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드의 단편 <안내를 부탁합니다>
뜻밖에 폴 빌라드의 <이해의 선물>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은 듯하다. 읽은 이는 물론이거니와 처음 이 글을 만난 이들도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작품의 자연스런 전개와 진정성 탓이었으리라. 그의 유년 시절의 성장통을 그린 자전적 에세이 《Growing Pains》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인 <이해의 선물>은 누구나 거치는 유년 시절, 그 성장의 민감한 순간을 스쳐 간 보편적 공감을 그리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을 굳이 장르로 구분할 필요는 없겠다. 소설이든 수필이든 아름답고 따뜻한 글이니 말이다. )
댓글을 달아준 선배 교사가 <이해의 선물>이 ‘소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이는 또 그의 수필 <안내를 부탁합니다>를 ‘강권’했다. 요샛말로 하면 ‘강추’다. 물론 나는 그 글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폴 빌라드’로 검색하면 어김없이 뜨는 목록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나는 꼼꼼하게 <안내를 부탁합니다>를 읽었다. 강권이든 강추가 마땅한 작품이다. 그것은 소년과 전화 안내원 사이의 오랜 세월에 걸친 우정과 교유의 기록이다. 전화가 막 보급되던 시절의 전화 안내원이라고 해서 이웃 소년의 상담자 역할까지 했을까. 자기 일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이해 없이는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플라치도님께서 이야기해 주어서 폴 빌라드의 <이해의 선물>이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문예출판사, 2007)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는 걸 알았다. 댓글을 단 후배의 말대로 <이해의 선물>은 원제가 <The Gift of Understanding>이다.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이 책엔 <안내를 부탁합니다>도 물론 실려 있다. 나는 책을 내 보관함에다 쟁여 두기로 했다.
안내를 부탁합니다
폴 빌라드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여러 이웃 중에서 거의 첫 번째로 전화를 설치했다. 광택이 나는 참나무 전화 상자가 층계참 벽면에 단단히 부착되던 그날의 일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상자 옆에는 반짝이는 수화기가 매달려 있었다. 105번. 나는 그때의 전화번호까지도 기억한다.
나는 너무 어려서 전화기에 키가 닿지도 않았지만 엄마가 전화기에 대고 대화하는 것을 호기심에 차서 듣고 했다. 한번은 엄마가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출장 중이신 아버지와 얘길 나누게 해주었다. 그것은 마술 그 자체였다!
얼마 후에 나는 그 경이로운 장치 속 어딘가에 굉장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여성의 이름은 '전화 안내원'이었다. 그리고 모르는 다른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물을 수 있었다. 또 우리 집 시계가 고장 났을 때도 안내원은 즉각적으로 정확한 시간을 알려 주었다.
이 수화기 속의 요정과 내가 첫 번째로 대화를 나눈 사건은 엄마가 이웃집에 놀러 간 사이에 일어났다. 지하실에서 연장통을 갖고 놀던 나는 그만 망치로 손가락을 후려치고 말았다. 아픔을 참을 수가 없었지만 아무리 울어도 소용없을 것만 같았다. 집에는 내게 동정심을 표시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욱신거리는 손가락을 빨며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계단이 있는 곳까지 이르렀다. 그때 전화가 눈에 띄었다. 아, 그렇다! 나는 재빨리 거실에 있는 앉은뱅이 의자를 낑낑거리며 층계참까지 끌고 올라갔다. 의자에 올라선 나는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갖다 댔다. 그리고는 내 머리보다 약간 위쪽에 있는 전화기 송화구에 대고 “안내원!” 하고 불렀다.
찰칵 하는 소리가 한두 번 난 뒤 작지만 뚜렷한 목소리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안내원입니다!”
나는 전화기에 대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다쳤어요. 엉엉.”
이제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안내원이 물었다.
“엄마가 집에 안 계시니?”
나는 계속 엉엉 울면서 대답했다.
“집엔 나밖에 없어요.”
“피가 나니?”
“아니요. 망치로 손가락을 때렸어요.”
그녀가 물었다.
“집에 얼음통이 있니?”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럼 얼음 한 조각을 깨서 네 손가락에 대고 있으렴. 그럼 아픔이 가실 거야. 얼음 깰 때 조심하구.”
그러면서 그녀는 부드럽게 타일렀다.
“이제 그만 울어. 괜찮을 테니까.”
그 사건 이후 나는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전화 안내원을 찾았다. 내가 지리 숙제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면 그녀는 필라델피아가 어디쯤 있고 오리노코 강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그 낭만적인 강에 대해 들으면서 나는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꼭 그 강을 탐험해 보겠노라고 결심했다. 또 그녀는 내 산수 공부를 도와주었으며, 전날 내가 공원에서 잡아온 애완용 얼룩다람쥐가 과일과 열매만을 먹는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또 우리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카나리아 새가 죽었을 때도 나는 안내원을 불러 그 슬픈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가만히 듣고 있더니 어른들이 흔히 아이들을 달랠 때 하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난 슬픔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토록 아름다운 노래로 온 가족에게 기쁨을 주던 새가 왜 갑자기 깃털이 수북이 빠진 채로 새장 바닥에 죽어 있어야 하는지 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 큰 슬픔을 눈치챈 듯 조용히 말했다.
“폴, 노래 부를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결코 잊으면 안 돼.”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다소 진정이 되었다.
다른 날도 전화기에 매달렸다. 이제는 귀에 익숙해진 목소리가 “안내원입니다.”하고 말했다.
나는 물었다.
“‘붙이다’를 어떻게 써요?”
