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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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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이야기] ‘생음악’과 ‘라이브(Live)’

by 낮달2018 2019.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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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음악’은 ‘라이브(Live)’로 대체되었다

▲ 아직도 <서울방송(SBS)>에서는 날씨 대신 ‘웨더(weather)’를 쓰고 있다.
▲ 예전에는 ‘생중계’라 표기하던 실황 중계 방송은 요즘 모두 ‘라이브(LIVE)’가 되었다.

나는 한글 문서 속에 빈번하게 쓰이는 로마자를 보면서 그게 생뚱맞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어지간한 로마자도 한글로 풀어서 쓰는 <한겨레>를 오래 보아서일까. 나는 굳이 를 <케이비에스>라고 쓰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너무 한글 속에 자발없이 쓰이는 영자를 보면 기분이 개운치 않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 아닌가. 요즘 아이들은 일상의 대화 속에 로마자를 아주 천연덕스럽게 끌고 들어와 쓴다. 아이들은 우리 세대와는 달리 ‘텔레비’나 ‘텔레비전’ 대신 ‘TV(티브이)’를, ‘컴퓨터’ 대신 ‘PC(피시)’를 즐겨 쓴다. 영어 낱말에다 ‘-하다’를 붙여서 쓰는 말도 아이들에겐 자연스럽다. ‘슬림(slim)하다’는 그예 ‘터프하다’나, ‘핸섬하다’처럼 우리말 낱말로 바뀌어 가고 있다.

 

영자를 우리말로 옮겨 쓰는 건 그래도 양반이다. 아예 로마자로 표기해 놓아도 사람들은 무심히 보아 넘기고 만다. 요즘 텔레비전 방송에도 로마자는 넘친다. 뉴스를 ‘news’로 쓰는 건 기본이고 날씨도 ‘weather’라 쓰는 경우가 많다. 영자를 무심히 쓰는 쪽은 물론 공중파보단 케이블 쪽이 심하다.

 

‘생(生)음악’과 ‘라이브(live)’

 

우리가 대학을 다닐 무렵만 해도 ‘생(生)음악’이란 말이 널리 쓰였다. 술집이나 경양식집 따위에서 드물게 사람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녹음된 연주를 듣거나 모니터 화면이나 바라보다가 눈앞에서 주자가 직접 들려주는 연주를 듣는 건 꽤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라이브(live)
「명사」
미리 녹음하거나 녹화한 것이 아닌, 그 자리에서 행해지는 연주나 방송 따위.

라이브 무대 / 라이브 방송 / 라이브 음악

 

요새 말로 하면 ‘라이브(live)’다. 혹시 싶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까 ‘라이브’는 표제어로 당당히 실려 있다. ‘미리 녹음하거나 녹화한 것이 아닌, 그 자리에서 행해지는 연주나 방송 따위’란다. 요즘은 텔레비전의 이런 공연의 화면에는 아예 로마자로 ‘live(라이브)’가 기본이다.

 

예전엔 스포츠 경기의 이른바 ‘실황(實況) 중계’도 ‘생중계’라고 했다. 지금도 그 시절 흑백 모니터의 오른편 상단의 경기하는 팀 이름 아래 한자로 쓴 ‘生中繼(생중계)’라는 글자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요즘은 물론 한자 대신 ‘live’다. 체육경기에도, 가수들의 공연에도, 홈쇼핑 채널의 화면에도 ‘live’가 선명하다.

 

‘곧이어’는 ‘넥스트(next)’가 되고

 

케이블 방송에서 또 유난히 눈에 띄는 로마자는 ‘넥스트(Next)’다. 예전에 다음 프로그램 순서를 안내할 때 쓰던 ‘곧이어’가 요즘은 ‘넥스트’가 된 것이다. 요즘 <제이티비시(JTBC)>의 뉴스나 드라마를 보게 되면서 그걸 확인하게 되었는데 어쩐지 기분이 썰렁하다. (정작 <제이티비시(JTBC)>에서는 ‘곧이어’도 곧잘 쓰고 있다.) ‘넥스트’는 <티브이엔(TvN)>이나 다른 케이블에서도 일상적으로 쓰는 용어가 된 듯하다.

▲ <티브이엔(TvN)>에서는 다음 프로그램 안내인  ‘넥스트’를 아예 영자로 쓰고 있었다.
▲ <JTBC> 화면에서는 정작 '곧이어'를 잘 쓰고 있다.

어제 확인해 보았더니 <티브이엔(TvN)>에서는 다음 프로그램 안내인 ‘넥스트’가 자막으로 흐르고 있었다. 거기에 ‘No.1 Trend Leader(넘버원 트렌드 리더)’도 따라 흘렀다. 창립 8주년이라며 자사를 ‘1번 트렌드 리더’로 자찬하는 거였다. 눈에 설고 민망한데도 그게 대세라고 뻗대는 것 같아서 입맛이 썼다.

 

이 ‘넥스트’ 화면의 압권은 <제이티비시(JTBC)>의 프로그램 예고 화면에서 여성의 목소리로 ‘넥스트’라고 유창하게 뇌까리는 것이다. 예전에 광고에서 영자로 된 브랜드 이름을 이른바 ‘본토 발음’으로 주워섬기는 게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다. 완벽한 본토 발음으로 뇌면 그 상품의 가치가 저절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뭐, 세상이 그러니 굳이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절대 적지 않은 변화가 사람들에겐 그리 낯설지 않아졌다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시나브로 로마자와 영어가 우리의 일상 속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는 현실 말이다.

 

 

2014. 12.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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