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혹은 무심히 보낸 젊음에 대한 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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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베이비붐 세대인 우리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입기 시작한 교복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입었다. 이 제복에 따른 ‘제모(制帽)’로 학생 모자를 써야 했던 건 물론이다. 제복과 제모는 그 시절의 완고한 ‘통제’나 ‘타율’의 상징이니, 우리는 갖가지 방식으로 제복과 제모를 학대(?)하는 것으로 그 통제에 저항했다.
제대 후엔 아주 헤어진 ‘모자’를 다시 만나다
교복은 유행을 타서 바짓가랑이가 넓어지거나 좁아지기도 하고, 바지 앞춤의 밑위가 짧아지는 등의 변화가 있었지만, 교모는 워낙 단출한 소품이다 보니 변화의 폭이 제한적이었다. 그래도 선머슴애들은 모자를 찢어서 재봉틀로 박거나, 약품을 뿌려서 탈색하는 등의 이런저런 변화를 모색하는 방식으로 ‘규격화’에 맞서곤 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교모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았지만,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놈 모자를 쓰는 걸 영 꺼려서 교문을 나서기 무섭게 책가방에 모자를 쑤셔 넣곤 했다. 그리고 입대해서는 3년 가까이 육군 작업모를 거쳐 베레모를 쓰다가 예비군 ‘개구리 모자’를 쓰고 전역했다.
제대 이후엔 나는 모자를 쓴 적이 거의 없다. 아무도 그걸 강제하지 않기도 했지만, 체육 행사 같은 때에 쓰는 차양 모자 따위도 쓰라면 손을 홰홰 젓곤 했다. 이유는 아마 산적 같은 외모에 모자를 쓴 제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괴로워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모자는 내 머리통에 비해 표가 나게 작았다. 그러니 머리통에 옹색하게 얹힌 모자가 우스꽝스럽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아예 모자는 쓸 엄두도 내지 않게 되었고, 그런 세월이 거의 반세기가 흐른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오랜 습관을 바꾸어 낸 것은 세월이다. 2년 전 겨울, 나는 처음으로 모자를 마련하여 운동할 때마다 쓰기 시작하였다. 잘 아는 의사 친구로부터 겨울에는 모자를 써서 머리를 보호하는 게 좋다는 얘길 여러 차례 들었지만, 차일피일하던 나는 대구 서문시장에 가서 머리에 맞는 방한모 캡을 하나 사 온 것이다. [관련 글 : 평생 꺼려 쓰지 않던 모자, ‘방한모’를 마련하다]
처음엔 영 어색했는데 시간이 지나 눈에 익숙해지면서 어색한 느낌도 시나브로 가셨다. 따로 귀를 덮는 방한 덮개가 있는 모자였지만, 나는 귀마개를 쓰고, 방한 덮개는 내리지 않고 그냥 일반 모자처럼 썼다. 모자를 쓰면서 좋았던 점은 그게 추위의 상당 부분을 막아준다는 점이었다. 또 머리가 빠져 휑한 정수리를 감추는 용도로도 괜찮았다.
봄이 되면서 방한모를 들여놓고, 지난해까지 쓰던 천으로 만든 뚜껑 없는 선캡을 다시 꺼냈다. 그런데 10년도 넘게 쓴 선캡은 가장자리가 닳아서 실밥이 풀어지곤 했다. 딸애가 짧은 챙의 햇(hat)을 마련했길래 한 번 써 봤더니, 어라 머리가 쑥 들어갔다. 그리고 그걸 쓴 모습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다시 사 들인 모자
망설이다가 나는 그걸 인터넷으로 샀다. 그게 아래 오른쪽 물건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모자들은 제법 머리에 맞게 나오는 듯했다. 나는 이 모자를 샛강의 황톳길을 걸으면서 아주 생광스럽게 썼다.
