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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선택, ‘노년의 거취’를 생각한다

by 낮달2018 2020.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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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요양원’ 과 극단적 선택

▲ 한 노인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치매 노인이 두 손이 묶인 채 침대에 누워 있다. ⓒ <한겨레>

일곱 해 전,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실 때다. 인근 병원에 입원했다가 결국 거기서 세상을 떠나셨다. 칠팔 명의, 거의 회생 가능성이 없는 중증의 노인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병실이었는데, 그나마 가족들이 찾아와서 환자를 살펴보고 가는 가족은 몇 되지 않았다. 아내는 병실을 드나들 때마다 한숨과 함께 눈물짓곤 했다.

 

“거긴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소예요. 살아 있기만 하지, 그게 산목숨이야. 송장들이지…….”

 

그 송장과 다름없는 산목숨 가운데 자신을 낳은 육친이 누워 있고, 그것이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이라는 사실을 아내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장인어른은 거기서 고단한 당신의 삶의 마감하셨고, 우리는 고향 선영에서 한 줌의 재로 당신을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노인병원, 어머니의 경우

 

중증의 환자들을 별 대책 없이 수용하고 있는 그런 병실이 제도화된 게 ‘요양병원’이 아닌가 싶다. 이 ‘주로 장기 입원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병원’은 이제 노환에 시달리는 부모님을 달리 모실 방법을 찾지 못한 자식들에겐 맞춤한 도우미가 된 듯싶다.

 

이듬해 세상을 떠난 맏형수가 마지막 지상의 날을 보낸 곳도 요양병원이었다. 병실을 관리하는 한두 명의 간병인의 보호에 의지해 마지막 실낱같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그 병실에 드리운 적요는 어둡고 쓸쓸했다. 외롭게 살았던 형수의 마지막 가는 길이 그나마 쓸쓸하지 않았던 건 다행이었다.

 

그보다 더 오래된 일로 치매를 앓고 계시던 어머니를 모실 때다. 한번은 너무 힘이 들어서 우리 내외는 어머니를 인근의 노인전문병원으로 모셨다. 상황의 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어머니와 헤어져 병원 문을 나서는 우리 내외의 마음은 착잡했다.

 

의사는 ‘자책하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 손으로 보살펴 온 육친을 낯선 병원의 간호사와 간병인에게 맡기고 나오는 기분은 뭐라 설명할 수 없었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의무를 불경하게 포기했다는 느낌에서 헤어나기 어려웠고 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정오께 우리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밤새 불편했던 마음도 다스려야 했고 어떻게 지내시는지가 궁금했던 탓이다. 어머니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우리를 맞았는데 어머니의 입성을 보고 우리는 말문을 닫았다. 용변을 제대로 처리해 드리지 않았는지 새 옷을 입고 있는데도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의 상상과는 너무 다른 것이었다.

 

“모시고 가자. 안 되겠다.”

“그래요. 도대체…….”

 

일 년쯤 후에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편하게 눈을 감으셨다. 7년 가까이 모시던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우리는 두고두고 그 하룻밤의 병원행을 입에 올리곤 했다. 그건 정말 아니었어. 그때, 모시고 온 건 정말 잘한 거야……. 맞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마음에 짐이 될 뻔했어…….

 

요양병원이나 노인병원의 환자 보호 수준을 가정에서의 그것에 비길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돈벌이에 바쁜 요양병원에서 충분한 숫자의 간병 인력을 쓰지 않는 상황에서 개별 환자들의 위생과 요양 수준을 기대한다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노릇이었는지도 모른다.

▲ 노인요양원 체험 르포(상) 존엄을 빼앗긴 황혼. 2013년 4월 22일 1면 ⓒ <한겨레> PDF

<한겨레> 르포 ‘노인요양원’

 

최근 <한겨레>에서 연재된 ‘노인요양원 체험르뽀’는 노인의 입장에서 이 요양 실태를 들여다본 의미 있는 기사였다.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도 기사는 훨씬 놀라웠다. 노인들은 본인들의 뜻보다는 자식들의 뜻에 의해 요양원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고, 거기서 벌어지는 요양 실태 역시 전혀 ‘인권친화적’이지 못했다.

 

[기사 바로가기]

(상) 존엄을 빼앗긴 황혼

(중) 여기가 모두의 미래다

(하) 값싼 노동, 싸구려 복지

 

노인요양원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고, 거기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요양원으로 온 노인들은 ‘존엄을 빼앗긴 황혼’을 달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니 했지만 요양원 자원봉사의 형식으로 요양원에서 취재한 기자의 체험은 상상을 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다수의 노인들을 보살펴야 하는 요양원의 이른바 ‘케어’ 앞에서 인권은 발가벗긴다. 남자 간호사가 할머니들의 기저귀를 갈고 단체로 목욕을 시키고, 옷도 제대로 입히지 않은 채 복도로 데려가고……. 늙어도 살아 있는 수치심을 배려하지 않는 거칠고 불친절한 보호 앞에서 노인들은 절망 끝에 존엄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 르포(중) 여기가 모두의 미래다. <한겨레> PDF

체념한 할머니의 푸념, “자식 일곱이 있어도 오는데…….” 앞에서 마음이 서늘해진다. 휴대전화까지 빼앗기고 며느리에게 등을 떠밀려 돌아온 이 할머니는 기자의 미래도 점친다. 그래서 기사 제목은 ‘여기가 모두의 미래’다. 그래도 우정 나는 그것들이 나완 무관한 것으로 생각했다.

