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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2019/0345

100년 지나 성주 사람들은 ‘앵무’도 ‘앵무들’도 잊었다 성주군 용암면 용정리 대구 기생 ‘앵무 염농산’의 ‘제언공덕비(堤堰功德碑)’를 찾아서 지난 주말, 오랜만에 ‘동 영부인(同令夫人)’하여 봄나들이를 나서는데, 어딜 가느냐고 아내가 물었다. 굳이 답을 구하는 물음은 아니었지만 나는 ‘앵무’를 찾으러 ‘성주’로 간다고만 말해 두었다. 아내는 "앵무? 앵무새가 성주에?" 하더니만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답을 들어도 시원찮으리라는 걸 눈치챈 것일까. 앵무를 찾아서 앵무는 성주에 있다. 그것도 성주군 용암면 용정리에 오래된 빗돌로 남았다. 앵무를 알게 된 두어 해 전인데 이제야 길을 나서게 된 것은 마음과 달리 몸이 굼떠서다. 앵무가 성주 용암에 빗돌로 남은 것은 그가 용암들에다 제방을 쌓은 공덕을 사람들이 기린 덕분이다. “기생이었다고? 기생이 거기다 방천(防川.. 2019. 3. 23.
그 아이들과의 10년, 1998년에서 2008년까지 약속대로 10년 만에 다시 만난 제자들 10년이란 시간 속에 담긴 변화와 그 의미는 어떤 것일까. 꼭 10년 전(1998년)에 나는 한 시골 고등학교의 3학년 담임을 맡았다. 인연이 닿아서였겠지만, 1학년 때에 이어 두 번째로 나는 그 아이들을 만났다. 이미 서로를 알 만큼은 아는 사이여서 우리는 아주 편안하게 한 해를 함께했다. 이듬해 2월 아이들이 졸업할 때, 10년 후쯤에 꼭 한번 만나자며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이태쯤은 아이들과 내왕을 했다. 5월 스승의 날이 되면 아이들은 추렴하여 나를 안동의 삼겹살집으로 초청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사내아이들이 입영을 시작하면서 연락이 뜸해지더니 4, 5년 전부터는 아예 연락이 끊어졌다. 고1, 고3 두 차례나 담임으로 만난 시골 아이들 이 아이들의.. 2019. 3. 22.
좋은 이웃, 혹은 제자들(2) 복직 이후의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해직 5년은 내 삶에서 일종의 변곡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른바 ‘아스팔트’ 위의 교사로 쪼들리며 산 세월이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던 시절이었다. 복직도 승리의 전망도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젊음 때문이었다. 5년 만의 복직, 다시 만난 아이들 1994년 3월에 나는 경북 북부지역의 한 시골 중학교에 복직했다. 막상 학교로 돌아왔지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료가 ‘중증’이라고 표현할 만큼 내 의식과 현실은 어긋나기만 했다. 그러나 거기서 지낸 2년도 잊을 수 없다. 고비를 넘을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의 지지 덕분이었던 것 같다. 서른아홉, 젊다면 젊었고 아이들은 순수했다. 첫해는 담임 없이 수업만 했고 이듬해는 학기 중간에 1.. 2019. 3. 22.
2009년 3월, 의성 산수유 마을 2009년 3월,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숲실마을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花田里) 숲실마을에서 베풀어지는 산수유 축제는 어제가 절정이었나 보다. 아주 가볍게 다녀오리라고 아내와 함께 나선 길이었는데 어럽쇼, 화전리 입구도 못 가서 차가 막혀 버렸다. 정체로 막힌 게 아니라, 축제 관계자와 교통경찰에게 막힌 것이다. [관련 기사 : 순박한 맨얼굴의 산수유 마을 '의성 화전리'] 화전리 앞길은 일방통행으로 바뀌었고, 따라서 산수유꽃을 보러 온 상춘객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천변이나 인근 초등학교에 차를 세우고, 군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로 화전리까지 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늘 그렇듯 우리는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해마다 구경하는 산.. 2019. 3. 22.
