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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 들여다보면 ‘1세기 전 대구’가 보인다

by 낮달2018 2023.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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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 나들이] ⑧ 조선식산은행 자리에 들어선 대구근대역사관(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67)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대구근대역사관은 1932년에 지은 조선식산은행(해방 후 한국산업은행) 자리에 2011년도에 개관한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 100년 전의 대구 도심의 모습(대구근대역사관 주변) 가운데 있는 건물이 조선식산은행이다.
▲ 대구근대역사관 소장 유물 중 대근부근조감도(1953)

시골에서 자랐지만, 중학교부터 대학까지의 공부를 대구에서 마쳤으니 대구는, 유년기를 포함하여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에 견줄 만한 곳이다. 1980년대 초반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대구를 떠나 경상북도 여기저기를 떠돌게 되었지만, 여전히 내게 대구는 ‘잘 아는 만만한 곳’인 이유다.

 

이제 대구는 ‘잘 아는 만만한 도시’가 아니다

 

그러나 사실상, 1977년 입대하면서 비운 3년 남짓한 시간에 대구는 적잖이 변했고, 그 변화는 복학해 졸업할 때까지의 시간으로도 따라잡지 못했다. 그리고 교직으로 나가 경북 동부지방에서 북부지방을 그쳐 대구 인근 지역으로 돌아왔어도 대구는 조금씩 낯설어지고 있었다.

 

낯설다는 것은 단순히 지리적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시내 중심부를 빼면, 사실상 대구가 거대 도시로 커지면서 확장된 외연 부분은 여전히 어디가 어딘지 헷갈린다. 그러나 도시의 문화나 분위기, 어떤 정치적 경향성 따위에서 예전과 너무 달라진 대구의 모습 앞에 나는 일종의 열패감을 맛보기까지 한다. 지금의 대구는 내가 알던 대구와는 많이 달라졌구나 싶은.

 

1932년 건립된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이 한국식산은행(1945)과 한국산업은행(1954)을 거쳐 2003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대구근대역사관으로 문을 연 것은 2011년이다. 물론 그 소식도 따로 듣지 못했으므로 나는 12년이나 지난 2023년에야 대구근대역사관을 찾은 것이다.

▲ 대구근대역사관 출입문은 경상감영공원의 서쪽 출구와 이어져 있었다.
▲ 대구근대역사관의 1층 상설전시실. 왼쪽은 안내대, 오른쪽이 전시장 입구다.
▲ 전시 '근대의 태동'은 경상감영 설치 이후 경상도의 행정, 사법, 군사 중심지였던 전통 도시 대구의 해체와 재구성 등을 보여준다 .
▲ 대구역 은 '근대의 태동' 그 중심에 있었던 공간이었다. 기차는 사람들과 물화를 다른 지방으로 이어주었다.
▲ 대구의 고지도. 대구읍성의 4대문이 그려져 있다.
▲ 대신동으로 옮기기 전인 1900년대 초반의 서문시장 장날 모습. 이때 서문시장은 오토바이 골목(인교동) 일원에 있었다.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많은 지역이 각종 박물관, 기념관, 역사관 따위를 다투어 열었다. 대구근대역사관도 그런 숱한 시설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 나는 지레짐작했을 것이다. 경상감영공원으로 바뀐 중앙공원을 돌아 나오다가 공원의 서쪽 끝에서 바로 대구근대역사관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발견했다. 길은 건물의 정면이 아니라 후면에 있는 출입구로 이어져 있었다.


옛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에 2011년에 문을 연 대구근대역사관

 

대구근대역사관은 르네상스 양식의 2층 철근콘크리트조 건물이다. 하부 벽은 화강석 다듬돌을 쌓았고 상부 벽은 타일을 붙였다. 남쪽과 서쪽의 창 사이의 벽은 돌출시켜 기둥처럼 만들고 건물의 양 모서리와 각 기둥의 머리를 몰딩으로 장식하였다. 기둥 위에는 나뭇잎 모양을 돋을새김한 사각형의 부조 장식 판을 붙였다.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일제 강점기 식민지 경제를 지배하고 수탈한 대표적인 기관이다. 구미 출신 장진홍(1895~1930) 의사는 1927년 식민지 통치 기구인 경북도청과 경북 경찰부, 그리고 조선 민중을 수탈하는 대표적 금융기관인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과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파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관련 글 : 그날, 장진홍은 죽어서도 독립만세를 불러냈다]

▲ 일제의 전시수탈과 일제 강점기 대구의 통치 억압 기구 관련 전시물.
▲ '구국의 정신' 관련 전시 중 '6.25전쟁과 대구'를 다루고 있는 전시물.
▲ '구국의 정신' 관련 전시 중 '2.28민주운동'(1960)을 다루고 있는 전시물.
▲ 대구의 근대 건축물을 소개하고 있는 전시와 모형들.