챙이 없거나 눈 위에 달린 모자를 ‘캡(cap)’이라 하고, 머리 부분이 얕은 것이 특징인 ‘볼캡(이른바 야구모자)’이라고 한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볼캡을 하나 사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왕대두 볼캡 빅사이즈’라는 검정 모자를 하나 샀다. 그게 아래 왼쪽의 것이다.
워낙 커서 쓰면 사뿐히 머리를 덮어주는 것은 좋은데, 머리 부분이 깊어서 어쩐지 균형이 맞지 않은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쓰다 말다 거듭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내와 함께 대형마트에 갔다가 모자 매대에 주렁주렁 달린 ‘볼캡(ball cap)’을 한 번 써 보았다.
어럽쇼! 늘 머리끝에서 걸리던 모자가 쑥 들어갔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예전처럼 우스꽝스럽지 않고, 은근히 젊은 사람이 쓴 것처럼 얼추 어울렸다. 값도 브랜드 모자에 비하면 훨씬 싸서 나는 그걸 냉큼 사 왔다. 그리고 요즘 매일 아침 초등학교 운동장에 걸으러 갈 때마다 그걸 쓴다.
볼캡 모자를 써 보면서 ‘모자’에 꽂혔다
얼마 전 대구에 갔다가 아웃렛의 아웃도어 전문점에서 볼캡 모자를 2개나 샀다. 어쩐지 마음이 너무 당겨서였다. 하나는 회색, 하나는 카키색이었는데 제조사가 달라서 느낌이 다른데 둘 다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그걸 거울 위 말코지에 걸어두고 자주 머리에 써 보곤 한다.
나는 평상시에 모자를 상용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 일상에서 운동할 때나, 햇볕을 가릴 필요가 있을 때 외에 모자를 쓸 만한 상황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무려 3개의 모자를 마련했고, 지금도 가끔 인터넷 쇼핑몰에서 모자를 검색해 보곤 한다. 요샛말로 ‘모자에 꽂혔다’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거의 50여 년이나 모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내가 이제 와서 모자에 꽂힌 이유를 나는 모른다. 그걸 자주 써야 할 일상도, 돌발적 상황도 따로 있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요즘 매일 운동하러 갈 때 말고도 거울 위에 걸어놓은 모자를 써 보고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곤 한다.
모자(帽子)를 쓰는 이유는 햇빛을 가리거나 보온하는 것 말고도 안전과 멋을 위해서다. 과거에는 신분을 표시하는 목적으로도 썼다. 내가 평생 멀리해 온 모자를 뒤늦게 쓰기 시작한 것은 겨울에는 방한 목적, 요즘에는 휑한 정수리를 감추고, 햇빛을 가리고자 하는 목적에서다.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나는 여러 개의 모자를 마련했다. 모자는 직접 써 보고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미련을 다스리지 못하고 인터넷 쇼핑몰의 모자 매대를 돌아다니곤 한다. 무엇인가 아쉬워서인데, 그것은 무엇에 대한 아쉬움일까.
무심히 보낸 젊음에 대한 회한?
더러 나는 책상 앞 의자를 뒤로 젖힌 채 거울 위에 걸린 모자를 무심히 바라보곤 한다. 그 아쉬움이란 마치 내가 무심히 흘려보낸 내 젊음의 어떤 순간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일까. 그 청춘의 시절을 나는 열정이 아니라, 삿된 욕망에 시달려 헤매기만 했었다. 실낱 같은 가능성과 무한대의 절망 사이에서 깊숙이 침잠한 시간 속에서 나는 어느 날 내가 더는 젊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조로(早老)한 서른을 맞았었다.
7월 하순에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돼 있다. 그때 나는 여행지에서 저 모자들을 생광스럽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모자 가운데 햇과 캡을 하나씩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7월을 맞이한다.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모자는 우산 없이 빗속을 걸을 때도 매우 쓸모 있다는 걸 새삼 깨우치고 있다.
2024. 7.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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