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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

연식(年式), ‘건강’과 ‘노화’ 사이

by 낮달2018 2021.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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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를 ‘연식’이라 부르듯 인체도 오래 쓰면 낡는다

▲ 어깨와 목이 아프더니 손가락에 통증이 왔고, 이제 다시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 pixabay

나는 어버이로부터 비교적 건강한 몸을 물려받았다. 글쎄, 병원에 입원한 게 한창 젊은 시절에 다쳐서 몇 주 동안 입원한 게 고작이니 건강하다고 말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터이다. 흔한 고뿔도 콧물과 기침으로 며칠을 버티면 시나브로 낫곤 했고 남들은 곤욕을 치른다는 몸살로도 몸져누워본 적이 없을 정도다.

물론 젊을 때 얘기다. 감기가 쉬 낫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건 50대 후반부터였던 듯하다. 그러다가 신종 플루에 걸려서 곤욕을 치른 게 퇴직 무렵이다. 지난해부터 아내와 함께 보건소에서 시행하는 독감 예방주사를 챙겨 맞게 된 것은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아서다.

아픈 건 일시적 현상 아닌 ‘노화의 과정’이다

목과 어깨 부위의 통증이 쉬 가시지 않다가 마침내 손가락 연골이 닳았다는 진단을 받기까지 꽉 찬 1년이 흘렀다. 손가락은 열흘쯤 약을 먹었더니 어디 닿을 때마다 자지러지는 듯한 통증은 멎었다. 대신 가만히 있어도 예의 부위가 찌릿찌릿하거나 따갑다고 할 만한 그런 증세가 이어졌다. [관련 글 : 손가락 연골이 다 닳았다고? 설마!]

그러나 나는 더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까짓것, 염증이라면 그만하면 가라앉았을 테지, 정 무엇하면 평생 몸에 붙이고 가면 되지 뭐……. 그게 만용이든 어리석음이든 내가 감당하겠다는 요량이었을까. 그런데, 가족여행을 앞두고 오른쪽 다리가 심상치 않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매주 네다섯 차례 산을 다니면서도 크게 이상을 느낀 적이 없었다. 단지, 하산 내리막길에서 가끔 무릎에 부담을 느끼긴 했다. 북봉산을 오르다가 산자락의 야산을 타는 것으로 경로를 바꾸면서 더는 그도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걸을 때는 잘 몰랐는데 무릎을 굽히면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에 둔중한 통증이 느껴지는 거였다. 마침 이웃 지역에서 들른 벗이 저도 얼마 전에 어깨 고장이 나서 병원에 다녀왔다며 은근히 겁을 주었다. 얼른 병원에 가 보세요. 그냥 놔둘 일이 아니니까.

5박 6일 동안의 가족여행에서 마침내 다리는 슬슬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자유여행인지라 이래저래 걷는 일이 많았다. 상비약으로 가져간 파스를 붙였는데도 통증은 간간이 이어졌다. 돌아와서 하루를 쉬고 어제, 예약해 둔 병원을 찾았다.

증상을 들은 의사는 침상에 환자를 눕히고 무릎 주변을 만져가면서 통증 부위를 찾아냈다. 찍은 방사선 사진을 보면서 의사는 무릎에도 연골이 많이 닳은 거로 보인다고 말했다. 초음파로 보면 드러날 것 같다. 뼈는 괜찮은데, 위쪽 부분의 뼈가 부딪히면서 통증이 있다. 무릎 부위가 부었고, 거기 물이 좀 찼다. 일단 약물치료를 하자…….

건강한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이 가리키는 게 그거다. 젊은 사람은 늙은이들이 갖가지 병치레 하는 걸 의아하게 여기기도 한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나이 든 어른들은 아픈 데도 많지. 어쩜 저리 하루를 병원 나들이로 지새나. 말은 안 해도 그런 심정이었다.

병원에 가면 내 호칭은 두 개로 나뉜다. 간호사들은 내게 ‘아버님’이라 부르고, 의사는 ‘어르신’이라 부르는 것이다. 한때는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게 마뜩잖았다. 한 번도 자신을 ‘어르신’이라 여겨보지 않은 이들이 그렇게 불릴 때 그는 공경받는 대가로 꼼짝없이 원치 않는 ‘어르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심심찮게 병원을 드나들면서 나는 요즘 왜 이리 아픈 데가 많아졌나, 하고 대수로이 넘겨버렸었다. 그러나 어제 병원에서는 새삼스럽게 ‘어르신’이란 호칭이 예전과 달리 거슬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아픈 데가 많아진 게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어쨌든 노화의 결과물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얼마 전 만난 일흔의 농부는 나이에 따른 건강의 정도를 ‘연식(年式)’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흔히들 자동차의 생산 연도를 이르는 이 표현을 인간의 삶에 빌려온 셈인데, 기관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노후화되듯 인간의 몸도 세월 앞에서 같은 과정을 겪는다는 의미로는 맞춤한 것이었다.

▲ 노화란 받아들이는 것과 무관하게 진행되어 가는 것이다. ⓒ FreeQration

세월 앞에 장사 없는 것, 모든 신체 부위가 60년 넘어 쓰이면서 저마다의 기능이 무뎌지고 떨어지기 마련이다. 눈에 띄게 노화가 드러나는 부분이 눈과 귀, 이와 머리카락 같은 부위다. 그러나 나는 머리카락이 빠진 걸 제외하면 눈도 근시여서 스마트폰을 안경 없이 들여다볼 수 있고, 이도 임플란트한 몇 개를 빼면 별문제가 없다.

모두가 건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연식(年式)’ 때문

물론 이는 아직 내가 노인 축에 들 만한 나이가 아니어서다. 요즘은 한 70세가 되어야 노인 대접을 받는 시대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내가 그걸 받아들이는 것과 무관하게 노화는 시나브로 진행되어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자신의 노화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육신에 깃들기 시작한 노화, 각 기관 기능의 저하와 쇠락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말하자면 ‘연식의 비밀’인 셈이다. 아픈 건 건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순전히 연식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깨와 손가락, 다리에 이르기까지 그간 생광스럽게 써 온 기관은 이제 시나브로 낡아서 삐걱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의사는 약물치료를 해 보자며 처방전을 내주었다.

약국에서 약을 지어 돌아오는데, 좀 기분이 거시기했다. 이렇게 하나둘 아프기 시작한 몸은 어느 날에는 회복할 수 없는 중병으로 이어지기도 할 것이다. 답답하긴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나마 각종 검사를 통해 신체에 깃드는 질병을 미리 확인해 볼 수는 있는 게 위안이 될까.

여행 기간을 포함하여 근 2주째 운동을 쉬고 있다. 아무래도 다리의 통증이 좀 잡히면 의사에게 가벼운 걷기를 해도 괜찮은지 물어보아야 할 듯하다. 시골서 농사짓는 벗에게 전화했더니, 큰일 났네, 하고 농을 했다. 큰일이라 할 일은 아닌 건 그도 알고 나도 안다. 그게 누구에겐 이르게 오고, 또 누구에겐 더디게 오는 차이일 뿐 아닌가.

일단, 약물치료를 하면서 이 반갑잖은 손님과 어울려 볼 작정이다. 내가 그보다 세면 그가 물러갈 게고, 그가 나보다 강하면 이 아픔은 꽤 오래 갈 수도 있을 터이다.

아프다는 얘길 자꾸 해대는 게 얼마간 민망하기도 하다. 주변에 벗들은 다 멀쩡한데 나만 그런가 싶어 억울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 다 그만그만한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게라는 벗의 말은 아마 위로일 터이다.

 

2018. 8.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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