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세시 풍속·24절기 이야기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by 낮달2018 2019. 1. 3.
728x90

농경생활의 필수 도우미 ‘24절기’

▲ 지구의 태양 공전주기를 24등분 하여 여기에 각각 이름을 붙인 게 24절기다 ⓒ 한국브리태니커회사 이미지 재구성

<오마이뉴스> 블로그에서 2012년 겨울부터 ‘24절기 이야기’를 썼다. 24편은 아니고, 소한과 대한, 우수와 경칩, 입동과 소설 따위를 묶는 방식으로 써서 모두 18편이었다. 상당수가 ‘기사’가 되어 <오마이뉴스>에 실렸다. 티스토리로 옮겨와 이 묵은 글을 정리하다가 이를 새로 쓰기로 했다. 대여섯 해가 흘렀을 뿐인데, 어쩐지 쓰다만 듯한, 개운치 않은 느낌 때문이다. 읽는 이로선 그게 그거일지 모르지만, 그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는 변화는 굳이 말하자면 ‘성장’의 일부로 느껴지기도 하는, 좀 다른 경험이다.

 

‘농경’의 도우미, 24절기

 

입춘(立春), 경칩(驚蟄), 하지(夏至), 처서(處暑), 상강(霜降), 대설(大雪)…….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기후의 표준점’(<다음한국어사전>)인 ‘절기(節氣)’는 농경 생활의 필수도우미였다. 농경으로 본격적인 역사시대를 연 인류는 계절의 변화를 알기 위해 달력을 만들었다. 농경의 처음과 끝이라 할 수 있는 파종과 추수에 가장 좋은 시기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24절기가 만들어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농경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도 절기를 통해 계절감을 환기한다. 아직 바람이 찬데도 ‘입춘’이라면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곧 그 바람 속에 봄의 온기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처서’라 해도 ‘웬걸, 벌써’ 하다가도 며칠 지나지 않아 더위가 물러가고 있다는 걸 새삼 깨우치곤 하는 것이다.

 

이처럼 절기와 친숙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게 어떤 경로로 만들어진 것인지 잘 모른다. 꽤 어려운 한자를 쓰는 한자어여서 누구나 그게 음력(陰曆)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지레짐작하기 쉽지만, 이는 반만 맞다. 우리가 쓰는 음력은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주기를 기본으로 하여 날짜를 계산하는 역법인 태음력에 태양력의 차이를 보정한 역법인 ‘태음태양력’이기 때문이다.

 

고대엔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정확한 공전주기는 알기 어려웠던 반면, 달의 변화는 눈에 잘 띄므로 대부분 고대 문명은 태음력에 바탕을 둔 달력을 만들어 썼다. 그러나 태양의 운행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져 계절의 흐름과 달이 일치하는 태양력과 달리 달의 위상 변화를 기준으로 만든 순수 태음력은 계절의 변화와 날짜가 맞지 않았다.

 

우리가 쓰는 역법은 ‘태음태양력’, 절기는 양력이 기준이다

 

지구의 평균 공전주기인 태양력의 1년은 365.2422일인데 비해, 태음력의 1삭망월(朔望月: 달의 음력 초하루에서 다음 초하루까지 이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9.53일이기 때문에 태음력의 12달과 태양력의 1년은 약 11일 정도의 차이가 난다. 이 차이를 보정해 주는 것이 몇 년에 한 번씩 13번째 달, 즉 윤달을 둔다. 이처럼 윤달을 두어서 태음력과 태양력의 차이를 보정한 달력을 태음태양력이라 하는데, 오늘날의 음력을 비롯하여 역사상 대부분의 태음력이 이에 해당한다.

 

오래 음력을 써오면서 우리는 음력으로 이루어지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고유의 명절인 설날과 추석, 단오 따위가 모두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진 날이고, 양력 1년을 나누는 기준도 ‘달(月)’이다. 날짜와 시간을 셈하는데 ‘달’을 쓰는 것은 우리가 달을 기준으로 한 역법의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음을 방증한다. 우리의 삶과 친숙한 24절기를 음력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24절기가 처음 고안된 것은 중국의 고대 왕조 주나라 때였다. 태음력은 날을 세는 데는 유효했지만,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일어나는 기후의 변화는 반영할 수 없었다. 이에 그들은 천문학 지식을 동원, 지구의 태양 공전주기를 24등분 하여 여기에 각각 이름을 붙였다.

