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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통일’을 화두 삼은 진보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 별세

by 낮달2018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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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역사학자 강만길(1933 ~ 2023. 6. 23.) 고려대 명예교수

▲ 고 강만길 선생. 그는 진보 역사학자로 해방 이후의 한국사회의 분단시대로 정의하면서 그 극복을 위한 사론을 폈다. ⓒ 민중의 소리

진보 역사학자로 ‘분단’과 ‘통일’을 화두 삼았던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2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 나는 1980년대 후반 해직 시절에 역저 <한국 근대사>와 <한국 현대사>(1984)를 읽으면서 선생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선생의 강연을 통해 ‘역사로 성찰한 통일의 의미’를 어렴풋하게 깨달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선생은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제의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을 극복하고자 애썼는데, 조선 후기 상업자본이 싹트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조선 후기 상업자본의 발달>(1973)을 썼다. 그는 조선 후기 관영 수공업장에서 독립 생산자가 형성되고 노동력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음을 실증적으로 연구했다. 나는 <한국 근대사>에서 그러한 자본의 기초적 발전이 사설시조 등 조선 후기 평민 문학의 대두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우리 문학사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 시기에 선생은 본격적으로 ‘역사학의 현재성’을 고민하기 시작하여 그 결과 해방 후 시대를 통일 의지가 담긴 ‘분단시대’라는 용어로 명명한 선구적인 인식에 이를 수 있었다. 그는 분단시대의 극복을 위해서는 그것을 현실로 직시하고 대결하며, 철저히 객관화하고 비판해야 하며, 그 ‘극복을 위한 사론(史論)’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고민은 <분단시대의 역사 인식>(1978)의 출간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와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현실 참여 활동으로 1980년대 신군부의 탄압을 받아 대학에서 해직되기도 했다. 그는 월간 <사회평론>과 계간 <내일을 여는 역사> 발행인을 맡으며 분단극복과 평화통일 관련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국가기록물 관리위원회 위원장,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도 역임했다.

 

역사학자로서 그는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1987)를 비롯하여 실천적 역사 교양서 <20세기 우리 역사>(1999), 개인의 삶을 역사학적으로 재구성한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2010) 등 180여 권의 학문적 성과를 남겼다. [관련 기사 : ‘분단시대’ 화두 던진 역사학자 강만길 별세…향년 90]

▲ 내 서가의 <한국 근대사>와 <한국 현대사>(1984). 이 책들로 나는 우리 역사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선생은 <한국 현대사>에서 분단시대를 고착시킨 6·25전쟁은 “안으로는 민족분단을 더욱 확실히 하고, 남북 두 정권이 독재체제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밖으로는 동서의 냉전을 격화시키는 하나의 고비”라고 갈파한 바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지역에서 선생을 초청하여 이루어진 강연에서 그는 그것을 매우 쉽게 정리하여 들려주었다.

 

강연에서 선생은 6·25전쟁 중 양측이 각각 한 차례씩 무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할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한 것을 환기하면서 통일은 전쟁의 방식이 아니라 평화의 방도로만 이뤄진다는 걸 역설했다. 수천만의 민족이 참혹한 전쟁을 치르면서 배우게 된 값비싼 교훈을 그는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그 교훈이란,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그 지정학적 위치 문제가 주된 원인이 되어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정복하는 전쟁의 방법으로는 통일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음을 아는 것을 말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전쟁으로 인한 흥분과 적개심이 조금씩이나 숙어 들자 우리 민족사회에 평화통일론이 일어나고 정착하게 되어갔다. 즉 6·25전쟁은 우리 민족사회에 더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주었지만, 평화통일론을 우리 땅에 정착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 전쟁임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관련 글 : 70년 전 우리가 치른 전쟁이 가르쳐 준 것들]

 

    - 강만길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창비, 2010) 중에서

▲ 역사학의 현재성을 고민한 강만길 선생이 내놓은 역저

나는 분단과 전쟁을 포함한 우리 현대사를 다룬 저작들을 읽었지만, 그의 논리만큼 단순 명쾌하게 그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그 극복을 위한 결론을 제시한 것을 따로 보지 못했다. 그는 과거의 시간을 천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현재성을 주목하고 그를 극복하려 성찰한 역사가였다.

 

내일을여는역사재단과 민족문제연구소는 그의 부음을 알리면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겨 한국사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서는 등 역사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헌신했다”라고 기렸다.

 

선생의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3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 8시 30분이다. 장례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른다고 한다.

 

선생이 분단체제 극복을 뒷사람에게 맡기고 영면하시길 빈다.

 

 

2023. 6. 25일 아침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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