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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와 한편” 작가 조세희 잠들다

by 낮달2018 2022.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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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조세희(1942~2022.12.25.) 사진은 2011년 강연 모습. ⓒ 경향신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1942~2022) 작가가 25일 저녁 7시께 80세를 일기로 강동경희대학교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난 4월 코로나로 의식을 잃은 뒤 회복하지 못해 마지막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 새벽에 스마트폰에 뜬 뉴스로 선생의 부음을 확인했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때 되면 가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돌아가시기엔 좀 이르지 않으냐고 말꼬리를 흐렸다.

 

1978년 펴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17년에는 300쇄

 

작가는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돛대 없는 장선(葬船)’이 당선해 등단했으나 10여 년 동안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75년 ‘난쟁이 연작’의 첫 작품인 ‘칼날’을 발표한 이후, ‘뫼비우스의 띠’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 연작 12편을 묶어 1978년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출간하면서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관련 글 : 조세희,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쏘아올리다]

▲ 내 서가의 <난쏘공> 초판본(오른쪽, 문학과지성사 간)과 이성과힘에서 발행한 초판 143쇄 본(2012)

내가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그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을 읽은 것은 그해 가을쯤 인천 부평 소재의 병영에서였다. 나는 적지 않은 눈물을 삼키며 아내가 보내준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29년이 지난 2007년 9월 <난쏘공>은 100만 부를 넘기면서 기념으로 228쇄를 찍었다. [관련 글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백만 부, 난쟁이 일가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공장 노동자면서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도시 빈민을 상징하는 보통명사 ‘난쟁이 일가’를 창조해냈다. 그는 당시 제한적인 표현의 자유로 말미암아 상징적인 형식으로 이들 난쟁이 일가의 삶을 서술했는데, 정작 독자들은 그러한 표현 방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1970년대 산업사회의 모순에 정서적으로 다가가고 그것을 내면화할 수 있었던 듯하다.

 

이 책이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 널리 읽히면서 의식화 교재 역할까지 한 것은 서정적 문체로 형상화된 난쟁이 일가의 삶을 통하여 ‘시대의 모순과 아픔’을 추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출간된 지 41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꾸준히 팔려 2017년에는 300쇄를 찍었다. 그러나 <난쏘공>은 여느 베스트셀러와는 달리 총 발행 부수는 137만 부에 그쳤다.

 

혁명 겪지 못한 우리는 자라지 못한 ‘난쟁이’들

 

<난쏘공>이 40년 넘게 꾸준히 팔리고 있음은 소설로 제기된 ‘역사에의 분노 혹은 각성의 눈물’(김병익)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미로 보인다. 세상은 산업화 시대에서 멀찌감치 나아왔지만, 난쟁이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2000년 신판 <난쏘공> ‘작가의 말’에서 그는 주인공 일가만이 아니라 소설 바깥의 한국인들 모두가 ‘자라지 못한 난쟁이’라는 인식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제삼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이다.”

 

1980년대 초임지에서 나는 <난쏘공>의 여운을 되씹으면서 사진 산문집 <침묵의 뿌리>(1985)를 사서 읽었다. 1980년 4월 강원도 사북에서 일어난 광부들의 노동 항쟁인 사북사태를 다룬 이 사진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서정적 언어로 재구성한 <난쏘공>이 분노에서 촉발된 변혁의 의지를 담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관련 글 : 저임금·어용노조에 폭발한 사북 노동항쟁발발]

 

선생의 빈소는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은 28일 오전 9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우리가 살아온 시기는 한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묘파해낸 현실이 변혁의 방법론을 고민하게 한 시대였다. 그러나 난쏘공 44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어 도처에서 난쟁이들은 천국을 생각하면서 고단하게 살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가려 뽑은 명문장을 다시 꼼꼼히 읽으면서 우리 시대의 난쟁이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가장 위대한 작가, 현실을 한번도 떠나지 않았던 작가 조세희 선생의 영면을 빈다.

 

 

2022. 12.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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