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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

‘나라에서 주는 상’ 받을 뻔하다 말다

by 낮달2018 2022.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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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았던 ‘퇴직 교원 표창’, 결국 무산되다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소재 신청사로 이전해 개원한 경상북도 교육청

4월 중순인가 교무부장으로부터 ‘퇴직 교원 표창’ 때문에 그러는데 학교로 잠깐 나올 수 있는가 하고 연락이 왔다. “그러고 싶지 않다. 표창받을 일이 뭐 있겠냐”라고 얼버무렸는데 한 달쯤 후에 다시 친분이 있는 후배 교사한테 다시 연락이 왔다.

 

역시 같은 일(표창 상신) 때문에 한 연락이다. 자기들이 해야 하지만, 사실 관례상 본인에게 부탁드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표창을 올리려면 ‘공적조서’가 필수인데 그걸 직접 써 달라는 얘기였다. 나는 표창 받을 일도 없으니 사양하겠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후배는 아니라고, 정색하면서 번거롭더라도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받아도 그만이고 안 받아도 상관없는 일인데, 공연히 ‘거부’한다고 하면 담당 실무자만 난처해지는 듯해서 그리 한 것이었다. 사실, 상을 받는 일에 무심하기도 했지만 나는 대통령 표창을 받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7년 전에 전교조에서 준 교육공로상을 받으면서 내 ‘상’과의 인연(?)을 시시콜콜 이야기한 바 있다. 정말 나는 관에서 주는 어떤 상도 받지 못했다.(‘못했다’로 쓰는 것은 어쨌든 그게 내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자랑스럽구나, 아이들과 함께 한 그 세월(2009/05/16)]

 

내가 내 ‘공적조서’를 직접 쓰다

 

나중에 실무를 맡은 교사에게서 연락을 받고 차일피일하다가 요구하는 대로 서류를 보냈다. 낯이 간지러웠지만, 공적조서도 물론 내가 썼다. 내가 지난 교단생활을 돌아보고 내 ‘공로’를 적으라니 좀 창피했지만, 나는 그걸 ‘드는 솜씨’(나는 군대에서 ‘상벌계’로 근무해 ‘공적조서’를 수백 장 썼다)로 간단히 해치웠다.

 

어차피 관행이라는 거였고, 실제 공로 때문이 아니라 연공에 따라 주는 상일 터이므로 요식 절차를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아예 없는 사실을 만들어 쓸 수는 없어서 조금 고민한 끝에 나는 이른바 ‘개조식’(“글을 쓸 때, 앞에 번호를 붙여 가며 짧게 끊어서 중요한 요점이나 단어를 나열하는 방식”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는 말인데도 우리 국어사전에는 없는 단어다) 무려(!) 10가지나 썼다.

 

그 구체적 내용은 민망해서 여기 옮기지 않는다. 나는 학급 경영과 동아리 활동, 체벌과 학생 인권, 학교 운영위 참여, 학교 축제 등 자치활동, 보직교사로 학교 교육계획 작성, 학교 신문과 교지 등 매체 발간, 동료들과의 ‘교육일기’ 쓰기 등을 주워섬겼다. 그러면서 내가 맹탕으로 산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관련 글 : 가지치기, 혹은 거름과 물 주기 / 교사의 격려질책사이 / 교사행복해야 아이들행복하다

 

담당자에게 전자우편으로 보내고 나서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문자로 내 징계 이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1989년 8월의 해임 이력 말이다. 그렇다고 확인해 주면서 나는 무슨 조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얼핏 했다. 연공으로 주는 포상인데 굳이 30여 년 전의 징계 이력을 왜 확인하는 걸까 하고 고개를 갸웃하면서 나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후엔 밤에 교무부장이 전화했다. 말을 아끼기에 나는 단박에 눈치를 챘다. 추천 못 하겠다는 거지? 알았소. 난 아쉽지는 않은데 기분이 나쁘구먼. 그러나 업무를 맡은 동료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그러면서도 은근히 부아가 나는 걸 어쩌지 못했다.

 

나중에 학교에 요청해서 이른바 ‘추천 제한’ 사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종전에는 ‘징계 처분이 사면되었을 때 추천이 가능’했는데 변경된 지침에서는 ‘사면 여부에 상관없이 추천 불가’였다. 불문경고 처분도 마찬가지. 한 마디로 변경된 지침은 징계 근처에만 가도 포상이 안 되도록 빗장을 제대로 채워놓은 것이었다.

 

“해임 경력 있지? 못 줘!”

 

어쨌든 징계가 교직 생활의 흠인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1989년에 전교조 가입을 이유로 전국에서 1천5백여 명의 교사가 교단에서 배제된 이른바 집단해직 사태는 일반 징계와는 성격이 다른 거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역사적 전환기의 안타까운 희생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4년 반 만에 정부가 특별 채용의 형태로 해직 교사 복직을 추진한 것은 그런 현실을 수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1999년에 교원노조가 합법화되면서 이 징계 이력은 안타까운 ‘이전 시대의 희생’이 되었다. 그리고 이 같은 역사의 진보에 힘입어 우리 교육도 조금씩 변화해 왔다. 그런 시대적 진전을 받아들인다면 이번 복직 교사들의 추천을 제한하기로 한 교육부의 결정은 심각한 자기 부정에 가깝다.

 

이는 단순히 상장 한 장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교원노조의 결성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정부와 교사의 갈등은 전교조 합법화로 수렴되었다. 또 그간 전교조가 제기한 교육적 의제들을 통해서 우리 교육의 지향과 과제에 대한 모색들이 거둔 적지 않은 성과들이 있었다. 이는 결국 1989년의 비극을 단순한 징계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아야 하는 상식적인 이유다. 그런데도 교육부의 지침은 역사적 기억을 기계적으로 재단하고 있다.

 

지부에 알아보았더니 전국적인 상황이어서 본부에서 이 문제에 대응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긴 현 정부가 무어가 예뻐서 정부 정책에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전교조 교사들에게 상을 주겠는가. 해고자 조합원 자격을 이유로 ‘노조 아님’을 통보한 용감무쌍한 정권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정부가 자신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빌미로 전교조를 질시하는 것은 정부의 올바른 자세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정부는 전문직 단체든 노동조합이든 교원단체를 교육 발전의 동반자로 인식하려는 성숙한 태도를 언제쯤 갖게 될까.

 

이상이 30년을 머문 교단을 떠나면서 나라에서 주는 포상을 받을 뻔했던 퇴직 교사의 푸념이다. 아쉬울 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어쩐지 지난 세월을 부정당한 듯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쉽게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2016. 6. 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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