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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

평생 꺼려 쓰지 않던 모자, ‘방한모’를 마련하다

by 낮달2018 2022.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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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마침내  ‘방한모’를 마련하다

▲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쓰기 시작한 학생모는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는 모자를 잘 쓰고 다니지 않았다.

모자 쓰기를 탐탁잖게 여긴 건 어릴 적부터다. 아마, 모자를 쓴 제 모습이 낯설고 생뚱맞아 보여서였을 것이다. 외진 시골이어서 모자래야 운동회 때 청군과 백군으로 나눠 쓰는 운동모가 다였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모자를 꺼린 이유 가운데에는 여느 사람과 비겨 큰 머리도 한몫했다.  다행히 ‘대갈장군’이나, ‘대두’니 하는 별명을 얻을 만큼은 아니었다.

 

도회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교복과 교모를 갖추어 입어야 했다. 저학년일 때는 무심히 모자를 썼는데, 3학년이 되자 모자가 거추장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고교에 진학한 뒤엔 모자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교문에 들어서면서 꺼내 쓰곤 했다. 어쨌거나 제 모습에 민감했던 사춘기였으니 더 말할 게 없다.

 

학생모에서 군모까지, 모자를 피할 수 없었던 시절

 

졸업하면서 모자에서 해방된 기분도 잠시, 1977년 5월, 논산훈련소로 입영하니 국방색 육군 작업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자를 꺼린다고 해서 군인이 군모를 안 쓸 수는 없다. 신병 기본 훈련 6주를 마치고, 자랑스럽게 군모에 송충이 한 마리를 달고 배치된 부대가 특수전사령부(특전사)였다.

 

‘재경(在京) 부대’라고 해서 은근히 기대했는데 하필이면 ‘공수부대’라니, 운도 참 거시기했다. 사령부에서 휘하 여단에 배속될 때까지 머물면서 받은 모자가 검정 베레모다. 그리고 제대하기 전날까지 그걸 쓰고 지냈다. 그나마 나는 작업모를 쓰기보다는 베레모가 한결 나았다.

 

1980년 2월, 33개월 만에 만기 제대하면서 모든 피복과 보급품을 반납하고 이른바 ‘개구리복(제대복)’과 제대모를 받았다. 요즘 전역병이 받는 세련된 위장무늬 전투복과는 좀 다른 얼룩무늬가 있는 예비군복이었다. 글쎄, 예비군 훈련은 대학에서 약식으로 받았고, 졸업한 뒤에 동원훈련은 딱 한 차례만 들어갔으니, 예비군 모자를 쓸 일은 별로 없었다.

▲ 부득이 썼던 모자들. 왼쪽부터 입대해서 쓴 육군 작업모, 공수특전단의 베레모, 그리고 만기제대할 때 쓰고 나온 예비군 모자.

졸업하고 여학교에 임용되어 교단생활을 시작했는데, 첫 두 학교까지는 모자를 전혀 쓰지 않았다. 체육대회나 일과 후 친목 모임 등에서 배구 경기를 할 때엔 마땅한 모자도 없긴 했지만, 나는 햇볕에 고스란히 그을리는 걸 선택했다.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쓰고 우스꽝스러워지기보다는 그게 낫다고 여긴 거였다. 햇볕에 그을리는 걸 힘들어하지 않을 만큼 젊었을 때다.

 

햇볕을 고스란히 견디기 어려운 나이

 

5년여 해직 시기를 거쳐 마흔을 앞두고 복직하니, 햇볕을 고스란히 견딜 나이가 지나 있었다. 나는 밀짚모자를 쓰고 그해의 햇볕을 견뎌냈다.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산에도 가야 해서 여러 번 챙 있는 등산모를 샀다. 그러나 무엇보다 머리에 맞지 않아(소도시에선 큰 치수의 모자를 구하기 어려웠다) 쓰기가 꺼려져 나는 그걸 쓰고 나간 적이 없다.