‘순박한 민얼굴’, 화전리도 변했다 경북 의성 ‘산수유 마을’ 화전리의 변화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숲실마을의 산수유를 보고 와서 첫 기사를 쓴 때가 2007년 4월이다. 그 첫 기사의 제목을 나는 “순박한 민얼굴의 산수유 마을 '의성 화전리'”라고 붙였다. 산수유 마을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마을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전리 산수유마을은 '관광지'가 아니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서 아름다운 산골 마을이 밀려드는 관광객을 겨냥해 서투른 분칠을 거듭하면서 망가지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 화전리에는 러브호텔은 물론 음식점도 하나 없다. 동전 한 닢 떨구지 않고 왔다 가는 상.. 2019. 3. 21.
MBC 뉴스데스크가 달라졌다 뉴스데스크, 방송 시간 앞당기고 분량도 85분으로 그저께 오랜만에 엠비시(MBC) ‘뉴스데스크’를 시청했다. 글쎄, 모르긴 해도 4, 5년 만이 아닌가 싶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은 회복이 되지 못할 것 같다고 느낄 만큼 망가졌다. 그러나 적폐 청산의 시간에 구성원들은 분투를 거듭했던 모양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MBC 뉴스를 전혀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잠깐씩 스쳐 지나가면서 보는데, 어쩐지 힘에 겨워 보였다. 오히려 새 맛을 보여 준 건 에스비에스(SBS)였다. 다소 의욕이 넘치는 게 아슬아슬해 보일 때도 있긴 했지만. 지난 수년간 대부분의 진보 시청자들은 제이티비시(JTBC)로 옮겨왔고 거기 아주 인이 박였다. 기존 뉴스의 포맷을 버리고 핵심 사안들 중심으로 심층 보도하는 ‘뉴스룸’의 진행방.. 2019. 3. 21.
쑥, 혹은 한 시절의 그리움 쑥을 뜯어 쑥국을 끓이다 처가에 다녀오면서 장모님께서 뜯어 놓으신 쑥을 좀 얻어왔다. 여든이 가까워져 오는 노구를 이끌고 들을 다니셨을 노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 온다. 그나마 여기보단 남쪽이어서 쑥 뜯기도 수월했으리라 하는 게 위안이다. 식탁에 오른 쑥국, 한 시대의 애환 쑥국을 끓여 먹자고 주문했더니 아내는 이튿날 아침에 냉큼 국을 끓여냈다. 아직 여린 쑥 향이 아련하다. 아이들에겐 낯선 향기지만 쑥이나 미나리, 쑥갓 같은 나물이나 채소의 향기는 우리네 세대에겐 한 시대를 환기해 주는 추억이다. 미각은 단순히 맛을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삶과 그 애환을 기억해 내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나는 향신료 따위의 향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채소나 나물이 가진 은은한 향기는 다.. 2019. 3. 19.
성주 성밖숲과 백년설 노래비 [성주] 성주읍 경산리 성밖숲의 왕버들(천연기념물)과 공원 입구의 백년설 노래비 * pc에서는 이미지를 누르면 원본 크기(1000×667)로 볼 수 있음. 수능 시험일에 아내와 함께 성주(星州)를 다녀왔다. 이날, 더는 감독관으로 나가지 않고 하루를 편하게 쉴 수 있게 된 것도 여러 해째다. 다 쌓인 밥그릇 덕택이다. 갈수록 희미해지는 기억력이나 수업 치르기가 힘에 부치는 신체적 퇴행에도 불구하고 높아진 본봉이나 이처럼 잡다한 가욋일에 동원되지 않아도 되는 건 나이 덕인 것이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비보림 성밖숲 월항면의 한개마을을 거쳐 성주읍 경산리의 ‘성밖숲’을 찾았다. 읍의 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인 이천 가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이 마을 숲은 1999년 4월에 천연기념물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수백.. 2019. 3. 19.
