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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36

가끔은 우리 모두 ‘자연인’이 되고 싶다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지만, 결코 자기 삶은 바꾸지 못하는 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것은 아내가 가끔 그걸 즐겨 시청하는 걸 보고서다. 동물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던 아내는 어느 날부턴가 ‘대자연 속 힐링 여정을 담는 자연 다큐멘터리(프로그램 소개)’인 (이하 ‘자연인’)에까지 관심을 넓힌 것이었다. 잠깐씩 들여다본 장면으로 미루어 그게 대충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알았지만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쳐 버렸다. 그러나 리모컨을 눌러대다 보면 여러 채널에서 ‘자연인’을 만날 수 있었으니 ‘자연인’은 이미 일정한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는 듯했다. 의 6년 차 프로그램 처음 나는 아내의 시청에 동참하는 형식으로 ‘자연인’을 보았다. 내가 스스로 이 프로그램을 찾아서 시청하게 된 건 올 하반기 들어서.. 2019. 11. 26.
마음과 무관하게 몸은 ‘쇠’한다 두 달 동안 병원 네 군데를 다녔다 아침에 한 달째 낫지 않고 있는 어깨 통증 때문에 주변에 물어 알아둔 침구원으로 갔다. 지역에서는 꽤 용하다는 소리를 듣는 집이라는 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차까지 하고 갔더니만 문이 잠겼고, ‘개인 사정으로 일시 휴업 중’이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번갈아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찾았다 어쩔까 하다가 차를 돌려 동네의 한의원을 찾았다. 몇 해 전 발목을 삐어 인대가 늘어났을 때 몇 차례 내원한 병원인데 어쩐지 탐탁지 않아서 한동안 지나쳤던 곳이다. 한의사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권위적으로 보이는 60대였다. 나는 베개 없이 누웠다가 목을 잠깐 삐끗한 적이 있는데 목과 어깨의 통증이 한 달째 치료해도 낫지 않는다, 오른쪽 집게손가락도 몹시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웃음기.. 2019. 11. 25.
노년의 호르몬 변화는 ‘신의 한 수’다 이제 ‘자리끼’ 마련도 내 몫이다 밤에 자다가 여러 차례 물을 마신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죽 그래왔다. 잠자다가도 갈증 때문에 깨기 때문인데 흔히 이를 ‘조갈(燥渴)’이라 하여 당뇨의 증상으로 치지만 내 혈당은 정상이니 해당하지 않는다. 아마 자면서 저도 몰래 입을 살짝 벌리고 자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다. 자다가 갈증 때문에 깨어나 물 마시러 일어나야 하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선 머리맡에 언제라도 마실 수 있는 물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래서 철든 이래 나는 언제 어디서나 머리맡에 물을 마련해 놓고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경상도에는 이 ‘물’을 가리키는 말이 따로 없는데 표준말로는 ‘자리끼’라 한다. 사전 풀이로 “밤에 자다가 깨었을 때 마시기 위해 잠자리의 머리맡에 준비하여 .. 2019. 10. 27.
삼식(三食)이의 ‘가사노동’ 연금생활자의 일상 퇴임한 지 얼추 1년 반이 지나며 연금생활자로의 일상은 얼마간 길이 났다. 퇴임 직후에만 해도 이런저런 생활의 변화를 몸과 마음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부조화가 꽤 있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제 몫을 하는 게 인간의 적응 능력인 것이다. 퇴직자 가운데서는 직장사회와 동료들과 교류가 끊어지면서 상실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실제로 나는 그게 괴롭지는 않다. 마지막 학교에서 근무하던 네 해 가까이 나는 스스로 고립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떠나는 연습을 거듭했었기 때문이다. 괴로웠다고 하기보다는 곤혹스러웠다는 게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10여 시간을 보냈던 학교를 떠나면서 이전에는 사적으로 쓰기 쉽지 않았던 낮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그런데 더는 .. 2019. 9. 25.
