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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각과 삶, 혹은 추억

‘된장녀’도 콩잎쌈에는 반해버릴걸!

by 낮달2018 2019.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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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유전하는 한국인의 원초적 미각

▲ 내가 무척 좋아하는 마늘종무름. 마늘종을 밀가루에 버무려서 밥 위에 쪄 낸 것이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것은 미각인 듯하다. 미각은 단순히 맛을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삶과 그 애환을 기억해 내는 까닭이다.

 

갓 구워낸 국화빵의 바스러질 것 같은 촉감, 학교 앞 문방구의 칸막이 나무상자의 유리 뚜껑을 열고 꺼낸 소용돌이 모양의 카스텔라가 온몸으로 뿜어대던 황홀한 냄새를 기억할 수 있는가.

 

깊은 밤 완행열차에서 목메어 가며 나누어 먹던, 껍질 벗긴 찐 달걀의 매끈한 몸뚱이가 선사하는 감촉 따위를 기억하시는가. 그것도 단순한 맛이 아니라, 우리들 가난한 성장의 길목에 명멸해 간 한 시대의 추억으로 그것을 되새길 수 있으신가.

 

이 질문에 선선히 답할 수 있다면 그는 한국전쟁 후 태어난, 이른바 제1차 베이비붐 세대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터이다. 국화빵이나 카스텔라, 찐 달걀 따위는 이른바 ‘조국 근대화’ 시기에 유소년기를 지낸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처음으로 만난, 그러나 쉽사리 맛볼 수 없는 새로운 먹을거리였으니 말이다.

국화빵, 카스텔라, 찐 달걀… 기억한다면 ‘전후 베이비붐 세대’

초등학교 내내 우리는 학교에서 가끔씩 밀가루나 강냉이 가루, 가루우유 등속을 배급받았다. 가방 대신 메고 있던 ‘책보(책보자기)’에 그걸 마치 전리품처럼 챙겨서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귀가하곤 했다.

 

방앗간을 운영하신 부모님을 두고 있었던 덕분에 내가 몰랐던 ‘보릿고개’를 대부분 동무들은 혹독하게 겪었던 것 같다.

 

나는 그들이 밥 대신 먹어야 했던 강냉이나 찐 고구마를 부러워했지만, 그들은 보리가 더 많이 섞였을망정 언제나 밥을 그리워했다. 삼시 세끼를 죽과 보리밥으로 때워야 했던 친구들은 ‘몸서리나서’ 지금은 죽과 보리밥을 먹지 않는다고 고백하곤 한다. 미각으로나마 그들은 강팔랐던 유소년 시절의 주림과 결핍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영양실조와 비타민 부족으로 아이들은 모두 팔다리와 머리통에 부스럼을 달고 살았고, 머리카락조차 노랬다. 학교에서 배급받은 가루우유를 솥에다 찌면 매우 단단한 덩어리가 된다. 굳어버린 그 유제품(?) 조각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천천히 빨고 깨물어대면서 아이들의 이는 쉬 약해져 버리기도 했던 것 같다.

 

세월이란, 시간의 경계뿐 아니라, 행복과 불행이라는 기억의 경계까지 허물어 버린다. ‘몸서리나서’ 죽과 보리밥은 곁눈질조차 하지 않는 한편으론, 과거의 형편없던 식생활을 재현해 보고 그 시절의 잃어버린 정서를 되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보리밥집으로 도시락집으로 몰려가지만, 그들이 맛보는 것은 단지 추억의 미각일 뿐이다. 그것만으로 그 시대가 품고 있었던 따뜻한 인정과 의리를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이다.

딸아이는 콩잎쌈을 먹는다

▲ 된장과 밀가루풀로 삭힌 콩잎. 잎은 부드러운 놈으로 써야 껄끄럽지 않다.

한편, 우리의 미각은 그 원형질대로 유전하는 듯하다. 주식과 부식에 따른 식습관이나 식생활의 변화에도 어버이의 미각은 시간이라는 원군에 힘입어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이다.

 

대체로 요즘 아이들은 날된장의 짙은 냄새 앞에서 코를 싸매고 질겁한다. 스물을 넘긴 우리 아이들도 그렇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머지않아 그들은 거칠고 투박한 된장 내가 자신의 원초적 미각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게고, 제가 낳은 아이들 앞에서 아비의 생각을 고스란히 되풀이하게 될 거라는 것을.

