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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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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 함께한 시간과 가족의 발견 오래된 사진첩에 만나는 가족과 세월 어느 날이었던가. 귀가하니 아내가 딸애와 함께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몇 권의 사진첩 중 가족사진만 따로 모은, 좀 두꺼운 놈들이었다. 거의 모두 손수 찍은 사진인데도 새삼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까마득한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늘 사진을 바라보는 것은 그걸 찍을 때의 느낌을 되새기는, ‘감정의 복기(復碁)’ 같은 거라고 생각해 왔다. 10년이나 20년쯤의 시간이라면 그걸 되돌릴 수는 물론 없다. 그러나 사진이란 놈은 마치 주마등처럼 혹은 파노라마처럼 우리가 고단하게 밟아온 시간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펼쳐주기도 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걸 어쩔 도리는 없다. 그러나 오래된 사진 한 장 한 장을 들여다볼.. 2019. 1. 14.
소년과 전화 안내원의 우정과 교유 - 빌라드 <안내를 부탁합니다> 빌라드의 단편 뜻밖에 폴 빌라드의 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은 듯하다. 읽은 이는 물론이거니와 처음 이 글을 만난 이들도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작품의 자연스런 전개와 진정성 탓이었으리라. 그의 유년 시절의 성장통을 그린 자전적 에세이 《Growing Pains》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인 은 누구나 거치는 유년 시절, 그 성장의 민감한 순간을 스쳐 간 보편적 공감을 그리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을 굳이 장르로 구분할 필요는 없겠다. 소설이든 수필이든 아름답고 따뜻한 글이니 말이다. ) 댓글을 달아준 선배 교사가 이 ‘소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이는 또 그의 수필 를 ‘강권’했다. 요샛말로 하면 ‘강추’다. 물론 나는 그 글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폴 빌라드’로 검색하면 어김없이 .. 2019. 1. 13.
모든 ‘인식’과 ‘삶의 전제’로 빛나는 - 폴 엘뤼아르 「자유(自由)」 폴 엘뤼아르,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 1895~1952)의 ‘자유’는 고등학교 시절, 그 첫 연을 내 자취방 벽에 붉은 매직으로 휘갈겨 써 놓았던 시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는 제대로 된 문학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고, 이른바 ‘세계의 명시’ 따위는 싸구려 다이제스트 시집을 통해서 간신히 알게 되었다. 학교 도서관이나 형의 서가에 박혀 있던 흰색 장정판(하드 커버)의 그 시집들에서 그냥 겉멋으로(!) 하이네와 릴케, 워즈워스와 포의 시를 맛보고, 그것들 가운데 제법 멋있는 시구(詩句)들을 외우는 정도로 외국 시에 입문했었다.이후,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거기서 특별히 현대시를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 프랑스 시인들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학교에서 아이들에.. 2019. 1. 13.
‘문숙’, <삼포 가는 길>, 길 위의 사람들 문숙과 영화 그리고… 에 ‘자연치유’라는 책을 냈다는 기사가 언뜻 보이더니 에서는 배우 문숙의 인터뷰가 실렸다. 무심하게 기사를 읽는데, 문득 그녀가 나와 거의 동년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른몇 해 전 싱그러운 스무 살 처녀였던 이 배우는 이제 쉰여섯 초로의 여인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 야위었지만 풍성해진 표정 뒤편으로 나는 삼십오 년 전, 대구 만경관 극장에서 만났던 스물한 살의 문숙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몸을 낫게 하는 건 ‘취함’ 아닌 ‘비움’”이라며 그녀는 미국 생활 30년 만에 자연치유 전문가가 되어 돌아왔다고 기사는 전한다. 이만희 영화 의 백화 돌아오다 다른 기사는 뒤늦게 그녀가 2007년에 펴낸 책 ‘마지막 한해-이만희 감독과 함께한 시간들’을 중심으로.. 2019. 1. 13.
