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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

손가락 연골이 다 닳았다고? 설마!

by 낮달2018 202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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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더니

▲ 최근 내 오른손에는 요즘 지속되는 통증이 있다 .

꽤 오래, 그러니까 서너 달 이상 괴로웠던 오른손 통증 때문에 늘 가던 동네 정형외과 대신 다른 병원을 찾았다. 아니, 서너 달이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도 어깨 통증과 함께 손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으니 이는 거의 여덟 달째다. [관련 글 : 마음과 무관하게 몸은 ‘쇠’한다]

 

동네 병원에서도 진료를 한 차례 받았는데, 원장 대신 근무하는 늙수그레한 의사는 관절염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약과 물리치료를 처방해 주었다. 물리치료실에서는 나는 두 번째 파라핀 치료를 받았고 나흘 동안 약을 먹었다.

 

손가락 연골이 다 닳았다?

 

다소 차도가 있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병원에 가서(이도 이른바 ‘의료 쇼핑’에 해당하는 걸까?) 제대로 사진도 찍어보자며 몇 날 며칠을 벼른 끝에 시내 쪽의 정형외과에 들렀다. 훨씬 젊고 빠릿빠릿해 뵈는 젊은 의사는 찍은 방사선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픈 부위엔 연골이 거의 닳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방사선 사진 속에 내 엄지와 손목이 이어지는 관절이 하얗게 드러났는데, 뼈와 뼈 사이에 거의 틈이 없었다. 주로 많이 쓰는 손가락 쪽 연골이 닳은 부분에 염증이 생기는 수가 있으니 지난번 병원에서는 제대로 처방을 한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정확히 손의 어떤 부위가 아프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엄지 부분이 아픈 건 분명하고 엄지 아랫부분 손바닥 근육도 수시로 아프다. 나는 잠깐 내 엄지가 늘 컴퓨터 자판의 사이 띄개(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용도로 수십 년 동안 혹사당했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러고 보면 내 오른손의 수난사는 꽤 길다. 마우스를 쓸 때마다 엄지 아랫부분의 근육이 아파서 왼손으로 마우스를 쓰기 시작한 것은 40대 중반부터였다. 내 컴퓨터 사용 시간이 또래의 평균치를 넘어서는 것은 분명했다.

▲ 군 복무 때부터 오늘까지 나는 40년 동안 자판을 두드려왔다.

군 행정병으로 근무하던 스물세 살 때부터 타자기를 쓰기 시작하여 제대해서는 수동과 전자 타자기를 거쳐 컴퓨터로 옮아 왔으니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린 세월이 거의 40년이 넘은 셈이다. 그렇게 손가락을 부려 먹다가 만난 첫 번째 건강 장해(障害)가 예의 손바닥 근육의 통증이었다.

 

나처럼 손이 아파 왼손으로 마우스를 쓰는 오른손잡이가 주변에 드물지는 않았으나, 내 컴퓨터를 쓰게 되는 이들은 늘 마우스 위치 때문에 낯설어하곤 했다. 그런데 그 근육의 통증이 마침내 뼈에까지 옮아갔다고? 내가 무슨 문필을 업으로 삼는 이도 아닌데, 헐!

 

연골이 닳은 것쯤이야 병 축에도 끼지 못할 뿐 아니라 당장 활동을 못 하게 되는 일도 아니다. 약국으로 가서 약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영 썰렁했다. 아내는 얘길 듣더니 ‘아이고, 그럼 어떡해?’ 하고 혀를 차더니 이내 무심해졌다.

 

그렇다. 내 손가락 연골의 퇴화에 이어진 손가락 통증은 40여 년 동안 자판을 두드려온 결과일 뿐이다. 숱한 노동자들이 비슷한 일을 하면서 얻게 되는 이른바 근골격계 질환이 어디 한두 가진가.

 

그들이 ‘반복적인 동작, 부적절한 작업 자세, 무리한 힘의 사용, 날카로운 면과의 신체 접촉, 진동 및 온도 등의 요인에 의하여 발생하는 건강 장해’에 비기면 내 손가락의 그것은 얼마나 하찮은 일인가.

 

처음 손가락 관절의 염증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먼저 내 피의 이력을 떠올렸었다. 노동으로 이어진 일평생, 마침내 뼈마디마다 찾아온 관절염으로 휘고 굽은 어머니의 손을 기억하고 그 피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환기하다가 나는 도리질을 했다. 어머니의 삶과 노동에 어디 감히 내 그것을 견주는가, 부끄럽고 죄스러워서였다.

 

자판 두드리기 40년, 고장 날 때도 되었다

 

▲ 뼈마디 사이에 있는 연골에 탈이 났단다.

전문 글쟁이도 아닌데, 하고 투덜댔지만, 스물 몇 살부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여 블로그를 연 이래 10년 넘게 거기다 1천7백여 편의 글을 끄적여 왔다. 쉬지 않고 손가락을 혹사한 사실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나도 묻지 않았고 의사도 마땅히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일단 통증이 가라앉도록 염증을 치료하고 난 뒤에 고민할 일이긴 하다. 오랜 세월 동안 특정한 신체 부위를 반복해 쓰면서 생긴 장해니 그걸 고치는 건 결국 그 부위를 쓰지 않고 쉬게 하는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퇴직 이후에도 머리를 짜내 가면서 계속하는, 알아주는 이 없는 시답잖은 글쓰기가 유일한 내 소일거린데, 자판 두드리기를 멈추라고? 글쎄다. 누군가가 내가 올리는 새 글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내 글이 누군가의 파한(破閑)이 되고 어떤 이를 위무하는 것도 아닌 한 멈추는 건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

 

문제는 외부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다. 일상의 담담한 기록이든 세상에 던지는 서투른 훈수에 불과하든, 내가 쓰는 글은 내 삶이고, 세상의 물결에 새기는 무심한 표정 같은 것. 여전히 나는 독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글을 끄적일 뿐이다.

▲ 바라건대, 그 어느 때든육신의 쇠잔 때문이 아니라, 내 의지로 글쓰기를 마칠 수 있게 되기를.

병원에 다녀온 날엔 사이 띄개를 누르는 손가락을 오른손에서 왼손의 엄지로 바꾸어 보았다. 그러나 수십 년 이어온 습관이 금방 바뀌겠는가. 금세 포기하고 나는 예전처럼 엄지를 썼다. 그러다가 문득 엄지손톱 왼쪽 가장자리에 아직도 희미하게 남은 굳은살을 만져보았다. 그것은 좌충우돌하던 젊음의 한 시절을 기억하는 내 몸의 흔적…….

 

병원에 다녀온 날 밤, 잠들기 전에 내가 언제까지 글을 끄적일 수 있을지를 막연하게 그려보았다. 언젠가 더는 글쓰기에 흥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고, 마침내는 글쓰기를 할 만한 기력을 잃을 만큼 쇠약해질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그땐 아마 내 마음의 풍경과는 무관하게 나는 글쓰기를 그쳐야 한다. 어쩌면 지난 세월 자신의 마음을 고즈넉하게 밝혀 주었던 몇 편의 글이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바라건대, 그 어느 때가 될지라도 육신의 쇠잔 때문이 아니라, 내 의지로 글쓰기를 마칠 수 있게 되기를.

 

 

2018. 7.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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