 

그런 조짐은 딸아이에게서부터 나타난다. 날된장 냄새에는 질겁하면서도 아이는 삭힌 콩잎에 끓인 된장을 듬뿍 얹어 먹는 걸 즐기는 것이다. 그게 때로는 ‘천상의 맛’이라 극찬하면서. 햄 따위의 인스턴트 식품에 익숙하게 기르진 않았지만, 이들의 식성이 피자와 햄버거 따위와 그리 멀지 않은데도 그렇다.

 

콩잎쌈은 우리가 경주 근방에 살 때 배운 음식인데, 경주와 영천 등 경북 남부지방에서 두루 전하는 음식인 듯하다. 처음에는 저런 걸 먹기도 하나 했는데 몇 해를 살면서 그 맛을 익혔고, 아내는 지금도 가끔씩 콩잎쌈을 준비하곤 한다. 불행하게도 내가 사는 안동 지방에서는 콩잎쌈을 먹지 않는다. 시장에 나가도 콩잎을 살 수가 없다.

 

된장과 밀가루 풀에 삭힌 콩잎은 새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거기 뜨거운 밥과 된장을 얹으면 그 맛은 한층 진해지면서 각별한 미각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태 전 여름, 친구들과 함께 밀양의 어느 냇가에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우리는 그런 미각의 공감대를 확인하면서 즐거워했다. 미각을 통해서 동시대인으로서의 연대를 새롭게 깨쳤던 셈이다.

쇠비름나물엔 60년대의 습기가

▲ 쇠비름나물. 쇠비름은 약용으로도 쓰는데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여 장명채라고 한다. 서양에서도 상추와 더불어 샐러드에 쓴다고 한다.

경주에는 콩잎쌈이 있는 대신 내 고향에서 즐겨 먹는 쇠비름나물을 먹지 않는다. 거기 사람들은 참비름은 먹지만, 쇠비름을 먹는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린다. 쇠비름은 한여름 밭둑에 지천으로 자라는 일년초인데, 어릴 적 그 지렁이 빛깔의 단단한 줄기를 구부려 눈자위에다 끼워서 억지로 눈을 커다랗게 확장해 두는 장난을 했던 풀이다.

 

경남에서 자란 한 친구는 쇠비름 식용 여부를 가르는 것은 ‘경제력이나 생산력의 차이’이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는데 글쎄, 경남이 경북보다 넉넉했다는 자료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들에서 지천으로 나는 풀이니 어렵던 시절에는 ‘구황식물’ 노릇을 했을 수는 있겠다.

 

쇠비름나물은 푹 데쳐서 된장으로 무치고, 고추장으로 비비면 각별한 맛을 낸다. 줄기에 밴 그득한 물기와 말 이빨을 닮은 조그마한 잎에서 우러나는 담백하면서도 싸한 맛에서 아내와 나는 60년대의 축축한 습기 같은 걸 느끼곤 한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아직 이 나물을 먹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추억해야 할 과거도 없고 되살려야 할 미각도 없다. 그러나 언젠가 아이들은 양친이 흐뭇한 표정으로 달게 먹던 요상한 나물이 곧 자신의 원초적 미각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위험한 섭생의 시대, 된장이 지킨다

언젠가 매스컴을 달구었던 ‘된장녀’라는 말이 나는 퍽 유감스럽다. 그 본뜻이 무엇이든, 여성을 공격하거나 최소한 비하하고 있는 이 유행어에 민족 고유의 전통 음식 이름이 붙어야 하는 이유도 찾을 수 없거니와 ‘아무리 뉴요커 흉내를 내도 결국은 된장’이라는 이 속뜻은 한국인의 원초적 미각을 다분히 폄하하고 있는 까닭이다.

 

나는 스타벅스도 패밀리레스토랑도 알지 못하지만, 뉴요커를 지향하는 젊은 여성보다 콩잎쌈이나 쇠비름나물을 맛있게 먹어내는 우리의 미각이 훨씬 건강하고 원초적이라는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울러 그것이 이 위험한 섭생의 시대를 지켜주는 ‘피의 유산’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9. 7. 7. 낮달

 

 

'된장녀'도 콩잎쌈에는 반해버릴 걸!

피를 타고 흐르는 한국인의 원초적 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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