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로고의 진화
어제(10. 20) 구글 코리아(www.google.co.kr)의 대문 로고에 작가 박완서가 올랐다. 작가의 탄생 80주년을 기념한 이 로고는 꽃을 든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을 통해 이미 고인이 된 작가를 기리고 있다. 낯선 이름의 외국인들을 기리는 로고만 봐 왔던 눈에 그건 매우 신선한 경이다.
내가 구글을 즐겨 이용하게 된 것은 구글의 개방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그 나라의 중요한 기념일이나 인물을 꼼꼼히 챙기는 이른바 ‘마인드’가 마음에 들어서다.
구글은 설날과 한가위 같은 명절은 물론이고 한글날도 빼놓지 않고 기린다. 비록 그날의 로고를 바꾸는 일시적 형식에 불과하지만, 한글날을 무심히 흘려보내는 다른 국내 사이트들과는 견주어지는 대목이다. [☞ 관련 글 바로 가기] http://blog.ohmynews.com/q9447/269645
메이데이에도 문패를 바꿔 다는 구글에 호감이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난해 5월 1일, 구글은 벽면에다 ‘google’이란 글자를 붙이고, 나사를 죄고 있는 노동자들을 통해 ‘노동’의 의미를 환기하고 메이데이를 기렸다.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바꿔 쓰는 이 나라의 정서로는 언감생심이다.
구글의 로고 정책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일정한 원칙에 따라 수행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구글의 로고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게시되는 기념일 로고는 세 가지 형식으로 나타난다. ‘전 세계(Global)’, ‘선택한 국가(Selected Countries)’, ‘개별 국가’ 등이 그것이다.
이 세 개의 형식은 각각 그 파급 범위를 지정하고 있는데 그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지명도의 크기인 듯하다. 예컨대 ‘비발디 탄생일’은 ‘전 세계’고 ‘괴테’는 독일인데, 일본의 영화감독 ‘구로자와 아키라 탄생일’의 경우는 ‘선택한 국가’와 같은 형식이다.
구글이 한글날과 광복절 등의 국가 기념일을 빼고 개인을 기린 건 이번 박완서 로고가 처음인가 싶었다. 그러나 로고 사이트에서 확인해 보니, 지난해 7월 20일의 ‘백남준’에 이어 12월 30일의 ‘윤동주 탄생일’도 로고로 썼다.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의 기념 로고는 갖가지 텔레비전 모니터를 쌓은 모습이고 윤동주의 로고는 파란 하늘에 빛나는 별을 그려 넣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절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의 한 구절이 떠오르게 하는 그림이다. 누리꾼들이 박완서 기념 로고에 환호하며 ‘구글은 다르다’라고 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 세계적 기업은 이 나라 사람들이 사랑한 시인과 작가를 기림으로써 자신들의 품격도 높인 것이다.
모르긴 해도 윤동주와 박완서를 기린 구글은 앞으로 기리는 문인들의 목록을 늘여갈 것 같다. 구글이 어떤 시인, 어떤 작가를 기리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걸 통해서 우리가 그들의 문학과 삶을 환기하고 기릴 수 있다면 그건 썩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고작 ‘검색어 조작’이나 ‘폐쇄성’ 따위로 누리꾼들의 지탄을 받는 우리 포털들이 구글의 사례를 통해 배울 점은 무엇일까. 비록 모두가 동의하는 국민 시인과 국민작가를 갖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런 형식으로 사람들이 우리 문학과 문화를 환기하고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좀 좋은 일인가 말이다.
2011. 10.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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