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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

텃밭을 걷으며

by 낮달2018 2021.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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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밭에서 자란 마지막 열매를 거두다

▲ 무슨 꽃 같은가. 묵혀둔 부추에 꽃이 피었다.

텃밭 이야기를 한 게 지난 7월 초순이다. 게으름을 피우며 간신히 밭을 가꾸어 가면서도 그 손바닥만 한 텃밭이 우리에게 주는 게 어찌 고추나 가지 열매에 그치겠냐고 방정깨나 떨었다. 그게 빌미가 되었던가 보았다.[관련 글 : 텃밭 농사, 그걸 기름값으로 환산할 순 없다]

날씨는 끔찍하게 더웠고, 움직이는 게 힘겹던 시기여서 잔뜩 게으름을 피우다가 보름쯤 뒤에 들렀더니 텃밭 작물들은 거의 빈사 상태였다. 고추도 가지도 바짝 말라 쪼그라들고 있었으므로 아내는 탈기를 했다.

“그렇게 나 몰라라 하고 내던져 뒀는데 무슨 농사가 되겠우? 올핸 글렀으니 내년에 어째 보든지…….”

물 구경을 못 한 고추는 자라다 만데다 병충해까지 꾀었다. 익은 것과 성한 것들만 따서 거두어 돌아서는데 어쩐지 뒤통수가 근질근질했다. 제대로 임자 노릇을 못 한 게 겸연쩍고 미안해서 우리는 마치 싸운 사람처럼 입을 닫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폭염이 이어지던 8월에 이사한 뒤 뒷정리한다고 이래저래 바빴고, 그러다 보니 이내 명절이었다. 한 달 가까이 텃밭은 아예 잊어버리고 산 것이다. 버린다고는 했지만 켕기는 마음이야 어쩔 것인가.

어제 아침에 아내가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기에 물었더니 밭에 가서 풀이라도 뽑아야 할 것 같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혼자 보내기 무엇하여 따라나섰다. 해는 구름 속에 숨어 있고, 날씨는 선선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다 말고 우리는 잠깐 말을 잃었다.

▲ 지난 7월의 텃밭(위)은 두 달여 만에 풀밭이 되어 걷어낼 수밖에 없었다.(아래)

텃밭은 무릎까지 자란 풀밭이 되어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끊어진 밭은 바랭이와 쇠비름 같은 풀이 우거져 마치 흉가처럼 을씨년스러웠다. 맨 앞에 심어놓은 부추는 풀 속에서 하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모름지기 임자의 발걸음 소리로 여물어가는 게 농작물이라고 했던가. 우리 내외는 그 밭 앞에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는 작업복을 갈아입고 밭으로 들어갔다. 빽빽이 우거진 풀을 뽑고 걷어내는 데 좋이 두어 시간이 걸렸다. 굵게 자란 쇠비름이야 쉽게 뿌리가 뽑혔지만, 땅에 바투 붙어 번져나간 바랭이는 쉽지 않았다. 호미로 뿌리를 캐어가며 한 움큼씩 풀을 걷어내니 조금씩 밭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풀밭에서 모습을 드러낸 고추와 가지, 호박은 그러나 그냥 있지 않았다. 한 차례 익거나 성한 놈을 골라 따냈는데도 고추는 새로 열매를 맺거나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추석을 전후하여 며칠 동안 이어진 비로 짜부라지던 작물들은 다시 기지개를 켠 것이었다.

▲ 버려두었지만 텃밭의 생명력은 말없이 몇 덩이의 호박과 가지, 고추를 길러내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뿐인가, 누렇게 익거나 제법 굵어진 호박이 풀숲에 숨어 있었고, 가지도 팔뚝만 한 놈 등 여러 개가 달려 있었다. 아내는 비닐봉지를 가져와 고추를 따기 시작했고, 나는 서둘러 남은 풀을 걷어냈다. 버려두었던 텃밭에서 마치 보물처럼 찾은 수확물은 잠시 고단함을 잊게 해 주었다.

언제쯤 ‘농부의 마음’에 이를까

오랜만에 흘린 땀으로 조금은 고단했지만 돌아오는 길이 쓸쓸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나는 묵히고 있는 마당 저편의 텃밭은 언제 날을 받아 풀을 뽑고 씨 뿌릴 채비라도 하자고 아내와 약속했다. 지난 7월에 약조한 ‘배추 농사’를 부도낸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내년에는 한 마장쯤 떨어진 미나리꽝에 감자를 심자며 풍성하게 지었던 ‘말 농사’도 기약할 수 없다. 멀어서, 꾸준히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서……. 매양 그게 말 농사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야, 핑계야 늘 있다.

중요한 것은 심어놓은 작물들을 염려하는 ‘농부의 마음’이다. 임자의 발걸음 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작물들을 떠올리면서 조바심을 내는 그 연민의 마음 말이다. 손바닥만 한 텃밭을 가물에 콩 나듯 들여다보는 게을러빠진 우리에게 어찌 그걸 기대할 수 있을는지.

아내는 지난밤에 딸애와 함께 고추를 다듬으면서 ‘약도 한 번 안 친 건데’ 하면서 고추 이파리와 호박잎을 따로 챙겼다. 그리고 오늘 아침 밥상에 찐 호박잎과 고추 무름(고추를 쪄서 무친 것)이 올라왔다. 식탁에 오른 채소야 그것 자체로도 생광스럽지만 내가 지은, 아니 저절로 자랐던 채소야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2016. 9.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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