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200 [오늘] 2·28-대구 고교생들, 이승만 선거 방해 공작에 맞서 일어서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고교생 민주 시위1960년 2월 28일 낮 12시 50분, 대구의 고교생들이 정부와 여당(자유당)의 부당한 선거 개입에 항의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시내 중심가로 진출하여,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별들아”, “학원의 자유를 달라”, “학원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까지 계속된 시위는 3·15 마산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1960년, ‘빈사의 민주주의’ 1960년, 13년째 이어진 이승만 독재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빈사 상태였다. 발췌개헌(1952)과 사사오입 개헌(1954)으로 장기 집권을 위한 권력을 강화한 이승만은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자.. 2024. 2. 28. [오늘] 박애주의자, 배우 오드리 헵번 떠나다 [역사 공부 ‘오늘’] 1993년 1월 20일, 오드리 헵번 타계1993년 1월 20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이면서 20세기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불리었던, 모두가 사랑한 ‘세기의 연인’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이 스위스의 자택에서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64세. 그는 영화를 통해 다양한 여성의 삶과 성격을 창조하면서 미국영화협회(AFI)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여배우’ 세 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주연한 영화 이나 같은 영화는 그 개인의 작품 목록(filmography)를 넘어 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작품들이었다. 오드리 헵번은 예순 살 즈음하여 은퇴한 뒤 나중에 만년의 삶 대부분을 유니세프(유엔 아동기금, UNICEF)에 헌신했다. 1954년부터 이 기구.. 2024. 1. 19. [오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이후 대한민국은 얼마나 튼튼해졌나 [역사 공부 ‘오늘’] 2014년 12월 19일, 헌재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결정’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2013년 정부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인용(해산)했다. 헌재는 재판관 8(인용) : 1(기각)의 의견으로,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그 소속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정부가 위헌 정당 해산제도에 따라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청구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고, 헌재에서 정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것도 최초였다. 제1공화국 시기에 진보당이 정부의 처분으로 해산되었지만, 통합진보당은 불운하게도 위헌 정당 해산제도에 따라 해산되는 첫 정당이 되었다. 헌재사상 최초의 ‘정당해산’ 결정 사상 초유의 결정이 내려진 이 심판 사건은 이른바 ‘이석기 내.. 2023. 12. 19. [오늘] 동서독, 41년 만에 재통일 이루어내다 [역사 공부 ‘오늘’] 1990년 10월 3일, 마침내 41년 만에 ‘하나의 독일’로1990년 10월 3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각 주(州)가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 가입하는 형식으로 독일의 재통일이 이루어졌다. 9월 12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2(동서독)+4(미·영·프·소) 외무장관 회의에서 최종규정 조약이 조인된 데 이어 마침내 10월 3일 하나의 독일이 탄생한 것이었다.그것은 독일군의 항복으로 제삼제국이 소멸하고 4개 연합국(미국·영국·프랑스·소련)이 점령지역 통치를 분담하게 된 뒤 1949년 독일이 서부의 독일연방공화국과 동부의 독일민주공화국으로 분단된 지 41년 만이었다.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한 뒤, 독일은 4개의 점령지역으로 나뉘었다. 이처럼 연합국이 독일을 .. 2023. 10. 3. [오늘] 충칭에서 임시정부, 한국광복군을 창설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40년 9월 17일, 충칭서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1940년 9월 17일, 중국의 임시 수도 충칭(重慶)의 가릉빈관(嘉陵賓館)에서 광복군 총사령부의 성립 전례(典禮)가 거행되었다. 그로써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지 21년 만에 임정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광복군 선언문」을 통하여 광복군 창설의 취지를 “한·중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며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천명하였다. 비록 타국에서 세운 임시정부였지만, 임정은 1919년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軍制)」를 제정하여, 군대를 창설한다는 원칙에 따라 군대의 편제와 조직에 관한 법규를 마련한 바 있었다. 임.. 2023. 9. 17. [오늘]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역사 공부 ‘오늘’] 1961년 5월 19일, 진보 일간지 강제 폐간1961년 오늘(5월 19일), 진보 성향의 일간지 민족일보>가 강제 폐간되었다. 육군 소장 박정희가 이끈 5월 16일의 쿠데타 사흘 만이었다. 그것은 민족일보>의 발행인 조용수와 논설위원 송지영을 비롯한 민족일보 관계자 열 사람을 구속한 다음 조치였다.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는 ‘용공 분자 색출’이라는 이름으로 진보 인사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노동자 탄압을 비판해 오던 민족일보>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었다. 1961년 2월 13일, 우여곡절 끝에 창간된 이 진보지는 5월 19일 92호를 마지막으로 석 달여 만에 폐간되었다. 