‘비 내리는 고모령’과 군국가요 ‘혈서지원’ 사이 3·1절 특집 ‘불후의 명곡’에 친일파 박시춘 노래가? 반성 없는 KBS 지난 9일 방송된 3.1운동 100주년 특집 프로그램에서 친일 음악인의 노래를 방송해 논란이 되고 있다.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편에서 친일부역 음악인 박시춘(1913~1996)이 만든 ‘비 내리는 고모령’이 방송된 것이다. (관련 기사: ‘3.1절 특집’에 1급 친일파 노래를? KBS의 황당한 결정) ‘비 내리는 고모령’이 무슨 문제냐고? ‘비 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이 1949년에 발표한 노래(‘낭랑 십팔 세’, ‘신라의 달밤’, ‘럭키 서울’) 가운데 하나다. 고모령(顧母嶺)은 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개인데, 이름처럼 ‘어머니를 돌아보는 고개’다. “어머님.. 2019. 3. 18.
[사진] 의성 화전리, 산수유 꽃그늘이 지키는 마을 2016년에 다시 화전리 숲실마을을 찾았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지난 26일부터 열리고 있는 ‘의성 산수유 축제’(4월 3일까지)에 다녀왔다. 에 실린 이웃 블로거의 기사를 읽다가 문득 나는 내가 언제든 길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고 새로 시작되는 주일의 첫날에 길을 떠났던 것이다. '평일 나들이'의 소회 지난 월요일(3. 21.) 날씨는 화창했다. 기침이 낫지 않아 찬바람을 피해야 하는 아내 대신 나는 인근에 사는 친구 ‘미나리’에게 길동무를 청했다. 도중에 의성 탑리에 들렀다가 친구 ‘세한도’도 일행이 되었다. 남들은 노곤한 오후 수업에 여념이 없을 시간에 우리 세 퇴직자는 좀 심드렁한 모습으로 사곡면 화전리에 닿았다. 심드렁.. 2019. 3. 18.
봄, 매화, 권주(勸酒) 벗이 보내준 권주시 한 편, 그리고 매화 *PC에서는 이미지를 클릭하여 원본(1000×667) 크기로 볼 수 있음. 친구 박(朴)이 카톡으로 한시(漢詩) 한 수를 보내왔다. 제목은 권주(勸酒), 우무릉이라는 이가 쓴 시다. 뜬금없이 웬 권주냐고 되받으면서 시를 읽는데, 그 울림이 썩 괜찮다.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니 우무릉(于武陵·810~?)은 당나라 때의 방랑 시인이다. ‘금굴치’는 손잡이가 달린, 금색을 칠한 잔이라고 한다. 그 한 잔 술을 권하면서 화자는 상대에게 사양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예사로운 듯하지만, 뒤의 두 구절 뜻이 이래저래 밟힌다. 꽃필 때면 늘 비바람 거세고, 인생살이 이별도 많다……. 때마침 꽃이 피는 때다. 교정의 홍매화가 어저께 봉오릴 맺더니 어느새 연분홍 꽃잎을 열었다... 2019. 3. 17.
좋은 이웃, 혹은 제자들(1) 이웃이 된 제자들(1) 한 5년쯤 될까. 교직에 들어 한동안은 ‘제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어쩐지 ‘제자’라는 말을 올리는 게 민망해서였다. ‘제자’라는 말의 상대어는 당연히 ‘스승’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제자’라고 말하려면 내가 ‘스승’이 되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통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교사들 대부분은 그런 자격지심과 무관한 일상어로 이 낱말을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무심히 제자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예사롭지 않은 자격지심이 멀쩡한 동료를 능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다. ‘스승과 제자, 혹은 교사와 학생’ 사이 그래도 ‘스승’을 입에 올리는 것은 서른 해를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다. 모든 교사에게 ‘스승의 날’은 언제나 부담스러워 피하고.. 2019. 3. 17.