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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그 함성으로

by 낮달2018 2022.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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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민주주의의 함성을 기억하며

▲ 신영복 글 그림 . ( 전교조 2007 탁상달력 )

‘계절의 여왕’이라는 진부한 수사로는 5월을, 그 아픔과 상처 위에 돋아난 새살을 다 말하지 못한다. 쇠귀 선생의 그림과 함께 일별해 보는 5월의 달력에는 아직도 선연한 피의 흔적, 매캐한 최루탄 내음, 그 푸른 하늘에 나부끼던 깃발과 드높던 함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벽두인 1일은 ‘메이데이(May Day)’다. 만국 공통의 이 ‘노동절’은 아, 대한민국에서만 ‘근로자의 날’이다. 이날의 역사도 만만찮다.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 도당의 선전 도구’라는 이승만의 훈시에 따라 1957년, 3월 10일(대한노총 창립일)로 생일이 바뀐데다 1963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근로자의 날’로 개칭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단 말인가!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

 

- 사형을 선고받은 미국 노동운동 지도자 스파이즈의 법정 최후진술

▲ 케테 콜비츠 ' 봉기 ( 蜂起 )'

메이데이는 1886년 ‘하루 8시간 노동’을 내걸고 5월 1일에 단행된 미국에서의 총파업과 뒤이은 시위 등에서 경찰의 발포, 자본가들의 조작에 의해 이루어진 폭발사건(헤이마켓 사건) 등에서 숨지거나 처형된 사람들의 희생 위에 피어났다. 1889년, 세계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8시간 노동'을 위해 싸웠던 미국 노동자 투쟁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이듬해부터 5월 1일을 세계 노동절로 정해 기념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관련 글 : 첫 메이데이(May Day),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부모(수채화)  ⓒ김용대

5일은 어린이날. 식목일은 공휴일의 지위를 잃었지만, 이날이 여전히 공휴일로 살아 있는 것은 아이들이 우리와 세상의 미래이기 때문이리라. 8일은 어버이날. 내게 친가와 처가를 통틀어 살아계신 어버이는 단 한 분, 장모님뿐이다. 날이 갈수록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은 어버이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은 깊어지고, 아이들은 자라고 우리는 시나브로 늙어간다.

▲ 광주민중항쟁

18일은 광주민중항쟁 스물일곱 돌이다. 30년이 가까워지고 있건만 진실로 광주의 상처와 광주의 진실은 완성되었나. 관련 특별법 제정(1995), 국가기념일 제정(1997), ‘5·18 민주화 운동’으로 명명 등 역사로서의 형식은 얼마간 갖추어진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발포 책임자는 밝혀지지 않았고, 학살자들은 여전히 전직 국가원수라는 이름과 수구 정치세력, 지역 분할 구도에 기대어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으니 고통의 현대사는 진행형일 뿐이다. [관련 글 : 5·18, 무도한 군부의 학살에 맞선 시민들의 응전]

 

10일은 1986년 교육 민주화 선언 기념일, 28일이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창립된 날이다. 15일은 박정희 정권 때 제정된, ‘지우고 싶은 하루’, ‘스승의 날’이다. 이 관제 기념일은 교사들이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한 날이었고, 이어진 교육 민주화 선언과 전교조 창립은 그 부끄러움을 넘고자 한 교사들의 집단적 노력의 결과였다.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1989.5.28.)

1989년에 전국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1천 5백여 명의 교사가 교단에서 쫓겨났고, 이후 1994년 복직이 이루어지기까지 유례없는 탄압의 시기를 거쳐 전교조는 2000년 합법화되었다. 그러나 2007년 현재, 전교조로 대표되는 교사 집단은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물론,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이른바 ‘철밥통’으로 지탄받는 ‘동네북’이 되었다. [관련 글 : 서른넷 풋내기였던 나, 학교에서 잘리다]

 

자신과 관련된 일이니 섣불리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합법화의 과실에 취해 있다거나, 교육적 의제와 관련해 국민을 설득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보수화·우경화와 함께 심화하고 있는 교육 불평등에 맞서 교육 공공성을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목표와 투쟁은 여전히 정당하고 유효하다고 나는 믿는다.

 

쇠귀 선생은 ‘사랑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함께 걸어가는 것’이고 ‘사랑은 장미가 아니라 함께 핀 안개꽃’이라고 말한다. 이는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인식과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저 홀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장미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핀 ‘안개꽃’은 ‘한 그루의 나무가 되라고 한다면 나는 산봉우리의 낙락장송보다 수많은 나무들이 합창하는 숲속에 서고 싶’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는 지은이의 진술과 이어지는 ‘사랑과 연대’의 꽃이다.

 

5월에, 대상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담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현대사의 상처와 영광을 담은 광주 항쟁일과 메이데이, 그리고 교육 민주화 투쟁의 기념일 등이 함께 있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우리는 아주 습관적으로, 또는 관습적으로 ‘사랑’과 ‘투쟁’을 반대편에 놓곤 하지만, 그 둘은 서로 다르지 않다.

 

쇠귀 선생의 말처럼, '증오가 사랑의 방법'(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역설이 진실이듯, 투쟁이 사랑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사랑은 투쟁’이면서 동시에 ‘투쟁은 사랑’이다. 투쟁은 단순한 사랑의 수단을 넘어 그 과정이면서 목적이다. 그것은 사랑의 진정성과 완결성에 대한 뜨거운 반대증명이기도 하다.

 

모두가 뜨거웠던 시절, 그 함성을 떠올리며 다시 5월을 맞는다.

 

 

2007. 4. 3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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