[오늘] 90년 전 오늘, 식민지 시기 최대규모 ‘원산총파업’ 돌입 [역사 공부 ‘오늘’] 1929년 1월 13일, 원산노동연합회 총파업 선언 1929년 1월 13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원산노동연합회(원산노련) 산하 노동조합원 2200여 명이 참여한, 일제 식민지기 최대 규모의 파업이 시작되었다. 1928년 9월에 있었던 문평제유공장 노동자의 파업에서 비롯된 이 대규모 연대 파업은 80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지역의 모든 부문 노동자와 총자본이 맞붙은 유례없는 이 파업 투쟁은 일제의 노동정책은 물론 이후 노동운동의 활동 방식과 노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인 감독의 노동자 구타로 촉발 원산총파업은 1928년 9월에 있었던 문평제유(製油)공장 노동자의 파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함경남도 덕원군 문평리 소재, 영국인이 경영하는 문평 라이징 선(Rising Sun) 석유.. 2019. 1. 12.
[오늘] 김산 자서전 <아리랑>의 저널리스트 님 웨일스 떠나다 [역사 공부 ‘오늘’]1997년 1월 11일, 작가 헬렌 포스터 스노 떠나다 1997년 1월 11일,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헬렌 포스터 스노(Helen Foster Snow, 1907~1997)가 미국 코네티컷주 길포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그는 남편 에드거 스노와 함께 1930년대 격동기의 중국 혁명가들을 취재하여 〈붉은 중국의 내부(Inside Red China)〉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여인은 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 대신 ‘님 웨일스(Nym Wales)’라는 필명으로 더 친숙하다. 왜냐하면, 그는 1930년대에 중국에서 활동한 한국인 독립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 1905~1938)의 고통스러운 삶을 기록한 자서전 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미국 유타주에서 변호.. 2019. 1. 9.
노래, 오래된 기억들 변혁의 열망을 하나로 묶어준 노래들 지난해 어느 활동가의 장례식에서였다. 의식 가운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순서가 있었다. 무심코 시작했는데, 한때는 입만 떼면 부르던 그 노래가 갑자기 너무 낯설게 다가오고 있음을 나는 알았다. 설마, 하면서도 나는 노래의 중간쯤에서 이미 가사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던 것이다. 변혁의 열망을 하나로 묶어준 노래들 바보처럼 소리 없이 입만 벌리다가 노래 말미께서 간신히 그 익숙했던 노래를 따라잡았다. 의례가 끝났을 때 나는 갑자기 내가 그 시절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날부터 집회에 가는 날보다 가지 않는 날이 많아지고, 그예 집회와는 무관한 일상에 푹 파묻히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80년대와 90년대 .. 2019. 1. 9.
[오늘] 97년 전 오늘, ‘낭만주의의 화원’인 <백조> 창간 [역사 공부 ‘오늘’] 1922년 1월 9일, 문예 동인지 '백조(白潮)' 창간호 발행 1922년 1월 9일, 홍사용(1900~1947), 박종화(1901~1981), 나도향(1902~1927), 박영희(1901~?) 등의 동인들이 참여한 순수 문예 동인지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편집인은 홍사용, 발행인은 일제 검열을 피해 미국인 선교사인 배재학당 교장 아펜젤러(H. D. Appenzeller, 1889~1953)가 맡았다. 는 휘문의숙 출신의 박종화·홍사용과 배재학당 출신의 나도향·박영희 등 문학청년들의 교제에서 비롯되었다. 3·1운동의 실패로 절망에 빠져 있던 이들은 젊은이들이 모여 문예와 사상을 펼 수 있는 잡지를 만들고자 하였다. 마침 김덕기·홍사중(홍사용의 육촌 형)과 같은 후원자를 만나 출판사 .. 2019. 1. 9.
