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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평창, 혹은 당신과 나 안의 파시즘

by 낮달2018 2020.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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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 2018 동계올림픽 유치 관련한  애국과 비애국 갈라치기

▲ [손문상의 그림세상] 평창의 그늘(2011.7.7.) ⓒ <프레시안> 손문상

어젯밤에는 일찌감치 자리에 들어 아침에 뉴스를 보고 평창 2018 동계올림픽 유치가 성공했다는 걸 알았다. 잘됐죠? 잘됐네. 삼수라더니 성공했으니 다행이야……. 아침을 짓고 있던 아내와 덤덤한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또 뉴스는 그거로 도배를 하겠네. 그럴 만하지 않아요? 그러게 말이야…….

 

모두가 바빴던가. 동료들 사이에서도 평창은 별로 화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앞자리의 후배 교사와 잠깐 이래저래 나라 안이 시끄러우니 필요한 쪽에서 평창을 잔뜩 우려먹지 않겠냐는 얘길 건성으로 나누었을 뿐이다.

 

‘국민’과 ‘비국민’에 담긴 기시감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는 무려 11년 동안 노심초사한 노력의 결과는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하는 게 이상할 게 전혀 없다. 그러나 기쁨에 들떠 장밋빛 전망을 그리는 일만큼이나 이 국민적 프로젝트의 명암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걸 경계하는 일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게 만만찮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고 그 조그만 다름을 흘겨보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제각기 같은 생각을 좇아 그들만의 견고한 성채를 쌓는 일에 골몰하는 것이다.

그런 느낌으로 찜찜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제 오후 뉴스에 한 외교 관료가 트위터에 올린 글귀가 여론을 달구어 놓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의 주역이었던 민동석 외교부 제2차관이 그 주인공이다. 올림픽 유치를 국민의 승리라며 축하하던 그의 말끝은 어째 듣기가 좀 거북했다.

 

“이걸 못마땅해하는 사람은 우리 국민이 아니지요^^”

“누가 2018 평창을 못마땅해하는지 이번 기회에 잘 봐두세요!”

 

당연히 이 협박성 글은 트위터리안들의 리트윗(RT)으로 널리 알려졌고,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사람들이 날린 멘션은 민 차관에 대한 항의와 야유로 이어졌다.

 

“못마땅한 건 아니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낸 세금이 자칫 잘못하여 아름다운 강원의 강산 파괴에 쓰일까 봐 걱정하는 사람인데요, 그게 큰 잘못입니까?”

 

“민 차관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무시하고 난 민동석 외교부 차관에게 국적을 박탈당한 사람이므로 더는 대한민국 정부에 납세할 의무가 사라졌도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외교부 차관이 정한다.”로 개헌이 먼저 되어야 함.”

 

▲ 올림픽 소식은 신문 전면광고로 이어졌다.

상황의 전개가 예사롭지 않자, 그는 곧 ‘부적절한 말을 하여 죄송하다’라고 하며 꼬리를 내림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행정부의 고위 관료가 자발없이 지껄인 언사로 국민의 마음은 적잖이 상한 게 틀림없다.

 

민 차관은 미국산 쇠고기를 보도한 문화방송(MBC)을 고소했다가 법원에서 패소하자 법원을 원색 비난하는 등 물의를 일으켰지만, 지난해 10월 외교통상부 제2차관에 중용된 이다. MBC를 고소하면서도 그는 <PD수첩>의 제작진이야말로 ‘우리 국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MBC의 손을 들어준 재판부에도 그는 같은 혐의를 둔 것은 아니었을까.

 

그가 언급한 ‘국민’이 한국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2008년을 달구었던 광우병 정국에서 상식적인 시민들은 그가 과연 이 나라 대한민국의 관료가 맞는지 의심했을 성싶다.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통상정책관이었던 그는 국회 쇠고기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쇠고기 협상을 ‘미국의 선물’이라고 말해 야당 의원들이 항의하고 퇴장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말이다.

 

민 차관이 말한 ‘우리 국민이 아니다’라고 하는 표현은 상당한 기시감이 담긴 어휘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흔히 쓰이던 ‘비국민(非國民)’이란 낱말 말이다. 그 시절에 비국민이란 ‘황국 신민으로서의 본분과 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통치 계급의 관점에서 이르던 말’(<표준국어대사전>)인 것이다.

