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병과 약 치레로 지새는 나날들
나는 올해, 우리 나이로 예순일곱이 되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만 나이’로 치면 예순여섯이다. 이른바 경로 우대는 지난해부터 받았는데, 그런 대우를 받는 게 얼마간 민망하면서도 한편으로 생광스럽기도 했다. 말하자면 나는 내 생물학적 노화의 혜택 앞에서 다소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 거였다.
자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확인되는 나의 ‘노화’
나는 노화를 받아들이긴 해도 자신을 ‘노인’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의 장소에서 ‘어르신’이나 ‘할아버지’ 따위를 불릴 때 씁쓸해지는 기분으로 타인의 시선에 잡힌 나의 ‘노화’를 확인하곤 했다. 내가 아무리 부인해도 내가 ‘경로 우대’라는 국가의 부조를 받고 있고, 이웃들로부터 ‘노인’으로 이해되고 있음은 사실인 까닭이다.
그러나, 내 마음속은 여전히 20대나 30대 젊은이의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다. 퇴직하던 해만 해도 나는 드라마를 통해서 노화를 구경꾼처럼 바라보았었다. 마치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노화를 이해하는 것은 일종의 허세일 수도 있겠다. 그런 태도는 ‘어르신’이나 ‘할아버지’ 같은 부름말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련 글 : ‘노화’가 슬슬 두려워지는가]
그런 내게 이제 보름 남짓밖에 남지 않은 2022년은 나의 ‘노화’가 단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임을 분명하게 확인하게 해 준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여전히 내가 노인이라기엔 매우 건강하고, 은연중에 동년배들에 비겨 훨씬 진보적인 세계관을 지녀 덜 ‘꼰대스럽다’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 근거는 내가 몸살 따위의 병치레는 10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정도고, 쉽게 몸져눕지 않는 강골이라는 굳건한 믿음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산행 갔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발목 인대를 다쳤고, 결국 한 달 동안 깁스한 채 칩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면서 그 믿음은 시나브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퇴직하고 나서도 나는 내 건강이 나이 앞에서 견딜 수 있을 만한 맷집이 아니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노화’를 ‘건강’과 비기면서, 한가하게 ‘연식’ 타령이나 할 만큼 나는 멀찌감치 ‘노화’를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관련 글 : 연식(年式), ‘건강’과 ‘노화’ 사이]
그러나 노화는 누구에게나 오는 방식으로 내게 찾아왔다. 그 시작은 목과 어깨 부위의 통증과 함께 온 손가락의 통증이 었고 결국 손가락 연골이 닳았다는 진단에 이르렀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이도 아닌데, 키보드를 40년 넘게 두드렸다고? 나는 떠나시는 날까지 어머니를 괴롭힌 관절염의 유전자가 내게도 있다는 사실을 아프지만 받아들였다. [관련 글 : 손가락 연골이 다 닳았다고? 설마!]
2020년 6월에 발병한 ‘중심원심성윤상홍반’이라는 알레르기 피부염이 올들며 2년을 넘겼다. 나는 피부과 병원을 사흘돌이로 드나들면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 질환을 소량의 스테로이드와 항히스타민제에 의존해 다스려 왔었다. 낯선 질병을 몸속에 키운 것도, 그걸 무려 2년 넘게 지니고 온 것도 결국은 노화에 따른 면역력의 약화 때문일 것이었다.
60대 후반, ‘노화’는 태도가 아니라 ‘현실’
물론 나는 노화가 어떤 식으로 면역력을 떨어뜨리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예전 같으면 잘 걸리지 않던 사소한 질환들이 아주 손쉽게 찾아오는 건 분명하다. 무릎에 물이 차거나, 어깨에 석회화건염이 생기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작은 상처도 쉽게 낫지 않는 걸 우울하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릎이나 어깨의 고장은 내가 그쪽 근골을 혹사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60년이 넘게 쓴 덕분에 힘줄이나 연골의 기능이 떨어진 결과다. 오래 쓰이며 낡고 닳아서 제 기능을 잃은 몸의 부속들이 저도 몰래 저지르는 부조화다. 우선은 아프니까 병원에 갈 수밖에 없는데, 몇 차례 처방을 받아 약을 먹다 보면 밀려드는 회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 형님은 환갑 진갑을 지난 나이에 자전거를 타고 20개월간 세계를 일주한 바 있는 강골이다. 그런 그도 칠순을 넘기면서 아침마다 약을 한 줌씩 먹어야 하는 신세를 푸념하곤 한다. 그는 여전히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탈 만큼의 근력을 지니고 있지만, 몇 가지 노화와 퇴행에 따른 복약까지는 피하지 못한 것이다.
노년의 일상이 머리맡에 약봉지가 수북하고, 한꺼번에 서너 종류의 약을 먹어야 하는 날이라는 건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건 무슨 몸져누울 병을 지녔다는 뜻은 아니고, 약을 복용하는 것과 관계없이 신체활동을 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면역력 약화에 따른 갖가지 질환으로 지샌 2022년
거의 15년 이상 먹어온 혈압약에 더해 지난 2년 동안은, 증세가 있을 때마다 알레르기 피부염 약을 먹어야 했다. 그러다가 스테로이드를 끊고 항히스타민제만으로 병을 다스리게 되면서 증세가 악화하였고, 그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됐다.
7월에는 어깨가 아파서 정형외과에 갔더니 석회화건염이라고 했다. 어깨 힘줄의 퇴행성 변환데, 아침저녁으로 두 알씩 먹으라고 약을 처방해 주었다. 벌써 먹어야 하는 약의 종류가 세 종류가 넘었다. 8월 23일 코로나19 백신을 4차 접종하고 일주일 만에 나는 아내에 이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확진 판정받은 게 9월 1일, 한 일주일가량 하루 세 번 약을 먹었는데, 코로나라서 그런가, 약이 그야말로 한 줌이었다. 혈압약은 빼먹을 수 없고, 정형외과 약은 건너뛰었다. 일반 증상은 금방 좋아졌는데 마른기침이 그치질 않아서 거의 기침약을 2주 이상 먹어야 했다.
