에 영문 자막이 나오고 있었다.

 

돌아서다가 그녀가 조금 전 대구근대역사관에서 만났던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외국인 여행자였지만, 그녀는 가장 진지한 태도로 대구근대역사관과 위안부 역사관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돌아와 내가 정작 희움의 절반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음을 깨달으며 부끄럽게 여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희움의 존재를 확인한 것으로 첫 방문을 갈무리한다. 가까운 시일 안에 한 번 더 찾아서 아쉬운 부분을 기울까 한다. 미완성의 답사기지만, 아쉬운 대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다.

 

 

2023. 10. 1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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