 

개인적 ‘양심’과 ‘확신’ 사이

 

정부의 정책이나 시정 방침 따위에 비판적 견해를 보이는 이들을 ‘비국민’으로 바라보면 뜻밖에 비국민은 만만찮을 숫자가 될지도 모른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된 정부 발표를 여전히 뜨악하게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 이들을 ‘국민통합 저해하는 비국민’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또 얼마일 것인가.

 

아닌 ‘국민-비국민’ 타령은 우리 사회가 저도 몰래 빠져들고 있는 전체주의적 상황, 일상적 파시즘의 존재를 강력하게 환기해 준다. 그것은 ‘개개인의 일상과 의식 속에 내면화된 규율 권력, 예를 들어 반공주의, 위계적 언어생활, 규율과 복종의 학교 교육, 군사주의, 가부장주의 등 억압적 이데올로기’(임지현 외 <우리 안의 파시즘>)와 일정하게 이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국가적 경사를 거족적으로(!) 환호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타자’와 맞선 ‘우리’라는 ‘국가공동체’의 규율을 저버리는 배신행위다. 민 차관이 ‘비국민’이라 규정하고 ‘잘 봐두자’라고 제의하는 것은 그런 국가주의적 규율을 전제로 한 발언이다.

▲ 그 자신 기자였던 박선영 의원은 조용환 후보자의 ‘국가관’을 문제 삼았다.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후보자의 ‘국가관’을 문제 삼은 것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들 의원은 조 후보자에게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확신’을 강요했는데 이는 ‘양심의 자유’를 위협하는 전형적인 색깔 공세다. 그리고 거기 묻어나는 것은 역시 파시즘의 그림자다.

 

헌법재판관 후보자에게 헌법에 반하는 양심의 자유를 위협하는 질문 공세를 퍼부은 이들 선량의 전제는 ‘헌법 수호자가 어떻게 국가 정체성을 부정할 수 있는가’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이나 양심보다 국가나 권력을 우위에 두는 전체주의적 사고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었을까.

 

민 차관의 억지는 트위터리안들의 기민한 대처로 이내 묻히고 말았지만, 들려오는 뉴스 속에 일상적 파시즘의 음험한 그림자는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하다. 서부전선 쪽 해병 부대에서 벌어진 참극과 그 후속 보도는 그것의 존재를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해병 부대의 참극, ‘집단’의 논리 앞에 선 무력한 ‘개인’

 

이른바 ‘기수 열외’라는 악습이 지휘관들의 묵인 속에 명맥을 이어왔다는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것은 한 집단 안의 이질적인 성원을 집단 전체가 소외시키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하극상도 공공연히 이루어진다고 한다. 수직 명령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병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유린이고 가학이다. 반인권적 병영 안 악습에 쉬 적응하지 못하거나 성매매 계를 거부한 병사부터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한 관행을 고치려던 부사관에 이르기까지 ‘기수 열외’는 살인적 억압과 그것을 감내하는 게 ‘진짜 해병’이라는 왜곡된 신화의 엄호를 받으며 온존해 온 것으로 보인다.

 

집단의 논리에 동화되거나 그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이질적 성원을 징계하는 것은 선이다. 그 선을 행하는 집단도 역시 정의다. 그런 선을 통해서 강한 조직은 더 강해진다. 그 선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약간’의 ‘무리’는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다. 그래서 더 강한 군대, 더 명예로운 전통이 지켜질 수 있다…….

 

사족이다. MBC 김주하 앵커가 2018 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소식을 전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녀의 눈물에 대해서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고 한다. ‘평창의 험난한 도전사 때문에 흘린 아름다운 눈물’이라는 평가와 ‘그게 국가의 절대 목표도 아닌데…….’라고 하며 머리를 갸웃하는 이들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국가(조직·집단)와 나(개인)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면 무섭다. 국가의 영광이 곧 나의 영광이라는 건 소름 끼친다.”라는 시청자는 과민한 사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소댕(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이들도 넉넉히 품어주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라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인 것이다.

 

 

2011. 7.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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