“벽에 붙이는 걸 말하니, 아니면 편지를 부치는 걸 말하니? 벽에 붙이는 것일 때는 ‘붙-이-다’라고 써야 해.”
그 순간이었다. 나에게 겁주는 걸 광적으로 좋아하는 두 살 위의 누나가 계단에서 점프를 하며 내게 덤벼들었다. 그리고는 “우히히히!” 하고 귀신처럼 고함을 질렀다. 나는 놀라서 앉은뱅이 의자에서 넘어졌다. 그 바람에 수화기가 전화통에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둘 다 겁에 질렸다. 안내원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수화기를 잡아 뽑는 바람에 그녀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닌가 몹시 걱정이 되었다.
몇 분 뒤 어떤 남자가 현관에 나타났다.
“난 전화기 수리하는 사람이다. 저 아래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안내원이 너희 집 전화에 문제가 생겼다고 알려 주었다.”
그 남자는 내 손에 들려져 있는 수화기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난 거니?”
난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걱정 마라. 일이 분 정도면 다시 연결할 수 있으니까.”
그가 전화통 뚜껑을 열자 전선 줄과 코일이 미로처럼 연결된 내부가 드러났다. 그는 수화기 코드를 이리저리 만지고는 작은 십자드라이버로 나사 몇 개를 조였다. 그리고는 후크를 몇 차례 누르고 나서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여보세요. 나 피터요. 105번 전화는 이제 아무 이상 없어요. 아이의 누나가 아이를 미는 바람에 수화기 코드가 전화기에서 빠진 것뿐이에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은 뒤 머리를 쓰다듬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 모든 일이 태평양 북서 해안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내가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우리 집은 대륙 건너편의 보스턴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내 가정교사를 잃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안내원은 옛날에 살던 집의 나무상자로 된 그 낡은 전화통 속에만 살고 있었다. 나는 웬일인지 새로 이사 간 집의 거실 테이블 위에 날렵한 새 전화기를 시험해 볼 마음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어서도 어렸을 때의 그 대화에 대한 기억들이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종종 인생에 대한 의심과 불안과 순간들이 닥쳐올 때면 나는 전화 안내원에게서 올바른 해답을 들었을 때 느꼈던 그 안도감과 마음의 평화를 회상하곤 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인내심과 친절한 마음을 갖고 한 어린 소년을 대해 주었는가를 깨닫고 나는 뒤늦게나마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몇 해가 흘러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다시 미국 서부로 가던 도중에 내가 탄 비행기가 시애틀에 도착했다. 나는 다른 비행기로 갈아탈 때까지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당시 그곳에서 아이의 엄마가 되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누나에게 전화를 하면서 15분을 보냈다. 그러다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옛날에 살던 고향 마을의 전화 안내원에게로 다이얼을 돌렸다. 그리고는 “안내원 부탁합니다.” 하고 말했다.
기적처럼, 나는 다시금 그 작고 뚜렷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는 바로 그 목소리였다.
“안내원입니다.”
나는 미리 그럴 계획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붙이다’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주시겠어요?”
한참 동안 침묵이 있었다. 그런 다음 부드러운 대답이 흘러나왔다.
“지금쯤 손가락이 다 나았겠지?”
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아직도 옛날의 당신이군요. 그 시절에 당신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아마 당신은 모르셨을 거예요. 이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 시절에 네가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넌 아마 몰랐을 거다. 내게는 아이가 없었지. 그래서 난 언제나 네가 전화해 주기를 기다렸단다. 내 얘기가 참 바보처럼 들리지?”
그렇지 않았다. 전혀 바보처럼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나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내가 얼마나 자주 그녀를 생각했는가를 말했다. 그리고 첫 학기를 마치고 방학 때 누나를 만나러 올 텐데 그때 다시 전화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물론이지. 네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게. 샐리를 찾으면 돼.”
“그럼 안녕히 계세요. 샐리.”
안내원이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렸다. 난 말했다.
“다음번에 또 얼룩다람쥐를 만나면 과일이나 열매를 먹으라고 말해 줄게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하렴. 난 네가 오리노코 강을 탐험할 날을 기대하고 있으마. 잘 지내라. 안녕.”
정확히 석 달 뒤 나는 다시 시애틀 공항으로 돌아왔다. 다른 목소리가 대답했다.
“안내원입니다.”
나는 샐리를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샐리의 친구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네, 아주 오래된 친구죠.”
“그럼 안 좋은 소식이지만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샐리는 지난 몇 해 동안 시간제로만 여기서 일을 했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샐리는 5주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잠깐만요. 지금 전화 거신 분 이름이 빌라드라고 했나요?”
“네.”
“샐리가 당신에게 전해 주라고 메시지를 남겼군요. 짤막한 메모를 남겼어요.”
나는 얼른 알고 싶어 물었다.
“무슨 내용이죠?”
“이렇게 적혀 있군요. 제가 읽어 드릴게요. “빌라드가 전화를 하면 이렇게 전해 주세요. 나는 아직도 노래 부를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믿는다구요. 그렇게 말하면 무슨 뜻인지 알 거예요.” 이게 전부군요.”“”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샐리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알았다.
2009. 6. 23. 낮달
배려와 관용으로 자라는 아이의 세계 - 빌라드 <이해의 선물>
**덧붙임 : 이 글을 읽고 어떤 독자분께서 <이해의 선물>이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라는 사실을 환기해 주었다. 문예출판사에서 펴낸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를 통해 확인한 결과 독자분의 지적은 사실이었다. 따로 글을 쓰는 대신 여기 덧붙이는 글로 사실을 밝혀둔다. 지적해 주신 독자분께 감사드린다. 2016.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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