 

얼마 전 장모님께서 다쳐서 3주가 넘게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셨다. 처음 개인병원에 계시다가 상태가 좋지 않아 종합병원으로 옮겨 중환자실, 집중치료실을 거쳤다. 의식이 없는 상태도 아니니 중환자실의 그 숨 막히는 분위기나 집중치료실에서 기약 없이 치료를 받는 환자들 사이에서 꽤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었다.

 

그나마 당신 곁에는 세 딸이 번갈아 가며 병상을 지켜주고 수발을 드니 만년에 뜻하지 않은 호강을 하신 셈이었다. 나중에 번거롭다고 3인실에 계셨는데 옆자리에 거의 종일 혼자 지내는 노인 환자들을 보면서 마음이 적이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차도도 없는 노인을 간병하는 가족들이 마치 짐짝 취급하듯 노인들에게 막 대하는 것을 보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연세보다 회복 속도가 빨라서 생각보다 일찍 퇴원했는데, 병원을 나서면서 장모님은 딸들에게 다짐이나 두듯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는 나중에 요양원에는 안 간다. 그리 알아라.”

 

“나는 요양원 안 간다. 그리 알아라.”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두 안다. 딸들은 아버지도 그렇게 배웅한 것이다. 그건 어쩌면 자식들의 선택 이전의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노인을 요양원으로 모시는 게 반드시 자식들이 편하자고 하는 선택인 것만은 아니다. 벌어먹는 게 힘들어 노인을 모시지 못할 수도 있고, 마땅히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일찍 깨어난 새벽녘에 아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 그게 우리의 문제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게 우리 자신의 문제로 다가올 것이라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안다. 우리는 각각 자신을 중심에 둔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모두 ‘내가 먼저 가고 당신이 남는 경우’거나 ‘내가 건강하고 당신이 병든 경우’다. 그러나 역시 현실감이 떨어지는 건 아직 우리가 젊기 때문이다.

 

“우리 애들도 우리를 요양원으로 보낼까요?”

“그걸 아이들에게 맡기면 안 되지. 결정은 우리가 해야지.”

“병들고 돌볼 형편이 안 되면 별수 있겠우?”

“…….”

“당신이 아프면 내가 돌보지, 뭐. 그러니 건강해야지.”

“건강이 누구 맘대로 되는감?”

“하긴…….”

“하나가 먼저 가고 하나만 남으면 어쩔 거유? 가라면 가야지.”

“……. 글쎄, 말이야.”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건 아직 우리가 건강하고 젊기 때문이다. 그건 그게 당장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일종의 자신감이기도 하다. 우리는 잠깐 다시 노인병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나오던 어느 날을 생각하면서 거듭 그게 얼마나 올바른 선택이었는가를 새삼스레 반추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80대 노부부가 선택한 죽음

 

▲ <한겨레> 삽화(5. 15.)

오늘 자 <한겨레>에 한 노부부의 죽음이 실렸다. 치매 아내(84)를 돌보아 왔던 80대 남편(89)이 아내와 함께 승용차로 저수지에 들어가 동반 자살했다. 노인은 자필로 쓴 유서에서 “너무나 힘들다. 내가 죽고 나면 아내는 요양원에 가야 하니까. 내가 운전할 수 있을 때 함께 가기로 했다”라고 하는 내용을 남겼다. [기사 보기]

 

의지할 데 없는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들이 아니다. 7만 평이나 되는 사과·복숭아 농장을 소유한 이 넉넉한 노부부가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 것은 4년 전 아내에게 찾아온 치매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자, 직접 할머니의 수발을 들었다.

 

할머니는 요양원에 가게 될까 봐 불안해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절대 요양원 안 보낸다”며 할머니를 안심시켰지만, 내년에 아흔이 되는 자신이 언제까지 할머니를 돌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남긴 유서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이 길이 아버지, 어머니가 가야 할 가장 행복한 길이다.”

 

노인이 선택한 동행은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을까. 그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하고 묻는 것은 우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 장수 시대, 노쇠한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존엄사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양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그것이 사실에 기초한 것이든 편견이든 고령사회로 질주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넘어야 할 고비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세대의 순환 방식을 정리하는 일, 즉 전통적 부모 부양관과 변화한 그것 사이의 간격이 쉽사리 정리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아내는 이 소식에 혀를 찼다. 그렇다고 죽으면 어떡하노. 노인들은 자신들의 삶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버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안타까운 선택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감내해야 할 이 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우리들 ‘노년의 거취’를 이리저리 생각해 보고 있었다.

 

 

2013 5.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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