‘삼식이’의 ‘혼밥’ 연금 생활자의 혼자 밥 먹기 한때 ‘남편과 아내에게 필요한 것 5가지’라는 유머가 유행한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돈, 건강, 자녀, 일, 친구’(또는 돈, 건강, 딸, 강아지, 찜질방) 등 실제 노후 생활을 유지하는 데 긴요한 것인데 반해 남성에게 필요한 것은 ‘부인, 마누라, 애 엄마, 집사람, 아내’ 등 호칭만 다르지 아내 하나뿐이라는 얘기다. ‘남편에게 필요한 5가지’ 노후를 맞이하면서 인간관계의 변화는 남녀 간에 차이가 크다. 남성의 인간관계는 소득 활동을 하는 시기에는 다양하고 깊지만, 은퇴를 기점으로 서서히 그 폭이 좁아지면서 약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배우자의 은퇴를 기점으로 관계 유지를 위한 활동이 오히려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배우자의 은퇴.. 2019. 9. 22.
퇴직 기념 나라 밖 여행 퇴직 기념으로 나라 밖 여행을 다녀오다 아내와 함께 7박 8일 동안 국외 여행을 다녀왔다. 몇 해 전부터 장거리 국외여행으로 퇴직을 기념하겠다고 생각해 온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른바 직판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상품으로 파리와 스위스, 그리고 이탈리아를 도는 여정이었다. 한동안 나라 밖 여행은 ‘남의 일’이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는데 여행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집을 떠나서 낯선 고장을 다니고 거기서 새로운 문물을 만나는 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나는 국외 여행에 비교적 덤덤했다. 무엇보다 그걸 쉽게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생활에 여유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국외여행이 일이십만 원으로 치러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해외여행은 우리가 학교를 떠나야 했던 1989년에 자유화되었.. 2019. 8. 23.
어버이를 닮아가는 노년, 혹은 유전하는 피의 이력들 노년에 우리는 자신의 모습에서 어버이를 발견한다 자식들은 부모를 닮는다. 생김새는 말할 것도 없고 성정도 닮는다. 오죽하면 ‘씨도둑은 못 한다.’는 속담까지 생겼을까. 이들 핏줄이 보여주는 닮은꼴의 전개는 ‘유전자의 위대성’을 실증한다. 그러나 사소한 버릇까지도 닮아가는 이 ‘피의 기적’은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식들이 부모를 빼닮은 게, 마치 같은 틀에서 찍어낸 풀빵처럼 형상이 같다 하여 ‘국화빵’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이 ‘국화빵’ 현상은 혈연 가족의 유대를 확인해 주지만 그게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부모는 자식에게 우성인자만을 물려주지 않고 때론 열성인자도 전해주기 때문이다. 싱크로율 100%, 어버이를 닮아가는 노년 세상에 그 자식이 닮고 싶은 부모만 있는 것은 아니다. .. 2019. 4. 26.
38년……, 그래도 우린 열심히 살았다 다시 만난 옛 ‘전우’ 지난 7일, 4·3 70주년 국민문화제에 참석한 날, 밤에 1978년부터 1980년까지 군대 생활을 같이한 옛 동료 ‘허(許)’를 만났다. 그는 정보과, 나는 인사과 행정병으로 일과 중에는 다른 공간에서 근무했지만, 일과가 끝나면 대대본부 내무반에서 같이 생활한, 군대식으로 말하면 ‘전우’다. 신병 교육을 같이 받은 것도, 공수교육이나 특수전 교육을 같이 받은 동기도 아니었다. 입대는 내가 한 달쯤 빨랐지만 비슷한 시기에 입대한 작전과 행정병 ‘김(金)’과 함께 우리는 동기로 지냈다. 더러 술도 같이 마셨고, 동기끼리 나눌 수 있는 이런저런 사연을 주고받으면서 삭막했던 시절을 함께 이겨냈다. 38년 만의 해후 허는 나처럼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바로, 김은 3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2019. 4. 17.