1961년 5월 19일, 민족일보> 강제 폐간 4월혁명 이듬해 민.. 2023. 5. 19. [오늘] 전두환의 신군부, ‘군사 반란’으로 군권을 장악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일당, 쿠데타로 군권 장악1979년 12월 12일 오후 6시, 최규하 대통령에게 육군참모총장 체포 안에 대한 재가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소장)은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대령),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대령)에게 정승화 총장 연행계획을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 오후 7시에 허삼수와 우경윤은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소속 병력 50명을 총장 공관에 투입했다. 헌병들은 총장 공관을 지키던 해병대 병력을 제압하고 공관에 난입했다. 이 과정에서 헌병대 사병 1명이 총상을 입고 숨졌다. 7시 21분, 두 장교는 정승화 총장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했다. 대통령 재가 없는 육참총장 연행, 하극상의 극치.. 2022. 12. 12. 남과 북이 기리는 양세봉 장군, 그 ‘유일(唯一)’의 역설 [역사 공부 ‘오늘’] 1934년 9월 20일,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 장군 순국 1934년 9월 20일, 랴오닝성 환인(桓仁)현 대랍자구(大拉子溝)에서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1896~1934) 장군이 매복한 일본군에게 포위되어 교전하다가 전사, 순국했다. 향년 38세. 이십 대 초반에 무장 항일투쟁을 시작한 이래, 단 한 순간도 총을 내려놓지 않았던 사람, 양세봉은 전투의 현장에서 죽었다. 그는 조선혁명군으로 싸운 다섯 해 동안 일본군과 만주국 군경과 80여 차례 전투를 벌여 일본군 1천여 명을 죽였고, 흥경성, 노구대, 쾌대무자 전투를 승리를 이끈 이였다. 독립군이 좌우로 갈려 좌익은 중국 공산당 휘하로 들어가고, 우익은 중국 본토로 옮겨갔을 때, 만주에 남아 일제와 싸운 독립군은 그의 휘하 조.. 2020. 9. 20. ‘조선의용대의 영혼’ 윤세주 열사, 타이항산에서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42년 6월 3일-윤세주, 타이항산 폔청 전투에서 전사 1942년 6월 3일, 조선의용대 화북(華北)지대 정치위원 석정(石正) 윤세주(尹世胄, 1901~1942)가 타이항산(太行山) 석굴에서 순국했다. 허베이(湖北)성 폔청(偏城)에서 일본군의 제팔로군 소탕 작전에 맞서 싸우다 총상을 입은 지 닷새 만이었다. 폔청 전투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중국 타이항산맥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운 타이항산 전투 가운데 후자좡(胡家庄) 전투·싱타이(邢台) 전투(1941)와 함께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1942년 5월 28일, 허베이성 셰현(涉縣)의 북쪽 가장자리 산시성 경계에 있는 폔청에서 시작된 이 전투는 일본군의 소탕 작전에 대항한 팔로군의 반 소탕전으로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5월 29일 항일.. 2020. 6. 3. [오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유배지 엘바섬 탈출 [역사 공부 ‘오늘’] 1815년 2월 26일-보나파르트 엘바섬 탈출나폴레옹, 엘바섬 탈출 1815년 2월 26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1769~1821)는 유배 중이던, 이탈리아반도 서쪽 티레니아해(Tyrrenian Sea)의 토스카나 제도에서 가장 큰 섬 엘바(Elba)를 탈출했다. 1814년 4월 퐁텐블로 조약에 따라 엘바섬으로 유배된 지 9개월 21일 만이었다. 그는 황제의 지위를 유지한 채 세습되지 않는 엘바 공국의 대공으로 섬에서 머물다가 영국군의 감시를 피해 엘바섬을 벗어난 것이었다. 지중해의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난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의 사회적 변동기 뒤에 요구된 사회적 안정을 기반으로 제1 제정(帝政)을 건설하였다. 그로써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 2020. 2. 25. 백범, 삼천만 동포에게 통일정부 수립을 눈물로 고했지만 [역사 공부 ‘오늘’] 1948년 2월 10일 - 김구, 단정 반대·통일 정부 수립 호소 성명 발표1948년 2월 10일, 등에는 백범 김구(1879~1949)가 동포들에게 ‘통일 정부’ 수립을 호소하는 성명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 실렸다. 같은 해 1월 UN 한국위원단에 통일 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6개 항의 의견서를 보낸 데 이어 2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에 걸쳐 지면에 실린 이 성명은 70 고령의 노 독립운동가의 시국에 대한 절규였다. 김구의 단정 반대·통일 정부 수립 호소 그의 피 울음은 단순 명쾌했다. 1893년 열여덟에 동학에 입문, 1896년 황해도 안악 치하포에서 일본 육군 중위 스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처단하고, 1919년 마흔넷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하이 임시정부의.. 2020. 2. 10. [오늘] 혁명의 완수-쿠바혁명군, 아바나에 진입 [역사 공부 ‘오늘’] 1959년 1월 1일, ‘7월 26일 운동’ 주력부대 아바나에 진입산타클라라 전투의 승리 이어 아바나 진입 체 게바라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라울 카스트로 등이 이끄는 쿠바의 청년 게릴라 전사들은 1958년 12월 산타클라라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독재자 바티스타는 포르투갈로 탈출하였다. 그리고 1959년 1월 1일, 마침내 ‘7월 26일 운동’ 세력의 주력 부대가 아바나에 진입하였다. 그것은 1953년 7월 26일 시작된 쿠바혁명의 완수였다. 당시 쿠바는 1933년 9월 ‘하사관들의 반란’으로 불리는 쿠데타 이후 최고 권력자가 된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1901~1973)가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1940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 2019. 12. 31. 이전 1 ··· 12 13 14 15 16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