은행 건물일 때는 출입문이 대칭을 이룬 남쪽 정면과 서쪽 측면에 각각 있었으나, 지금은 경상감영공원 서쪽 출입구 앞 북쪽 뒷면에 있다. 역사관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금고 모양으로 만들어진 ‘조선식산은행’ 방이 있다. 금고에 당시 사용되었던 지폐와 여러 가지 은행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된 ‘대구의 근대

 

역사관 1층은 안내대와 상설전시실, 2층은 체험학습실, 기획전시실, 문화강좌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1층의 전시물은 대구의 ‘역사 연표’ 실, 일제 강점기 대구 지역을 운행하던 대중교통인 대구부에서 운영한 ‘부영(府營) 버스 영상체험실’을 거쳐 ‘근대의 태동’으로 이어진다.

 

근대의 태동은 1601년(선조 34) 경상감영이 설치된 이후 경상도의 행정·사법·군사 중심지였던 전통 도시 대구의 해체와 재구성, 경상감영의 변화 등을 보여준다. 일제 침략 후 대구 도심은 일본인 중심의 상권으로 변모했고, 이 그 변화의 한가운데 대구역이 있었음을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구국의 정신’은 국채보상운동과 독립운동, 6·25전쟁, 2·28의거 등을 다루고, 대구의 문학, 미술, 음악을 다룬 ‘근대의 문화’, 계몽운동과 민족교육을 통한 근대교육의 산실을 다룬 ‘교육도시 대구’, 유물로 보는 향토 생활과 인력거, 라디오, 전화, 시계 등 향토 생활을 보여주는 ‘삶의 향기’, 근대 산업도시로서의 대구와 삼성의 성장을 다룬 ‘근대화의 산실’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관련 글 : 2·28 - 대구 고교생들, 이승만 선거 방해 공작에 맞서 일어서다]

▲ 대구근대역사관의 기획 전시 포스터. 왼쪽은 대구의 독립운동 돋보기 전시고, 오른쪽은 기증유물 작은 전시다.

돋보기 전시 - 대구 지역 독립운동사

 

2층에서는 기획전인 ​대구 지역 독립운동사 돋보기 전시로 ‘대구에서 만나자-1910년대 광복을 꿈꾼 청년들’이 열리고 있었다. 1층의 ‘구국의 정신’의 각론이라고 볼 수도 있는 전시는 매우 폭넓고 구체적인 형식이었다. 의열단의 이종암(1896~1930, 독립장), 조선공산당의 정운해(1893~1945, 애국장), 광복회의 장진홍(1895~1930, 독립장), 박상진(1884~1921, 독립장) 의사, 김진만(1876~1934, 독립장)·김영우(1895~1926, 애족장)·김일식(1912~1953) 등 3대에 걸친 항일독립운동도 상세하고 다루고 있었다.

 

특히 1910년대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광복회’ 활동에 주목하여 조직과 강령, 연락기관, 경북 우편마차 사건과 경찰을 감시한 ‘상덕태(尙德泰)상회’ 등을 상세하게 다루었다. 지난 6월 9일 전시를 개막한 후 8월 15일 광복절에 관람객 1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개천절인 10월 3일에 누적 관람객 2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 광복회의 강령과 조직. 광복회는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창립됐다.
▲ 광복회의 연락기관, 연락거점, 국외조직
▲ 광복회원이면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투척 사건의 주역인 장진홍 의사가 본가에 보낸 편지.
▲ 광복을 꿈꾸는 청년들은 의열단과 조선공산당, 광복회 등의 활동을 통해 이어졌다.
▲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가 공주감옥에서 동생에게 쓴 편지(1918년)
▲ 김진만 일가의 3대에 걸친 독립운동은 대구의 독립운동사를 빛내고 있다.
▲ 기증유물 전시전. '어머니의 혼수품 장농함'. 기증된 혼수품으로 가져왔던 목가구를 전시하였다.

내가 대구근대역사관을 찾았던 9월 12일만 해도 전시관에 들른 사람은 백인 여성 1명과 가족인 듯한 3명의 관람객뿐이었었다. 그런데 이 전시가 주목받은 것은 뻔한 내용의 관행적인 전시를 벗어나 구체적인 내용을 매우 치밀하게 다룬 덕분인 듯하다.

 

아직도 대구에는 ‘돌아봐야 할 데’가 많다

 

역사관에서는 ‘다 같이 돌자, 읍성 한 바퀴’라는 이름으로 경상감영과 대구읍성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다. 9월 매주 금요일마다 시행하는 프로그램을 나는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돌아섰다. 예약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9월은 지나가 버렸다.

 

경상감영공원과 대구근대역사관을 돌았지만, 여전히 근대 골목 투어 제1코스에는 ‘최제우 나무’ 등에 돌아보아야 할 데가 많다. 나는 이번 가을에는 날을 잡아 여러 차례 대구 나들이를 이어가리라고 자신에게 약속했다. 박제화된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재를 성찰하게 하는 게 역사일진대, 그걸 한낱 구경거리로만 스쳐 지나가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였다.

 

 

2023. 10.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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