가끔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때로 아이들 앞에 서서 강의하는 내 모습을 그리지만… 오륙 년 전에 퇴직한 내 친구는 명퇴한 교사가 기간제 교사로 학교로 돌아오는 걸 특유의 독설로 비난하곤 한다. 제 뜻으로 떠난 인간이 왜 다시 돌아와 젊은이들 일자리를 빼앗는가 하고 말이다. 동감이다. 같은 조건으로 젊은이와 경쟁하는 경우에 경력 교사가 뽑히리라는 건 물으나 마나기 때문이다. 학교를 떠나면서 내가 다시 교단으로 돌아올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그래서였다. 교원 자격을 갖고 있지만 임용되지 못한 예비교사 자원은 넘친다. 그러나 이들을 잘 구할 수 없게 되는 때도 있기는 하다. 임용시험이 가까워지면 넘치던 이 자원이 갑작스레 고갈되는 것이다. 기다렸지만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런 시기에 부득이하게 잠깐 교단으로 돌아온 이들이 주변에.. 2019. 4. 7.
세월, ‘청년’에서 ‘초로(初老)’로 20대 청년에서 60대 초로가 되는 세월 고교 때부터 절친했던 벗이 부친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나는 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다. 스무 살 어름엔 날마다 어울렸던 친구였는데 30년도 전에 교단에 서면서 대구를 떠나 도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바람에 만남이 뜸해졌다. 그를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던가, 헤아려 보니 그가 모친을 여의었던 4년 전이었다. 퇴근시간대를 피해 4시쯤 출발하여 다섯 시쯤에 대구의료원 장례식장에 닿았다. 호실을 확인하지 않고 승강기부터 타고 3층에 올라 두리번거리는데, 검정 양복 차림의 상주 하나가 낯이 익었다. 동안의 온순했던 아이, 어느새 50줄이 된 벗의 동생이었다. 그는 날 알아보고는 무척 반가워했다. 조문에서 확인하는 ‘세월’ 이내 친구가 쫓아 나왔는데…, 4년 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2019. 3. 15.
이순(耳順) 넘어 ‘서재’를 꾸미다 퇴직하고서야 조그만 ‘서재’를 마련하다 지난 일기에서 밝혔듯이 나는 장서가도 아니고 그런 깜냥도 되지 못한다. 그러니 내로라하는 장서가들이 거액을 들이거나 헌책방을 이 잡듯 뒤진 끝에 책 ‘한 권’을 얻었다는 전설적인 무용담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2만 원이 넘는 책은 엔간하면 사는 대신에 도서관에서 빌려 보며 갈증을 달래는 편인 것이다. 그러나 40년 이상을 책을 탐하며 살아온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모은 책이 크고 작은 서가 대여섯 개를 채웠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나만의 방, 말하자면 ‘서재(書齋)’라고 이름 붙일 만한 공간을 가져보지 못했다. 북봉산 아래 서재를 꾸미다 남매를 둔 집이라면 대개 비슷하지 않나 싶다. 아이들은 어릴 땐 한 방에 재우기도 하지만 자라면 따로 방 하나.. 2019. 3. 11.
묵은 책을 버리며 미련도 함께 버리다 서가를 정리하면서 마침내(!) 책을 좀 ‘버리기’로 했다. 크고 작은 서가 여섯 개가 가득 차게 된 게 꽤 오래전이다. 새로 서가를 들일 공간도 없고 해서 칸과 칸 사이의 여백에다 책을 뉘어서 넣거나, 크기가 작은 책은 두 겹으로 꽂는 등으로 버텨왔다. 삼십 년이 넘게 모아온 책이지만 어차피 장서가(藏書家) 축에 들 만한 규모도 아니고, 그걸 추구한 적도 없다. 그러나 조그만 책꽂이에다 꽂으며 불려온 책이 하나씩 들이는 서가를 채울 만큼 늘어나면서 그걸 바라보는 마음이 넉넉해졌던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책 읽기의 강박 30년, 책을 버리다 대학 시절에야 워낙 궁박한 처지여서 책도 마음대로 한 권 못 샀고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곤 했다. 매달 책을 사서 읽게 된 것은 초임 발령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게 .. 2019.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