 

24절기는 “태양의 운동에 근거한 것으로 춘분점(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해 적도를 통과하는 점)으로부터 태양이 움직이는 길인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15˚ 간격으로 나누어 24점을 정하였을 때, 태양이 각 점을 지나는 시기”를 이른다.

 

입춘으로 시작하여 대한으로 끝난다

 

절기는 이처럼 음력(실제로는 태양태음력)을 쓰는 농경사회에서 필요에 따라 태양의 운동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양력의 날짜와 일치하게 된 것이다. 24절기는 양력으로 매월 4∼8일 사이와 19∼23일 사이에 온다. 절기와 절기 사이의 간격은 대체로 15일이지만 때에 따라 14일이나 16일이 되기도 한다. 이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형이어서 태양을 15도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24절기는 ‘입춘’으로 시작하여 ‘대한’으로 끝난다.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秋夕) 같은 속절(俗節 : 제삿날 이외에 철을 따라 사당이나 선영에 차례를 지내는 날)은 24절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유래된 속절로 추정되는 삼복(三伏 : 초복·중복·말복)도 마찬가지다.

 

24절기는 춘하추동 4계절에 각각 6개로 나뉜다. 봄은 입춘에서 시작하여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까지, 여름은 입하에서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까지다. 가을은 입추에서부터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까지, 겨울은 입동에서 시작하여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까지다. 입춘이 24절기의 처음이고, 대한이 마지막 절기인 것이다.

▲ 입춘즈음 대문에 붙인 입춘첩. 절기상 한 해의 시작은 입춘이다. 띠를 가르는 기준도 입춘이다.ⓒ 한겨레사진마을

한 해의 시작이 흔히 음력 1 1일은 설날부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절기상 한 해의 시작은 입춘이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은 황금돼지띠의 해라면서 올해 태어난 아이는 모두 황금돼지띠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띠를 가르는 기준도 입춘이다. 설날은 음력 1 1일일 뿐, 정확히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은 태양의 변화를 기준으로 정한 입춘인 것이다.

 

올해 입춘은 설날 하루 전인 2월 4일이다. 설날은 2018년엔 2월 16일인데 올해는 2월 5일로 들쭉날쭉하지만, 입춘은 하루 이틀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대체로 2월 4일경이다. 작년도 2월 4일이었다. 결론적으로 24절기는 음력 날짜로 정하는 날이 아니라 태양의 이동을 기준으로 한 양력 날인 것이다.

 

절기상 한 해의 시작은 ‘입춘’이다

황금돼지띠를 두고 항간에서 이는 해프닝은 서양에서 온 양력과 동양의 가 잘못 연결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오방색(五方色)이 띠 앞에 붙어 청마’, ‘흑룡’, ‘백호 등의 별칭으로 불리면서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날 시기를 고르게끔 된 것이다.

 

좋은 사주(四柱)를 골라서 제왕절개 시간을 조정하는 이들도 있다 하니 계획 임신 따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운명론에 대한 태도를 떠나 인간의 영역 너머에 있는 삶과 죽음, 행과 불행, 부귀와 빈천까지도 인간이 개입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시대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기해년 황금돼지띠의 기준은 오는 2월 4일, 입춘 이후부터다. 2019년에만 낳으면 돼지띠가 되는 건 아니다. 기실 날것 그대로의 삶이란 태어난 때에 따라 운명이 엇갈린다는 황당한 믿음의 저편에 있지 아니한가 말이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출생 시간마저 조정하기에 이르렀지만, 한국인들은 24절기를 통해 때와 계절을 가늠하고 흐르는 세월을 환기하며 살아간다. 이 난만한 21세기 산업사회에서도 여전히 농경사회의 관습을 버리지 못하는 한국인들은 어쩌면 전근대와 근대의 경계를 쉬 떠나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2019. 1. 3. 낮달

 

 

계절별 절기 바로 가기

▪ 

입춘, 봄이 멀지 않았다

▪ 여름

입하(立夏), 나날이 녹음(綠陰)은 짙어지고

▪ 가을

입추(立秋), 어쨌든 여름은 막바지로 달려가고

▪ 겨울

입동(立冬), 겨울의 문턱을 넘으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