 

처음으로 쓰고 나간 모자가 어느 날 아내가 백화점에 가서 사 온 헝겊으로 된 뚜껑 없는 챙 모자다. 풀이 없어 금방 모양이 허물어지긴 해도 가장 무난하고, 챙이 커서 햇볕도 잘 가려주는 이 모자를, 한 해 몇 차례에 불과하지만, 좋이 10년 넘게 썼다. 올여름에도 이웃 마을을 돌아오는 산책길에 이 모자를 생광스럽게 썼다.

 

가을로 접어들자, 뚜껑 없는 모자를 쓰고 다니기 민망해서 지난해 가을에 대구 서문시장에서 사 온 등산모를 썼다. 챙에 철심이 들어 있어 얼마간 모양을 잡아주는 놈이었다. 치수가 넉넉하여 쓰고 다니는 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찬바람이 돌자, 겨울용 모자가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 햇볕을 맨살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 이용한 모자. 왼쪽은 천으로 만든 캡, 10여년 썼다. 오른쪽은 작년에 서문시장에서 산 등산모.

나이 들수록 머리가 선득해져서 …

 

잘 아는 의사 친구로부터 겨울에는 모자를 써서 머리를 보호하는 게 좋다는 얘길 여러 차례 들었다. 혈압 문제가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는 얘길 들으면서도 털모자를 쓴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난히 이런저런 질환에 시달린 올해는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한 정수리를 덮을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며칠 전 아내와 같이 대구 서문시장에 가서 방한모를 하나 샀다. 노인들이 흔히 ‘큰 장(場)’이라고 부르는 곳이라 온갖 모자로 빼곡한 가게에서 모자 고르기도 쉽지 않았다. 일단 머리에 맞고, 쓴 모습이 무난한 것으로 하나를 골랐다. 소재가 푹신한 모직으로 된 모잔데 몇 가지 색상 가운데 잿빛을 선택했다.

 

내가 모자를 쓴 모습을 보며 아내는 웃음을 참으면서 그만하면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평생 모자를 쓴 모습을 잘 보지 못한 터라 낯선 남편 모습이 좀 웃겼던 모양이었다. 가을에 쓴 등산용 모자도 한참 쓰고 다니니 웬걸, 은근히 어울린다고 한 바 있었다.

 

▲ 대구 서문시장에서 사 온 방한모.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생전 모자와 별 연이 없이 살아온 내가 늘그막에 모자를 쓰게 될 줄이야.

썩 보기 좋지는 않더라도 이번 겨울은 이 모자로 날까 싶다. 물론 산책길에만 쓰지, 어디 외출할 때 쓸 일은 없을 터이다. 처음엔 어색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나는 물론, 가족들도 익숙해질 것이다. 늙수그레한 60대가 좀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쓴다고 해서 눈여겨볼 이는 아무도 없다.

 

모자 뒤통수 부분에는 추울 때 귀를 덮으라고 ‘귀달이’라는 천을 달아놓았는데, 내려보니 제대로 귀를 덮기에는 위치가 어중간했다. 그건 굳이 내리지 않더라도 머리를 따뜻하게 해 주는 것으로도 족할 듯하다. 귀가 시리면 작년에 사둔 귀마개가 있으니까. 오늘 아침에 처음 모자를 쓰고, 산책을 다녀왔다.

 

적당한 무게감도 있고, 머리에 잘 붙어서 온기를 갈무리해 주니 그만이었다. 실외 활동이니 굳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지만, 나는 방한을 겸해서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코로나19 팬데믹 덕분에 겨울철 통과 제의처럼 앓아야 했던 독감을 건너뛸 수 있었던 게 마스크 덕택이 아니던가 말이다. 지내봐야 알 일이긴 하지만, 독감 예방주사도 맞았으니 올겨울도 감기를 앓지 않고 편안히 지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세밑을 지내고 있다.

 

 

 

2022. 12. 1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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