책상 위에 쌓인 수북한 약봉지가 눈에 밟히기 시작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아픈 증상이 따로 없을 때는 주저 없이 약을 빼먹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나는 내 일상이 앞서 말한 ‘한 줌 약’으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분명하게 깨달았다. 나는 내 삶이 갖가지 약을 삼켜야 하는 노년의 일상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헛헛하기만 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안부를 묻는 이웃에게 ‘온갖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대꾸하곤 했다.
내 삶도 ‘노년의 일상’으로 옮겨가고 있는가
몇 가지 질환이 겹치면서 이것저것 약을 먹어 대다 보니 의식하지 못하는 새 증상이 사라지기도 했다. 왼쪽 어깻죽지의 석회는 어느 날부터 통증을 멈추었고, 코로나약을 일주일째 먹던 어느 날부터 알레르기 피부염이 그친 사실을 깨달았다. 몸 안에 어떤 다른 성분이 들어와 발병했다는 의사의 소견대로라면 코로나 약의 어떤 성분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짐작할 만한 변화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려 봤더니, 잠깐 예전과 같은 가려움증이 있었으나, 연고를 한번 발라주니 이내 괜찮아졌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피부염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떨어졌다’고 쓰지 않는 이유는 내 몸 안에 그 증상의 원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듯하기 때문이다.
피부염 대신, 오른쪽 눈이 이물질이 들어간 것처럼 불편해져서 안과에 가니 알레르기 결막염이라고 해서 거의 한 달 넘게 치료받았다. 알레르기 피부염이 결막염으로 전이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의사는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같은 알레르기라고 말해 주었다.
결막염 치료 중에 목이 뻣뻣해지고 목과 어깨 부위에 통증이 심해서 다시 정형외과를 찾았다. 어깨와 승모근 등 목 부근의 근육이 결리는 증상, 근막통증증후군이라고 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는 등 특정 자세가 문제가 되어서 생겼다면서 의사는 아침저녁으로 먹을 약을 처방해 주었다.
며칠 약을 먹다가 또 겹쳐서 약을 먹는 게 싫어서 정형외과 약은 먹지 않고 미루어두었다. 퇴직 후 여러 차례 목과 어깨가 아팠는데, 병원에 가서 약을 타 와 먹어도 잘 낫지 않았다. 침도 맞아보고, 물리치료도 받아보았지만, 나으려면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그래서 약을 먹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결막염이 나으면서 하루 한 번 혈압약만 먹으면 되는 예전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하루 여러 종류의 약을 중복해서 먹어야 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무어 남다른 것 없지만, 그 일상을 회복하는 데 거의 반년 이상이 걸렸다.
가족력, ‘당뇨’가 경계에 있다
11월 초에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대체로 양호했는데, 공복혈당이 좀 높아서 거의 10년째 만나고 있는 단골 병원 의사는 공복혈당장애 의심이라고 했다. 당뇨라고 판정하기 직전의 상태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큰형님과 형님이 각각 당뇨이니, 가족력이란 좀 무서운가.
그동안 내게도 당뇨가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적잖은 스트레스였지만, 근근이 버텨왔었다. 올해 면역력이 무너지면서 이런저런 질환이 나타난 끝에 당뇨가 고개를 내민 셈이다. 요즘은 과일도, 단 음식도 가능하면 가려먹고 있다. 가정용 혈당계를 사서 가끔 공복혈당을 재보곤 하는데, 아직도 경계 이하로는 잘 내려가지 않는다.
최근에 매일 빼먹지 않고 걷기 운동을 이어가고, 식사량을 조절하면서 체중은 3kg쯤 뺐다. 내처 70kg대로 줄일 수 있다면 여러 지표가 개선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한밤중에 깨어서 가끔 팔이 저릴 때가 있다. 이러다가 손을 쓰지 못하는 새 건강은 더 나빠져 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조바심을 느끼기도 한다.
이 ‘통과의례’, 노년을 맞이하는 나의 방식
일흔도 안 돼서 무슨 엄살이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나이와 건강은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타고난 수명의 문제이긴 하지만, 60대라고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나이 들어 건강이 나빠지는 건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지만, 그게 자식에게 민폐가 되어서는 안 되니 이런저런 푸념을 이어가는 것이다.
2022년도 이제 한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자신을 노인이라고 여기지 않으려 한다. 사소한 질환들이 번갈아 가며 찾아오지만, 그게 노년의 일상을 구성하는 통과의례라고 여기면서 되도록 긍정적, 낙관적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그게 노년을 맞이하는 나의 방식이다.
2022. 12. 19. 낮달
노화, 그 우울한 길목에서(2) ‘신체적 변화’와 ‘죽음’의 인식
노화, 그 우울한 길목에서(3) ‘현명하게 늙어가기’는 과욕, ‘면(免) 노추(老醜)’ 도 쉽지 않다
'이 풍진 세상에 > 퇴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화, 그 우울한 길목에서(3) (5) | 2023.02.01 |
---|---|
‘노화’, 그 우울한 길목에서(2) (6) | 2023.01.14 |
평생 꺼려 쓰지 않던 모자, ‘방한모’를 마련하다 (3) | 2022.12.13 |
‘나라에서 주는 상’ 받을 뻔하다 말다 (0) | 2022.06.03 |
나는 매일 ‘건넌방’으로 출근한다 (0) | 2022.05.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