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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204

[한글 이야기] 젺어 보기, ‘고장 말’의 정겨움 ‘겪다’를 ‘젺다’로 쓰는 경상도 말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서 군대 생활 빼고는 지역을 떠난 적이 없다. 당연히 경상도 고장 말에 인이 박였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쳐야 한다. 당연히 수업 때 쓰는 ‘말’을 의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초임 시절엔 딴에는 표준말을 쓴다고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억양이야 타고난 지역의 그것을 버리기 어렵지만, 일단 어휘는 공인된 표준말을 썼다. 자주 ‘ㅓ’와 ‘ㅡ’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서 뜻한 바는 얼마간 이루었다. 강원도에서 전학 온 아이가 다른 교사들의 수업은 잘 알아듣지를 못하지만 내 수업은 힘들이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고 했으니. 표준말 정책이 고장 말을 열등한 존재로 밀어냈다 경력이 늘고, 나이가 들면서 수업 언어로 굳이 ‘표준말.. 2019. 10. 11.
[한글 이야기] ‘연쇄점’에서 ‘하나로 마트’까지 영자의 국어 침탈사, 또는 민중들의 조어법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성주의 포천계곡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지방도로를 타고 오는데 언뜻 연변의 건물에 붙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농협 연쇄점’. 길가의 허술해 뵈는 나지막한 슬래브 건물에 걸린 낡고 오래된 간판과 그게 담긴 풍경은 좀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연쇄점’에서 ‘하나로 마트’까지 문학 수업 시간에 ‘철쇄(鐵鎖, 쇠사슬)’를 가르치고 난 뒤, 아이들에게 ‘연쇄점(連鎖店)’을 물었더니 대부분 요령부득의 표정인데 의성에서 유학 온 아이 하나가 대답한다. “본 적 있어요.” “무슨 뜻일까?” “‘체인점’요.” “정답!” 아이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시골아이들은 ‘촌스러운 경험’에다 도회의 그것을 더하니 훨씬 경험의 폭이 크다. .. 2019. 10. 10.
윤동주에서 박완서까지 - 구글 로고의 진화 구글 로고의 진화 어제(10. 20) 구글 코리아(www.google.co.kr)의 대문 로고에 작가 박완서가 올랐다. 작가의 탄생 80주년을 기념한 이 로고는 꽃을 든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을 통해 이미 고인이 된 작가를 기리고 있다. 낯선 이름의 외국인들을 기리는 로고만 봐 왔던 눈에 그건 매우 신선한 경이다. 내가 구글을 즐겨 이용하게 된 것은 구글의 개방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그 나라의 중요한 기념일이나 인물을 꼼꼼히 챙기는 이른바 ‘마인드’가 마음에 들어서다. 구글은 설날과 한가위 같은 명절은 물론이고 한글날도 빼놓지 않고 기린다. 비록 그날의 로고를 바꾸는 일시적 형식에 불과하지만, 한글날을 무심히 흘려보내는 다른 국내 사이트들과는 견주어지는 대목이다. [☞ 관련 글 바로 가기] http:.. 2019. 10. 9.
[573돌 한글날] 우리말,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오백일흔세 돌 한글날, 우리말 얼마나 알고 있나 오백일흔세 돌 한글날을 맞으면서 한힌샘 주시경(1876 ∼1914)을 생각한다. 한글이라면 그저 세종 임금과 집현전 학자들만 떠올리겠지만, 한글의 연구와 발전에 이바지한 국어학의 개척자 주시경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글의 기본 골격이 되는 문법 이론을 세웠고, 어문혁명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또 본격적인 국어연구와 운동을 통해 일제 침략에 항거한 이였다. 그는 교보원(校補員)으로 순 한글 신문 제작에 참여하게 되면서 그 표기 통일을 위해 국어연구를 시작한 후 엄청난 열정으로 거기 헌신했다. 각종 학교에 국어 야학, 국어강습소를 설치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경술국치 후에도 ‘주 보따리’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동분서주하며 후진을 양성했다.. 2019. 10. 9.