‘된장녀’도 콩잎쌈에는 반해버릴걸! 피로 유전하는 한국인의 원초적 미각 인간의 감각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것은 미각인 듯하다. 미각은 단순히 맛을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삶과 그 애환을 기억해 내는 까닭이다. 갓 구워낸 국화빵의 바스러질 것 같은 촉감, 학교 앞 문방구의 칸막이 나무상자의 유리 뚜껑을 열고 꺼낸 소용돌이 모양의 카스텔라가 온몸으로 뿜어대던 황홀한 냄새를 기억할 수 있는가. 깊은 밤 완행열차에서 목메어 가며 나누어 먹던, 껍질 벗긴 찐 달걀의 매끈한 몸뚱이가 선사하는 감촉 따위를 기억하시는가. 그것도 단순한 맛이 아니라, 우리들 가난한 성장의 길목에 명멸해 간 한 시대의 추억으로 그것을 되새길 수 있으신가. 이 질문에 선선히 답할 수 있다면 그는 한국전쟁 후 태어난, 이른바 제1차 베이비붐 세대라 해도 크게 틀리지 .. 2019. 1. 5.
‘착한 커피’ 혹은 더바디샵 ‘윤리적 소비’의 기쁨에 대하여 “소비자는 영악하다”는 진술은 다분히 공격적이다. 공급자 편향이 드러나는 이 진술의 소비자 버전은 당연히 “소비자는 합리적이다”일 것이다. 합리적 소비란 물론 ‘최저 비용으로 최고의 재화·봉사를 사는 일’을 이른다. 경우에 따라 거대 할인점의 무차별한 저가 공세를 부나비처럼 쫓아가는 소비자를 바라보는 기분은 씁쓸할 수도 있겠지만, ‘이기’와 ‘이해’ 앞에서 갈기를 세우는 인간들의 저 원초적 본능을 어찌하랴. 그러나 소비자가 늘 영악하지는 않다. 그들은 재화의 가치를 거기 투여된 노동으로 환산해 이해한다. 반값으로 물건을 사게 된 행운을 기뻐하면서도 그들은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된, 거기 투여된 노동을 안타까워할 줄 아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그들은 합리적일 뿐 아니라 ‘윤.. 2019. 1. 4.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농경생활의 필수 도우미 ‘24절기’ 블로그에서 2012년 겨울부터 ‘24절기 이야기’를 썼다. 24편은 아니고, 소한과 대한, 우수와 경칩, 입동과 소설 따위를 묶는 방식으로 써서 모두 18편이었다. 상당수가 ‘기사’가 되어 에 실렸다. 티스토리로 옮겨와 이 묵은 글을 정리하다가 이를 새로 쓰기로 했다. 대여섯 해가 흘렀을 뿐인데, 어쩐지 쓰다만 듯한, 개운치 않은 느낌 때문이다. 읽는 이로선 그게 그거일지 모르지만, 그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는 변화는 굳이 말하자면 ‘성장’의 일부로 느껴지기도 하는, 좀 다른 경험이다. ‘농경’의 도우미, 24절기 입춘(立春), 경칩(驚蟄), 하지(夏至), 처서(處暑), 상강(霜降), 대설(大雪)…….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기후의 표준점’()인 ‘절기(節.. 2019. 1. 3.
[오늘] ‘관제 뉴스 공급’ 시대, 퇴장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94년 12월 31일, 종영 1994년의 마지막 날, 대한민국 정부가 1963년부터 제작하여 영화관에 보급, 상영했던 가 종영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때는 대중매체에 소외되어 있었던 국민에게 뒤늦게나마 뉴스를 공급함으로써 소임을 다했던 이 ‘관제’ 뉴스는 2040호를 끝으로 종영했다. 종영, 관제 뉴스의 종말 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집집이 텔레비전 등의 매체가 보급되고 인터넷 시대가 가까워졌는데 이미 보고들은 뉴스를 강제로 다시 보게 한다는 지적이 뒤따르면서였다. 1994년 8월 와 문화영화를 폐지하는 영화진흥법안이 최종 확정된 데 이어 이날, 는 마침내 종영된 것이었다. 는 TV 보급이 보편화 되기 전, 국민에게 나라 소식을 알리고.. 2019.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