[한글 이야기] 권위의 언어, 평등의 언어 자신을 객관화하는 호칭 생각 남 앞에 자신을 이를 때 우리는 대명사 ‘나’ 또는 ‘저’를 쓴다. ‘저’는 윗사람 앞에서 쓰는 낮춤 표현이고 ‘나’는 그 밖의 경우에 쓴다.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지위를 대신 쓸 수도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을 ‘아빠, 엄마’라 지칭하는 게 그것이다. 부모가 자녀 앞에서 자신을 ‘엄마(어머니), 아빠(아버지)’로 이르는 경우는 비교적 자연스럽다. 어린 자녀에게 그것은 서로의 관계를 강조하는 가르침이고 동시에 본인에게는 보호자의 책임을 확인하는 호칭인 까닭이다. 학교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다. 아마 이는 학교 사회에는 일종의 문화로 정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것을 보면 아마 교단에 처음 .. 2019. 10. 8.
철수와 찰리? 정체성의 표지, 이름-한글 이야기(3) 영어식 이름을 생각한다 이름이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개인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의 표지로 인식된다. 그것은 비단 개인의 정체성에 머물지 않고 나라·민족과 자연스레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사람의 이름에서 그의 나라와 민족을 유추해 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름, 개인 정체성의 표지 ‘톰’이나 ‘메리’가 영어권의 이름이라는 것과 ‘미찌꼬(美千子)’와 ‘장웨이(張偉)’가 각각 일본과 중국의 이름이라는 것은 다르지 않다. 로마노프나 고르바초프처럼 ‘-프’로 끝나는 이름이 대체로 슬라브족을 이른다거나 무하마드가 아랍인의 이름이라는 건 상식이다. 우리의 이름은 어떨까.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에서 배우는 가장 표준적인 한국인의 이름은 ‘철수’와 ‘영희’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면서 이름을 붙이는.. 2019. 10. 7.
[한글 이야기] <한겨레> ‘매거진’ ‘ESC’의 알파벳 알파벳, 괄호 밖으로 나오다(3) 슬슬 나도 고리타분한 원칙론이나 되뇌는 ‘아재’ 대열에 합류하는가 싶다. 이 ‘글로벌’한 세상에 한글 타령이 무슨 소용일까만 한글 자리에 슬금슬금 엉덩이를 들이밀고 있는 알파벳이 한눈에 들어오니 하는 말이다. 워낙 세상이 그러하니 그걸 그렇다고 말하는 것도 민망스러울 지경이다. 도 변신해야 산다? “‘알파벳, 괄호 밖으로 나오다”는 제목의 글을 두 편 썼다. 한 편은 2013년 10월[‘KB 국민은행’에서 ‘MG 새마을금고’까지]에, 또 한 편은 올 1월에 썼다.[ ‘섹션’과 ‘뉴스룸’의 영자 타이틀 유감] 첫 번째 글은 주로 은행이나 기업의 이름을 영자로 표기하는 데 대한 문제 제기였고, 두 번째 글은 ‘뉴스룸’의 꼭지 이름을 영자로 표기(비하인드 뉴스)하는 문제를 다.. 2019. 10. 7.
[한글 이야기] ‘생음악’과 ‘라이브(Live)’ ‘생음악’은 ‘라이브(Live)’로 대체되었다 나는 한글 문서 속에 빈번하게 쓰이는 로마자를 보면서 그게 생뚱맞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어지간한 로마자도 한글로 풀어서 쓰는 를 오래 보아서일까. 나는 굳이 를 라고 쓰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너무 한글 속에 자발없이 쓰이는 영자를 보면 기분이 개운치 않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 아닌가. 요즘 아이들은 일상의 대화 속에 로마자를 아주 천연덕스럽게 끌고 들어와 쓴다. 아이들은 우리 세대와는 달리 ‘텔레비’나 ‘텔레비전’ 대신 ‘TV(티브이)’를, ‘컴퓨터’ 대신 ‘PC(피시)’를 즐겨 쓴다. 영어 낱말에다 ‘-하다’를 붙여서 쓰는 말도 아이들에겐 자연스럽다. ‘슬림(slim)하다’는 그예 ‘터프하다’나, ‘핸섬하다’처럼 우리말 낱말로 바뀌어 가.. 2019. 10. 6.
[한글 이야기] <한겨레> ‘섹션’과 <JTBC> ‘뉴스룸’의 영자 타이틀 유감 알파벳, 괄호 밖으로 나오다(2) 가겨 찻집에 ‘알파벳, 괄호 밖으로 나오다’를 쓴 게 2013년 10월이다. 나는 주로 은행 등 금융기관 쪽에 분, 회사 이름을 영자로 표기하기 시작한 현상에 관해서 썼다. 국민은행이 ‘KB(케이비)’라고 쓰기 시작한 이래 계속된 이 현상은 마침내 ‘NH-엔에이치’(농협)와 ‘MG-엠지’(새마을금고)에까지 이르렀다. ‘알파벳, 괄호 밖으로 나오다’ 이후 3년 워낙 ‘글로벌’ 시대라 하니 기업체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쓰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표기하면서 한글 없이 영자로만 쓰는 건 다른 문제라는 게 내 문제의식이었다. [관련 기사 : ‘KB 국민은행’에서 ‘MG 새마을금고’까지] 그리고 이제 이런 상표는 괄호 속에서 온전히 벗어나 민얼굴로 세상을 활보하고 있.. 2019. 10. 6.
[한글 이야기] ‘KB 국민은행’에서 ‘MG 새마을금고’까지 알파벳, 괄호 밖으로 나오다(1)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란다. 맞다. 한때는 괄호 속에 묶이던 로마자 알파벳은 이제 그 고리타분한 포장을 벗고 공공연히(!) 한글 속에서 늠름하게 쓰인다. 일상 언어 속에서도 영어는 마치 전근대의 한자어와 같은 지위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인쇄물과 영상물에, 거리의 간판에 영자는 차고 넘친다. 대중가요에도 영어 구절이 마치 고명처럼 끼어든다. 더러는 한류를 타고 우리 노래가 바다를 건너기도 하니, 단순반복의 영어 가사를 섞어 놓은 이들 노래는 말하자면 국제화 시대의 ‘트렌드’가 된 셈이다. ‘괄호 밖’으로 나온 ‘로마자’들 기업체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쓰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표기하면서 의심 없이 영자를 쓰는 건 다른 문제다. 세계 굴지의 글로벌 .. 2019. 10. 5.
두벌식 오타, 한글 이야기(3) 두벌식 자판은 오타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 요즘이야 모두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지만, 한때는 타자기가 가장 첨단의 문서작성기인 때가 있었다. 나는 1977년 군 복무 중에 타자기를 쓰기 시작했다. 글쇠만 한글 자모로 바꾼 미제 레밍턴 타자기였다. 당시의 자판은 자음과 모음 모두가 두 벌인 네벌식이었다. 나는 이른바 독수리 타법으로 능숙하게 서류를 만들곤 했다. 초성과 받침으로 쓰는 자음이 두 벌이지만, 모음은 어떻게 두 벌인가. 받침이 없을 때 쓰는 모음과 받침이 있을 때 붙이는 모음은 달라야 한다. 그건 말하자면 기계식 타자기의 한계였던 셈이다. 제대하고 복학하면서 국산 클로버 타자기를 샀다. 마라톤 타자기도 있었는데 어쩐지 클로버가 끌렸던 탓이다. 네벌식 자판에 능숙해지자 전동타자기와 전자타자기가 .. 2019. 9. 29.
부톤섬으로 간 한글 ② ‘따리마까시(고마워요), 한글’ (MBC ‘뉴스 후’) 시청기 벌써 한글을 읽어내는 아이들 인도네시아의 한 소수민족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선택했다는 소식을 전한 게 8월 7일이다. (한글, 인도네시아 부톤섬으로 가다) 어차피 매스컴에 의존한 기사였으니 우리 한글이 문자가 없는 한 소수민족의 문화와 역사 기록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는 내용이 고작이었다. 문화방송(M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뉴스 후’가 ‘따리마까시(고마워요), 한글’이라는 방송을 내보낸 것은 지난 20일이다. 나는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이 프로그램의 후반부를 시청했고, 나중에 토막 시간을 내어 ‘다시 보기’로 그 전편을 시청했다. 이 프로그램은 찌아찌아족이 사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를 현장 취재했다. 그리고 한글의 ‘경쟁력’을 짚어보고 .. 2019.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